작자/길광우(吉光羽)
【정견망】
당나라 때 사람인 엽법선(葉法善)은 자가 도원(道元)으로 집은 송향현(松陽縣)에 있었다. 4대 조상 때부터 도를 닦았으며 ‘음공밀행(陰功密行)’과 ‘핵소지술(劾召之術, 역주: 도사들이 귀신을 부르는 술법)’로 세상을 도운 호인이었다.
그의 모친 유(劉)씨가 한번은 낮잠을 자는데 꿈에 유성 하나가 입안으로 날아 들어와 뱃속으로 삼킨 후 잉태했고 15개월이 지나자 비로소 그가 출생했다.
엽법선은 7살 때 잘못하여 강에 빠졌는데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3년 후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어찌된 일인지 묻자 엽법선은 “제가 물에 떨어진 후 한 청동선인(青童仙人)이 나를 어느 장소로 데려가서 운장(雲漿)을 좀 마시게 했는데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한동안 같이 머물렀습니다. 나중에 청동선인은 나를 데리고 태상노군(太上老君, 노자)을 만나러 갔습니다. 태상노군이 저를 본 후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더러 이곳에 남아 며칠 놀다 가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엽법선은 스무 살 때 키가 9척 장신에 이마에는 희미하게 두 개의 십(十)자가 있었다. 그는 성정이 온후하고 담백하며 마늘이나 매운 것을 먹지 않았고 늘 어두운 방에 혼자 지냈다. 가끔 숲과 못을 유람하거나 산천을 돌아다녔다. 그는 태상노군의 선부(仙府)에서 돌아온 후 천신을 청하고 부리는 법술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묘유산(卯酉山)으로 들어갔는데 사는 집의 문이 높은 산 가까이 있었다. 한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아 드나들 때 거석을 피해 한 바퀴 돌아서 걸어야 했으므로 매우 불편했다. 엽법선이 부적 하나를 그려 바위를 향해 던지자 순식간에 바위가 날아가서 그 길이 평평하게 되어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
엽법선이 일찍이 창괄(蒼括)의 백마산(白馬山)을 유람하다가 한 석실에서 세 분 신인(神人)을 만났다. 그들은 비단옷을 입고 보석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었다. 그들을 엽법선에게 “우리는 태상노군의 명을 받들어 지금 네게 밀지를 전한다. ‘너는 본시 태극자미좌선경(太極紫微左仙卿)인데 전에 천서(天書)를 기록하는 데 나태해서 벌을 받아 인간세상으로 떨어진 것이다. 너는 빨리 사람을 구하고 국가를 보좌하여 공을 세워 공덕이 원만한 후 원래 자리를 회복하여 천계(天界)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정일삼오지법(正一三五之法)’을 전수하니 부지런히 행하고 착한 사람을 돕도록 하라.’” 말을 마치고 세 신인은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이때부터 엽법선은 요괴를 죽이고 화를 제거하며 무릇 그는 가는 곳마다 세인을 돕는 것을 종지로 여겼다.
엽법선의 작은 할아버지 엽정능(葉靖能)은 신술이 제법 있어서 당 고종때 한림원에 들어가 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었다. 무측천 때 폄적되어 남방으로 좌천되어 나중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 고종이 엽법선의 이름을 듣고 그를 경성으로 불러올렸다. 그를 상경(上卿)으로 모시려 했으나 엽법선은 한사코 사양하고 오직 도사로 지내기만을 원했다. 그래서 엽법선은 도사 신분으로 궁내 금지구역을 자유로이 출입했다.
당시 중악(中嶽)에 제단(祀壇)을 건설 중이었다. 건설 초기 고종은 친히 전례를 거행하려 했다. 뜻밖에 따르던 군신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 엽법선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었는데 단지 부적을 담갔던 물을 한번 뿜으면 병이 다 나았다. 낙양, 장안 두 곳의 문무관원들, 남녀 백성이 일천여 명이 앞다퉈 돈을 보내며 도가의 부적[道篆]을 받고 엽법선을 스승으로 모시려 했다. 엽법선은 받은 금은 재물을 전부 도관을 짓거나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데 사용했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고종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송양현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는 곳마다 법술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촉천(蜀川)에서 장위라는 사람의 처가 죽었다 살아나서 또 부부가 되었다. 엽법선은 그녀가 요괴임을 알아보고 말했다.
“당신은 일종의 시미병(屍媚病)에 걸렸는데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요.”
그러면서 부적을 던지자 그녀는 한 가닥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또 재상(相國) 요숭(姚崇)의 딸이 이미 죽었는데 재상이 그 딸을 잊지 못하자 엽법선이 부적을 던져 그녀를 살려냈다.
