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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하여 행운의 신이 우리집에 오다

대법을 수련하여 행운의 신이 우리집에 오다

작가 : 영하(寧夏) 대법제자 정우(静宇)

[정견망 2007년 8월 13일]

여러 해 질병에 시달리고 운명이 험했으며 가정관계가 복잡해서 나는 늘 고통 속에 살았으며 나의 운명에 대해 극도로 불평했다. 법을 얻은 후 인연관계를 알고는 심태가 평온해졌으며 사부님의 우주대법 “진선인”에 비추었으며 이때부터 나의 운명은 바뀌었다.

나는 1997년 6월부터 법륜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에 심장병, 부인병, 담결석, 결핵성 복막염, 경추병, 요추반 돌출, 만성인두염, 류마치즘 등이 있었다. 그때는 매일 죽어버리면 되지 하면서도 죽기는 두려웠다.

법륜대법을 수련한 후 모든 질병은 날개돋힌 듯 날아가 버렸으며, 나의 세계관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일을 하고 길을 걸어도 피곤하지 않으며 종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느낌, 병이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누가 알았으랴, 1999년 7월 20일에 사악한 당은 법륜공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온 천지에 거짓말을 뿌리면서 세인들을 속였다. 그곳의 사악은 우리 연공장을 해체시키고 대법서적을 가지고 갔다. 그건 정말 사악이 하늘 땅을 뒤덮는 것이어서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경찰은 우리에게 “보증서”를 쓰게 했는데, 나는 쓰지 않았다. 그때 비록 사악이 매우 창궐할 때였지만 나의 대법수련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 나는 대법이나 사부님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년 여 동안 수련의 날들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각지의 대법제자들이 북경에 올라와 법을 실증하다가 계속 붙잡히고 폭력을 당하고 노동교양소로 끌려갔으며, 나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래서 나는 2000년 말에 법을 실증하러 북경에 갔다. 나는 천안문 광장에서 붙잡혀 북경 평곡현 감옥에 갇혔다. 비록 악경에게 돈을 빼앗기긴 했지만, 나는 사부님의 보호 하에 다음 날 감옥을 뛰쳐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천안문 광장에서 또 잡혔다. 나는 얻어맞아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며 다음날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그곳의 공안은 나에게 “공공질서를 교란”했다는 죄명을 씌워 또 나를 15일간 구류했다.

나중에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으며 사흘에 한두 번 소란을 피웠다.

2004년 3월에 악경이 나를 속여 집에서 불러내 은천 세뇌반으로 보냈다. 나는 그곳에 2개월간 잡혀있었는데, 고통을 받아 몸은 장작처럼 말랐고 까만 머리는 거의 다 벗겨졌다.

이 기간에 식구들도 사악에게 속임을 당하고 겁을 먹어 수련하지 않는 남편과 모친은 대법책을 훼손했다. 내가 집에 돌아오자 사람들은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했다. 남편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했다. 모친은 내가 대법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기 딸로 여기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이웃들도 이상한 눈으로 보았으며 친척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가정감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 때 나는 정말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대법서적이 없어 공부할 수 없었고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의 정신이 거의 붕괴되려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늘 생각했다. 사부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진선인”이나 대법이나 사부님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쨌든 간에 반드시 대법을 수련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모친이 나의 생명을 주었지만 나를 건강하게 하지 못했으나 대법은 나에게 생명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건강을 주었다. 사부님은 나를 지옥에서 끌어내셔서 온몸의 업력을 씻어내 주시고, 나에게 “진선인”에 비추어 좋은 사람이 되고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일을 만나도 안으로 찾으며 일체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며 이익 앞에서 다투지 말고 곳곳에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이런 모든 것이 어디에 잘못이 있단 말인가? 나는 대법과 사부님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며 내가 잘못하여 사악에게 틈을 타면서 식구들을 조종하게 하여 대법에 미안한 일을 하여 죄업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굳건히 사부님과 법을 믿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가정의 압력 하에서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하는 한편 “세 가지” 일을 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우리 식구는 매우 고집에 세어 진상을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악한 당이 각종 운동으로 그들을 겁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악의 수법이 매우 독랄하고 음험한 것을 알고 있어서 내가 손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문화대혁명 중에 부친은 자본가로 타도되었고 큰 아버지는 “사불청(四不清)”, 당숙은 “현행반혁명”으로 비겨졌다. 가정성분이 부농(富農)으로 정해졌으며 우리 집의 상하노소 모두 사회의 경멸을 받았다. 오로지 모친의 집 가정만이 성분이 좀 좋아서 말할 권리가 좀 있었고 토론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었다. 그녀는 많은 이유를 찾아 이치에 비추어 논쟁했다. 우리 집을 부농으로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건이 충족하지 않다고 하면서 항변했다. 나중에 비로소 “상중농(上中農)”으로 바뀌어져 우리는 학교에 갈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학교도 못다녔을 것이다. 그래서 식구들은 이 악당(惡黨)에 대해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몇 년래 모친은 속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압력과 두려움으로 대법에 미안한 일을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혼잣말로,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하고 중얼거리며 매우 후회하는 소리를 들었다. 2005~2006년에 모친은 며칠 간격으로 넘어졌는데, 매번 넘어질 때마다 매우 심하게 다쳤다. 그러나 매번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모친은 이미 78세인데, 보기에 명이 다 된 것 같았다.

