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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정행으로 마귀굴을 뛰쳐나오다

정념정행으로 마귀굴을 뛰쳐나오다

작자: 요녕대법제자

【정견망 2010년 5월 12일】 9월 28일 오전 8시 경, 고향에서 돌아온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금주(錦州) 여아하(女兒河) 파출소에서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나는 마당에서 오이를 따고 있었다. 그들은 마당에 들어서더니 나에게 볼 일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사복차림이라 누군지 몰라 “어디서 왔습니까,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여아하 파출소에서 왔다면서 집으로 들어와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무슨 할 말이 있으면 집에서 하라고 했더니 그들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안가겠소, 무슨 일인지 사람에게 보여선 안 될 일인가요? 아무 데서나 말하면 안 됩니까?”라고 했다. 나중에 그들은 자기들도 무슨 일인지 모르며 상사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자 그들은 빨리 먹고 가자고 했다. 한 사람이 집을 나가 마당에서 전화를 한 뒤 잠시 후 차량 한 대가 우리 집 앞에 멈추었다. 또 두 사람이 들어 왔는데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집에 들어와 물건을 뒤졌다.

몇 권의 진상 소책자, 전단지가 있었는데 뒤지고 또 뒤지더니 사부님께 올리는 향 세 합과 연꽃을 모두 가져갔다. 나중에 내가 “다시는 뒤지지 마시오.”라고 했더니 그들은 차가 밖에 있으니 얼른 차에 타라고 했다. 당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 내 옆에 계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다. 잠시 후 파출소에 도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어느 경찰이 말했다. “앉으시오, 이번에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한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당신을 찾으러 왔소.” 나는 이것이 적봉(나는 이미 둘째 언니집 식구 세 사람이 모두 붙잡힌 것을 알기 때문이다)쪽이 아닌가 생각했다. 앉아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파출소에서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이야기했다.

나중에 네 명이 왔는데 역시 사복차림이었고 줄곧 적절치 못한 일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가 먼저 일어서서 예의 바르게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은 다짜고짜 굶주린 이리마냥 달려들었다. 먼저 두 사람은 죽어라 나의 두 팔을 잡아당겼고, 또 두 사람은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가 차에 태우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달렸다. 도중에 나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으나 그들은 입도 뻥긋 하지 않았다.

나중에 속으로 발정념을 했는데, 비록 이렇게 갑자기 생긴 일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니 대법은 나에게 지혜와 대담성을 주었다. 차에서 나는 좀 바로 앉아야겠으니 수갑을 풀어달라고 해 똑바로 앉았다. 그들에게 누가 지도자인지 물었더니, 나중에 한 사람이 기사에게 차를 멈추라고 했다. 차가 고속도로 한쪽 편에 멈추자 다른 사람이 수갑을 풀어주어 나는 똑바로 앉았다. 나는 비로소 차량에 한 층의 껍질이 씌워져 바깥에서는 안에 앉은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적봉 국보대대 사람들이었다. 나는 수련의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또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다.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 곳이 바로 당신들이 가서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구도(救度)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2002년 워싱턴 DC 법회 설법>

그들이 나를 박해함을 결코 허용할 수 없었다. 반드시 정념정행하여 시시각각 정념으로 악인을 정시했다. 8백 여리의 노정도중에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줄곧 발정념을 했다. 적봉에 도착하자 이미 저녁 8시가 넘었다. 나중에 그들은 식사를 하기에 나도 식사를 요구하자 비로소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다 먹은 후 나를 적봉 송산구 간수소에 보내 가두었다.

간수소에 있는 기간 장효명(張曉明)이라는 28,9세 된 여자 교도관이 있었다. 그녀는 원래 형사대에 있었고 매우 사악하여 파룬궁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 그녀는 나를 찾아 담화를 했는데 사무실에서 파룬궁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게 하면서, 손을 들어 먼저 사람을 때리고 사악하게 말했다. “당신은 서서 걸어 들어왔지만 누워서 나가게 해 줄테다.”