전당강에 한 마리 큰 조개가 때때로 사람을 상해하고 배를 전복시키며 사람을 물에 빠져죽게 하여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재난을 가져왔다. 엽법선은 부적을 강물에 던지고 신인(神人)을 시켜 조개를 죽이게 하였다. 그는 백성을 위해 해를 없애고 흉한 일을 멸하여 공덕이 널리 알려졌다.
엽법선이 천하를 유력할 때 사해를 집으로 삼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엽법선이 십오 세 되던 해 독에 맞아 거의 죽을 뻔 하였다. 그 때 청의동자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했다. “천태산의 묘군(苗君)이 인(印)을 날려 너를 구하려한다.”
그래서 엽법선은 깨어났다. 나중에 그는 청성산에서 조원양(趙元陽)을 사부로 모시고 둔갑술을 배웠다. 그는 숭양에서 위선준(韋善俊)을 만났는데 위선준이 그에게 팔사(八史)를 전수했다. 그가 동쪽에 몽산(蒙山)에 들어가 신인으로부터 비서(祕書)를 받았다. 숭산에 올라가자 신선이 검술을 전해주었다. 한번은 물 위를 걸어 강을 건너다가 홀연 물속으로 들어가 버려 사람들은 그가 빠져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칠일 후 엽법선이 나왔는데 의복이나 신이 젖지 않았다. 그는 “잠시 하백(河伯, 물의 신)과 봉래 선도에 놀러갔다 왔다.”고 말했다.
무측천이 그를 경성으로 불러 그에게 각 명산에 가서 용벽(龍璧, 역주: 귀한 옥으로 추정)을 던져 제사를 지낼 것을 부탁했다. 나중에 중종이 복위 후 무삼사(武三思)가 계속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엽법선은 여러 차례 무삼사의 음모를 관찰하고 중종과 상왕(相王) 및 현종을 보호해주었다. 때문에 무삼사에게 미움을 산 엽법선은 남해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광주(廣州) 백성들이 모두 그의 이름을 흠모해 북쪽을 향하여 그를 기다렸다. 그는 흰 사슴을 타고 바다에서 도착하여 용흥신관(龍興新觀)에 거주하였다. 멀고 가까운 곳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그를 경배하고 돈과 재물을 많이 희사했으나 그는 이 재물을 전부 도관을 수리하는데 썼다. 1년 후 그는 홍주(洪州)의 서산에 양신(養神)수도(修道)하러 들어갔다.
당 중종 경룡(景龍) 4년 3월 9일 괄창의 세 신인이 다시 내려와 태상의 명령을 전달하며 말했다. “너는 마땅히 예종 황제와 개원성제(開元聖帝 현종을 지칭)를 보좌해야하니 산속에 은거해 너의 큰 책임을 그르쳐선 안 된다.”
말을 마치고 가버렸다. 당시 이 두 황제는 아직 등극하기 전이었지만 엽법선은 그들의 묘호는 물론이고 연호까지도 미리 다 알고 있었다.
그해 팔월 과연 조서가 내려와 엽법선을 궁으로 불렀다. 궁궐에 돌아간 후 위(韋)황후의 난을 평정하고 상왕(相王) 이단(李旦)을 예종 황제로 추대했다. 나중에 현종이 제위를 계승하자 엽법선은 경성에서 그를 보좌했다. 무릇 길흉의 움직임을 모두 미리 예지해 황상에게 상주하였다. 마침 토번국이 사자를 파견하여 공물로 보석을 넣은 봉해진 상자를 바쳤다. 사자가 “폐하께서 친히 열어 보시옵소서, 다른 사람이 그 속의 기밀을 알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조정의 여러 신료들이 이 말을 듣고는 묵묵히 조용해졌다. 단지 엽법선만이 말했다. “이건 흉한 상자입니다, 폐하께서는 열지 마옵소서. 당연히 토번에서 온 사자가 열도록 하옵소서.”
현종은 그의 말을 듣고 토번의 사신에게 열라고 했다. 토번의 사자가 열자 상자 속에서 화살이 날아와 사자가 바로 죽어버렸으니 엽법선이 말한 대로였다. 얼마 후 황제는 그를 은청광록대부(銀青光祿大), 홍로경, 월국공, 경룡관주(景龍觀主, 경룡관이란 도관의 관주) 등의 관직에 봉했다.
