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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에 금생에 옴은 중생을 위함이다

만고에 금생에 옴은 중생을 위함이다

작자: 캘리포니아 제자

【정견망 2008년 3월 2일】

자비롭고 위대한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동수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2003년 초 법을 얻은 제자이다. 사이트에서 사존의 모든 경문을 읽은 후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다. 비바람 속에 사존의 보호하에 5년이 지났다. 오늘 이 법회의 신성한 전당에 서서 여러분과 나의 수련과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매우 영광스럽다.

많은 동수들과 비교하면 나의 노정은 비교적 평탄했다고 할 수 있다. 무슨 경천동지하는 장거도 없고 눈물을 흘리게 할 만한 일도 없으며 단지 사존의 가르침에 따라 평상적으로 구도중생하고 있다.

법을 얻기 전 나는 내내 생명의 의의와 우주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었다. 아마 생명 중에 불성의 일면의 체현인지 어두움 속에서도 나는 우주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도서관에 많은 자료가 있었으므로 2년 동안 시간만 나면 나는 그곳에 가서 내가 알만한 일체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우주 중 최고의 진리는 찾지 못했다.

2002년 나는 유학을 떠났다. 나는 그 학교의 중국문화도서관에서 <장춘보도원법회설법>과 <법륜대법의해>를 읽어 본 후 그 내용이 매우 심오함을 발견했고, 결코 국내 매체에서 소개하는 선전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대법 사이트에 들어가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날 내 기억이 뚜렷한데 햇빛이 매우 밝았다. 나는 컴퓨터 사이트에서 <전법륜>을 열었다. 한 단락을 보니 나의 심장은 쿵쿵 빨리 뛰었다. 그야말로 억제할 수 없는 격동의 순간이었는데, 나는 이것이 내가 내내 찾던 진리임을 알았다. 나는 반나절 동안 <전법륜>을 한번 통독했는데, 읽어 내리는 과정 중에 눈물이 수시로 흘러나왔다. 다 읽은 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제자는 대근기지인이 되겠습니다.”

그 후 며칠간 시간순서대로 사부님의 모든 경문을 다 통독하였다. 그 며칠은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불화살처럼 위로 뚫고 올라갔다. 내가 나아가 봄에 따라 마음의 용량이 점점 확대되었다. 마침내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온 의의를 알았다. 나는 사존의 경문을 전부 인쇄하여 책으로 제본한 다음 모든 녹음, 녹화 자료를 다운받아 CD로 구워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정법수련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나는 다만 한 가지 신념만 있었다. 중생구도, 대법실증. 나는 늘 사부님의 이 말을 기억한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치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이야기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정진요지, 청성>

오늘이 세상에 온 사람은 모두 우리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고 더구나 우리 주변에는 일찍이 나와 연을 맺은 중생들이 또 있다. 우선 나는 내 주위의 국외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우편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했으며, 그들에게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정황을 알려주었다. 그곳의 연공장과 연결된 후 일부진상자료를 가져와 대륙에 우편진상을 시작했다.

국내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전화로 통화하여 내가 국외에서 이해하는 정황을 알렸다. 그 기간 나는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했고, 내가 귀국해서 당해야 할 정황을 알았기 때문에 견실한 기초를 다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박해받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존께서 일찍이 2001년 말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현재 남은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우리 수련생들 자신의 원인이다.” <플로리다 법회 설법>

법을 얻은 지 4개월 후 귀국했다. 귀국한 후 우선 전공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출국하기 전 나는 예비당원이었는데 귀국 후 규정대로 사상보고를 써야 했다. 나는 내가 외국에서 이해한 대법이 박해받는 정황을 썼다. 매주 정기 조례나 아니면 반에서 회의를 열 때 나는 각종 각도에서 대법의 박해진상을 말했다.

우리 교수님과 학우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믿었으며 그들은 내가 그들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설사 이렇더라도 학생 일을 관할하는 교수님은 늘 나를 찾아 담화했다. 매번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진상의 기회로 삼았다. 그들에게 내가 가져간 진상 디스크를 주었고 그들은 다 알았다. 그러나 나의 안전을 고려하여 나더러 연공하지 말기를 희망했다. 우리 학과에서 이전에 연구생이 파룬궁을 연마한 후 이유없이 실종되어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한번은 그 교수님이 내가 만약 계속 연마한다면 박사생 추천자격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나는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더라고 내가 대법을 포기하는 것은 안 됩니다. 이것은 내가 일생 추구해 온 진리이며 내 일생의 의의가 있는 곳입니다. 교수님은 이전에 저를 신임하셨는데 그것은 제가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천하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릴 것은 파룬궁은 중화민족의 희망이 있는 곳입니다. 파룬궁만이 오늘 중국을 좋게 바꿀 수 있습니다. 만약 파룬궁을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도 주저없이 포기할 수 있습니다.”

말하다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그 교수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때 이후 다시는 나보고 대법을 포기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가져온 진상자료는 매우 제한되어 있어 돌아온 후 처음에는 조건이 없었고 어떻게 진상자료를 만드는지 몰랐다. 그래서 스스로 공개서신을 썼는데 대개는 대법의 역정과 박해진상이었고 게다가 사부님의 <나의 한 가지 소감>(그 때는 아직 사부님의 경문을 이렇게 붙이거나 내보내서는 안 되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을 인쇄하여 복사점에 가서 복사를 했다. 그 후 교실에 나누어 주거나 공원같은 일부 공공장소에 붙였다.

매학기 개학하여 전공을 선택하게 할 때 교수님들은 각 교실에 자기의 전공 내용을 소개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 전날 밤 진상자료를 각 교실의 책상과 강단 위에 놓았다. 다음날 거기 가서 효과가 어떤가 보았는데 가는 길에 어느 학생이 교학건물에서 자료를 들고 정신을 집중하여 보며 걷고 있었다. 그때 나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나와 함께 일부 일을 했다.

(2008 미국 서부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 원고)

발표시간:2008년 3월 3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3/3/513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