이렇게 먼저 위협을 주었으나 나는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았고 자비심으로 그녀 배후의 사악을 제거하여 기타 대법에 대한 범죄를 짓지 않도록 했고, 사람이 사람에게 박해하는 게 되지 않도록 했다. 그녀는 탁자에서 무언가를 들어서 나를 향해 때렸는데 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때려도 나는 당신을 때리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파룬궁이다.” 그녀는 파룬궁이란 세 글자를 말하지 못하게 했는데 나는 방법을 생각해내어 이 세 글자를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먼저 좀 멍하니 뜸을 들이더니 나중에 미소를 지으려했고 쑥스러운 듯 난처해했다. 잠시 후 나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나중에 그녀는 또 나를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어느 남자 교도관(성이 유씨인 사람)과 함께 와서 나의 뺨을 두 대 때렸다. 당시 나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으며 즉시 사악을 제지했다. 정념으로 흑수와 사악을 제거한다. 그 남자 교도관은 손을 부르르 떨고는 즉시 사무실을 나갔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적봉 송산구 간수소에서 일을 하는데 각종 콩을 골라내 광택을 낸 다음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이었다. 광택을 내는 것은 육체노동이었고, 고르는 노동은 눈이 매우 피로했다. 쭈그러진 콩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루에 14~15 시간씩 노동을 했다. 나는 101호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세 명의 대법제자가 있었다. 한사람은 고계하(高桂霞)라는 대법제자였는데 그녀는 송산구 국보대대에서 맞아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다른 제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얻어맞았다. 매일 형사범죄 혐의자와 함께 일하며 하루에 두 끼 밥만 먹었는데 한 끼마다 옥수수면, 떡 한조각과 배추탕이었다. 그 여교도관 장효명은 감방 우두머리에게 지켜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내가 외울 수 있는 법을 외웠으며 정시가 되면 나는 마음 속으로 발정념을 했다.(방에서는 작은 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매일 나는 일부 정황을 관찰하며 그렇게 날이 지나갔다.

나 역시 방법을 생각해 방안의 사람에게 진상을 말했으며 대법제자와 교류했다. 우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선으로 대했고(이 역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선의 역량은 거대했다. 천천히 사람들과 접촉하던 중 하루 24시간 먹고 자고 늘 함께 하는데 말을 안할 수가 있겠는가? 그 여자 교도관이 자리에 없을 때 나는 방법을 찾아 그녀들에게 말했으며 목적은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탈대를 시켜주었다.

그 교도관은 매일 출근하면 먼저 방에 와서 검사를 했는데 때로는 트집을 잡았다. 예를 들면 하루는 그녀는 이불이 표준대로 개어지지 않았다며 사람을 시켜 바닥에 던지게 하고 그 위에 물을 뿌리게 할 만큼 사악했다.

그녀는 사악당의 규정인 감옥 규정을 외우라고 했으며 외우지 못하면 반나절 서 있고 반나절 쪼그리고 앉아 밥을 못 먹게 하는 벌을 주었다. 하루는 그녀의 배후에서 머리는 작고, 배는 크며 네 다리는 가늘고 눈이 치우친 한 마리 괴물을 보았다. 내가 공능으로 그것을 고정시킨 다음 소멸시켜버렸다. 그때 이후에 그녀는 좀 나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천안문 분신사건은 가짜이며 강택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으며, 나간 등 일당이 줄곧 박해하고 있다는 등을 말했고 그녀는 들었다.

나중에 그 방의 방장은 후허하오터시로 뽑혀갔는데 그녀는 사기죄로 형을 받았다. 그 호실의 환경도 좀 나아졌다. 우리 몇 명의 대법제자는 서로 교류하고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했다. 어느 대법제자가 대법 가곡을 부를 수 있어서 방안의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함께 불렀다. 우리가 <홍음>을 외우자 그녀들도 따라 외웠다. 환경이 점점 좋게 변했고 연말이 되자 그 여교도관은 호실 사람들에게 포도를 보내주었다.

공안국, 검찰원 등의 사람이 와서 소위 심문하면 나는 늘 이것을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는 기회로 삼았다. 한번은 송산구 검찰원에서 사람이 와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건강효과를 말해주었다. 또 한 번은 적봉검찰원에서 두 사람이 왔는데 또 그녀들에게 진상을 말했다. “제가 그녀들에게 편지를 쓸 께요. 마음속의 말을 해 드릴께요.” 그녀들은 그러라고 했다. 방으로 돌아와 교도관 장효명에게 펜과 편지지를 요구했다. 처음에 그녀는 세장의 종이를 주었는데 다 쓰고 나서 또 쓰려고 했다.

두 번째 그녀는 또 종이 6장을 주었고 나는 선을 권하는 일을 많이 썼다. 공안국에서 검찰국, 법원에 이르기까지 그들도 모두 진상 편지를 보았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기회였다. 표면적으로 내가 하고 있지만 사실 사부님께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중 송산구 법원이 개정되자 나는 법원에서 진상을 알려 사악을 놀라게 했다. 재판이 끝난 후 나는 정정당당하게 사부님의 보호 하에 법원을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전후로 약 3개월간이었고 나는 또 법을 실증하는 환경으로 돌아왔다.

발표시간:2010년 5월 12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12/660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