그의 조부 엽중(葉重)은 술수가 매우 뛰어나고 핵소지술(劾召之術)에도 능해 민간에 많은 공덕이 있어 사후 시호를 “유도(有道)선생”이라 했다. 엽법선의 부친은 엽혜명(葉慧明)인데 조정에서 특별히 흡주(歙州) 자사 벼슬을 내려주었다. 엽법선은 황제에게 청하여 송양현의 옛집을 도관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현종은 도관 이름을 ‘순화(淳和)’라 지었는데 황제가 쓴 비문과 편액이 있어 그 집이 마을에서 더욱 영광스럽게 하였다.
이듬해 정월 27일 홀연 수백 마리의 학이 줄지어 북쪽에서 날아와 엽법선의 고향 산 위에 모여들었다. 선학은 사흘을 배회했고 오색구름이 그가 살던 곳을 덮었다. 이해 경신 유월 삼일 엽법선은 경룡관에서 부적을 태우고 제사를 지냈다. 그의 제자 기제물(既齊物), 윤음(尹愔)은 직접 신선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지만 비밀을 지키고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 21일 현종 황제가 소를 내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월주도독(越州都督)”을 내렸다.
엽법선이 107세 때 그가 살던 정원에는 기이한 향기가 가득찼고 선악이 울리며 한 가닥 푸른 연기가 곧바로 하늘로 충천했는데 하루가 지나서야 비로소 사라졌다. 엽법선은 현종에게 자신이 우화한 후 고향에 묻히기를 희망했다. 때문에 황제는 그의 조카 윤주사마(潤州司馬) 엽종용(葉仲容)을 도사로 삼은 후 중사(中使)를 파견하여 영구를 호송하여 송양현에 도착했다. 아울러 소를 내려 구주(衢州) 무주(婺州) 괄주(括州) 세 주 관원들에게 장례에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여 돕도록 하였다. 영구가 출발하는 그날 황상은 칙령을 내려 관리들이 흰 상복을 입고 성문 밖까지 영구를 배웅하게 했다.
(엽법선이 우화하기 전) 현종 개원초년 정월 십오일 밤에 당 현종이 어가를 타고 상양궁(上陽宮)에 나아가 등(燈)을 감상했다. 이곳의 등불을 밝히는 일은 상방서의 공장인 모순심(毛順心)인데 삼십여 간의 누각을 정성스럽게 세우고 금, 비취, 옥으로 장식했다. 어떤 누각의 높이는 백오십 척이나 되었다. 누각에 미풍이 불면 챙그랑 소리가 나는데 매우 우아하였다. 또한 등불로 용, 봉, 표범 등이 달리고 뛰는 모양을 만들었는데 솜씨가 하늘같아 마치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았다. 현종이 보고 매우 기뻐하여 사람을 엽법선 보내어 한번 와서 보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했다. 엽법선이 보더니
“이곳 등불의 장관은 과연 비할 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서량부의 등불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현종이 이상히 여겨 물었다. “설마 법사가 그곳에 가서 놀다왔단 말인가요?”하자 엽법선은 “방금 그곳에서 오는 길인데 폐하의 긴급한 부름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현종이 그의 말이 놀랍고 이상하게 여겨 “짐이 지금 서량부에 가보고 싶은데 갈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엽법선은 “이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라고 대답하며 그는 현종더러 눈을 감게 하고 “폐하는 절대로 함부로 눈을 뜨지 마십시오. 만약 무엇을 잘못 보면 심상치 않은 놀랄 일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다짐하게 했다.
현종은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고 한번 힘주어 뛰자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얼마 안 되어 다리가 땅에 닿는 느낌이 있었다. 엽법선이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하여 보니 등불이 휘황하게 비추고 몇십 리 까지도 이어지는데 끊임없이 수레가 다니고 많은 선비들과 부녀들이 바삐 다니고 있었다. 현종은 이곳의 성황을 칭찬하고 오랫동안 찬탄했다. 그리하여 엽법선에게 돌아가기를 청하여 다시 눈을 감고 하늘로 날아올라 단번에 아까 그곳에 돌아왔는데 아까 그 가무의 곡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날 밤 현종이 서량부에 등불을 보러 갔을 때 철여의(鐵如意)를 사용해 술을 바꾸어 마신 적이 있었다. 다음 날 그는 일을 확인하기 위해 한 관리를 양주로 보내니 철여의를 찾아 돌아왔다. 조사해보니 확실히 자기가 준 그것이어서 그리하여 엽법선이 그를 양주로 데려 간 것이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또 한번은 팔월 십오일 중추절 밤에 엽법선이 당 현종과 함께 월궁(月宮)으로 유람을 간 적이 있었다. 현종은 월궁의 음악을 듣고 현종이 그 곡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자 엽법선은 “이는 《자운곡(紫雲曲)》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현종은 원래 음률에 정통했기에 속으로 그 곡조를 기억하여 돌아온 후 악보에 적어 이름을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라 했다.