2006년 2월 경, 모친은 병원 진단결과 폐암으로 판정이 났고 이때부터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에 보내 치료했으나 약을 쓸 수도 없었고 수혈을 했어도 반응이 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살아 죄를 받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사후처리를 하려고 집으로 보내어 마지막을 기다렸다. 바로 이 때 어머니는 또 혼잣말로,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라고 하셨다. 내가 추궁하자 그녀는 책을 불태운 과정을 이야기 했다. 그녀는 악당이 나를 놓아주지 않을까봐 손해를 볼까봐 염려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더욱 견정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 듣던 내가 이번에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완전히 상반되는 태도로 일을 하였다. 그녀는 극히 후회했으며 비로소 크게 일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고 대법과 사부님과 딸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상심해서 울었다. 또 말하기를, “나는 80이 다 되어 가는데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면 잘못을 보충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녀는 일평생 충성하고 효심이 깊었으며 담이 작아 일을 두려워하고 양심에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죽음에 임박해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엄마, 잘못한 줄 알았으면 되었어요. 사부님은 자비로우시며 고의로 한 것이 아님을 알고 계세요. 사부님은 한 가닥 선념을 보고 계시니 구도하실거예요.” 그녀는 물었다. “사부님이 아직도 나를 용서하실까?” 나는 말했다. “물론이예요. 그저 대법에 동화되기만 하면 되고 사악의 본질을 청리하기만 하면 되요. 호신부를 줄테니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세요. 사부님이 보호하실 거예요.” 그녀는 기뻐하며 받았다. 나는 “파룬따파하오”를 가르쳐주었으며 그녀는 끊임없이 염했다. 또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대법수련을 지지할께,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 이후 모친의 만성병이 낫게 되었다.

모친이 중병이 들었을 때 집에 사람이 몇 명 왔는데, 사륜차를 몰고 와서 나무를 가져와 모친의 관을 만들어 후사를 준비했다. 나무시장에서 한 차의 나무 판을 가져왔는데 차 위에는 기사를 합해 네 명이 있었다. 돌아가려고 서두르다 큰 다리를 지날 때 차는 교각에 부딪혀 뒤집어졌다. 당시 그곳에 있는 사람은 놀라 멍했는데 이번에 차사고로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곳 사람들은 말했다. 이 다리에서 사고가 난 사람은 한 사람도 평온하지 못했다. 그러나 네 명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고 또 차도 부서지지 않았으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웬일인가? 이것은 그날 이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삼퇴를 했고 또 몸에는 호신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비로운 사부님이 이 일행을 구한 것이었다.

일이 있던 다음날 같은 곳에서 한 오토바이가 농사용 차량과 부딪쳐 한 명이 사망하고 두 사람은 여러 곳이 골절되고 혼미해져 깨어나지 못했는데, 병원에 보내진 후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집에 발생한 이런 일을 보고 나의 사촌 오빠 한 사람은 지금 법과 연공을 배우고 있다.

발표시간 : 2007년 8월 13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8/13/477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