월궁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주(潞州) 상공을 지나는데 현종이 성을 내려다보니 정적이 흐르고 달빛이 대낮과 같았다. 엽법선은 현종에게 피리를 한 곡조 불어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당시 피리를 침전에 두고 떠났었다. 그러자 엽법선이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하였는데 순식간에 가지고 돌아왔다. 곡을 다 불고 나서 금전 한 닢을 성내에 던져주고 돌아왔다. 열흘 후 노주에서 상주문이 올라와 보고하기를 팔월 십오일 밤, 하늘음악이 노주성에 들려왔고 성중에 한매의 금전이 떨어졌으니 이 금전을 황상에게 바친다고 했다.
또 당현종은 누차 가까운 신하와 엽법선의 도술을 시험하였는데 그의 도술은 무궁무진하여 하나도 헛된 것이 없어 그에 대해 매우 존경하였다. 그 외에 산신을 쫓아가고 비바람을 부른 것, 용 고기를 삶은 것, 요마를 베어 없앤 일, 등 영험한 일이 모두 그의 사서의 전기 속에 있으며 여기에는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한번은 연국공(燕國公) 장열(張說)이 일찍이 도관에 가서 엽법선을 배알한 적이 있었다. 엽법선이 술을 차려 그를 환대했는데 장열이 다른 손님이 없는지 물었다.
엽법선은 “이곳에 또 국처사(麴處士)가 있는데 오랫동안 산림에 은거하여 성질은 고지식하고 말을 잘못하나 술을 좋아해 한두 말을 마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열은 엽법선에게 그를 불러달라고 청했다. 그는 곧 도착했는데 국처사는 키가 삼척이 못되었으나 허리는 몇 아름만큼 매우 굵었다. 엽법선이 국처사에게 앉으라 하자 국처사가 읍을 하는데 우락부락하였다. 술이 나오자 국처사는 사발의 술을 전부 다 마셨는데도 얼굴색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장설이 떠나려 할 때 엽법선은 홀연 검을 빼들고 국처사를 질책했다.
“너는 무슨 높은 담론도 못하면서 단지 술에만 빠져 있으니 너같은 놈을 남겨 두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며 그를 찔러 죽였다. 국처사가 원래 모습을 드러냈는데 알고 보니 거대한 술통이었다.
엽법선은 늘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일백육십 년 후 술법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묘유산에 와서 살 것이다.” 당초 엽법선은 천태산 동쪽 사명산 아래 살았다. 몇 년 후 홀연 오월 초일 한 노인이 문 앞에 오더니 울며 구해달라고 하였다. 문지기는 이 노인이 병이 있는 줄 알고 엽법선에게 데리고 갔다. 엽법선이 노인에게 무슨 일인지 묻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동해 용인데 천제의 명을 받들어 팔해의 진귀한 보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직위는 일천년에 한번 바꾸는데 이번 몇십 년만 잘못이 없으면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970년을 했는데 나의 공적은 곧 성취되게 되어 있었소. 하지만 환술을 잘 부리는 바라문의 어느 스님이 해변 산봉우리에 사는데 주야로 주문을 외워 이미 삼십년이 되었습니다. 그의 법술이 곧 성공하는데 성공하면 바닷물이 구름처럼 공중에 올라가 오월 오일이 되면 바닷물이 마르게 되고 그러면 상제께서 신령지물로 여기는 천하의 진귀한 보물을 그 요승(妖僧)이 가져갈 겁니다. 존사께서 오월 오일 오시 단부(丹符 도가의 부적)를 하나 써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오월 오일이 되자 엽법선이 부적을 동해로 날려보내 그 용을 구했다. 해수는 원상회복을 했고 그 바라문 스님은 매우 부끄럽고 한이 되어 바다에 빠져 자살했다. 다음 날 동해 용이 진주, 보옥 등이 가득한 수레를 끌고 와서 엽법선에게 보답했으나 엽법선은 받지 않으며 “신선은 숲과 들에 사는데 진주보화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라고 말했다.
또 용에게 “이곳 절벽에서는 물을 긷기가 어려우니 샘물을 하나 남겨놓는다면 나에 대한 보답이 될 거요.”라고 했다.
이날 저녁 사람들은 비바람이 세게 오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산기슭 주위 사면에 도랑이 나타난 것을 보았고 샘물이 흐르는데 한해가 지나도 마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도랑을 천사거(天師渠)라 부른다.
또 엽법선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 당 고종 현경(顯慶) 연간에 엽법선이 명을 받들어 천태산에 황전재(黃籙齋)를 수리하러 갔다. 도중에 광릉(廣陵)을 지나는데 아침 일찍 과주(瓜州)를 건널 예정이었다. 이 날 강 해안에는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강변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때는 봄날이라 물가는 맑고 따듯했다. 갑자기 황, 백 옷을 입은 두 노인이 서로 말하기를 “이 참에 바둑 한판 두기에 딱 알맞지 않는가?” 그러면서 공중을 향해 선동을 불렀다.
잠시 후 선동 하나가 강물을 헤치고 솟아나오는데 그의 옷은 물에 전혀 젖지 않았다. 한 노인이 선동에게 말하기를 “바둑판과 의자를 빨리 가져오너라!”
선동이 명을 받들어 바둑판과 의자를 모래 위에 놓았다. 두 노인은 마주 앉아 약속하기를 “누가든지 이기든지 내일 북쪽에서 오는 그 도사를 잡아먹기로 하지” 그래서 두 사람은 대소하며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시간이 제법 흘러 백의 노인이 말했다. “자네가 졌네, 그 도사가 맛있다고 빼앗지는 말게!”
두 노인은 멀리 한번 쳐다보더니 천천히 수면 위로 걸어가 점점 강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뱃사공들은 그들이 엽법선을 해치려는 것을 알고 당혹해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궁중의 관리가 말을 타고 나루터에 왔는데 배를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하였다. 뱃사람들은 어제의 일을 관리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관리가 듣고서 매우 놀라고 겁이 났는데 얼마 안 되어 엽법선이 도착했다. 그 관리는 들은대로 엽법선에게 말하자 그는 웃으면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신경 쓰지 말게!”
당시 엽법선의 부적은 신과 같이 영험해 현자든지 어리석은 자든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궁내의 관리, 뱃사공 내지는 수종 드는 사람들은 황급해했다. 엽법선은 그들의 심정을 알고 배를 빨리 출범시키도록 하였다. 배가 해안에서 떠나자마자 폭풍과 파도가 크게 일어나며 날이 깜깜해졌다. 배안의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대경실색하였다. 엽법선은 천천히 시자에게 말했다. “검은 부적을 꺼내 뱃머리에 던져라”하여 부적을 던지니 강의 수면은 즉시 바람이 잦고 파도가 잔잔해졌다. 얼마 안 되어 건너편 해안에 닿았다.
배가 해안에 닿자 엽법선은 배를 부리는 사람에게 말했다. “친구들 몇 명 불러와서, 연안 십 리안에 아마도 수초가 싹이 많이 자란 곳에 가보면 큰 물고기가 있는데 잡아가도 되오. 한몫하게 될거요!”
사공들이 엽법선이 시킨 대로 가보았더니 몇 리 안가서 과연 크기가 백 척 정도 되고 굵기가 30여 아름이나 되는 대어가 있었는데 모래톱에 죽어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물고기 머리에 구멍이 나 있고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공들은 그래서 대어를 한덩이 씩 잘라서 고기를 실어가지고 돌아왔고 근처의 백성들은 한 달이나 배불리 먹었다, 알고 보니 바둑 두던 사람 중 흰옷을 입은 노인이 이 흰 물고기 요정이었던 것이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좋은 사람이 신을 존경하면 경사가 많고 바람 맑고 달 밝아 모두 뜻대로 되네
흉악한 나쁜 자는 늘 마비되거나 얻어맞아 흙탕물에 떨어진다네
모두 신령이 암암리에 배치한 것이니 권선징악에는 모두 근거가 있다네
악인을 사람은 두려워하나 하늘은 두렵지 않고 선인을 사람은 속이나 하늘은 속이지 않네
청도에서 군함을 검열하니 모습 보이지 않고 신령이 그대에게 명해 두 눈이 미혹되네
종래로 독재는 대개 화를 부르니 마침내 처연히 지옥에 떨어지네
좋은 봄날 곧 오리니 만장의 무지개 환우에 춤추리라!
好人敬神多慶吉,風清月朗皆稱意; 壞蛋凶惡常麻痹,跌打損傷落溝泥:都是神靈暗鋪排,扶善懲惡皆據理:人惡人怕天不怕,人善人欺天不欺。青島閱艦形不見,神靈命爾雙眼迷…從來獨裁多招禍,終究淒然下地獄。大好春光將來臨,彩霞萬丈舞寰宇!
출처: 《태평광기》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