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통 청소 이야기에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잘 원용하자”를 깨달음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다년간 “조사정법(助師正法)”은 거의 우리의 말버릇이 되었다. 물론 내심 깊은 곳에서 이생의 사명은 바로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며 “조사정법”의 사전(史前) 큰 서약을 실현하는 것임을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러나 신 경문 “무엇을 조사정법(助師正法)이라 하는가”를 공부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착실히 수련하는 중에서의 일사일념, 일언일행과 진정한 “조사정법”의 차이를 깊이 깨닫게 됐다.
오늘 법공부하다가 석가모니 부처가 제자더러 목욕통을 청소하라는 이야기를 읽게 됐다. 마치 제호를 정수리에 끼얹는 듯이 “사부가 무엇을 원하면 우리들은 바로 무엇을 한다”는 법리를 깨닫게 됐다.
“여러분에게 예를 하나 들겠다. 석가모니에게는 일찍이 이런 고사(故事)가 있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목욕을 하려고 삼림 속에서 그의 제자를 불러 목욕통을 청소하라고 했다. 그의 제자가 거기에 가서 보니 목욕통 안에는 벌레가 가득 기어다니고 있어서 목욕통을 청소하려면 벌레를 죽여야 했다. 제자는 돌아와서 석가모니에게 알렸다: 목욕통 안이 온통 벌레입니다. 석가모니는 그를 보지도 않고 한 마디 했다: 자네는 가서 목욕통을 깨끗이 청소하게. 이 제자가 목욕통 거기 가서 보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벌레는 죽기 때문에 그는 한 바퀴 돌고는 또다시 돌아와서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사존(師尊)님, 목욕통 안이 온통 벌레여서 만약 손을 대기만 하면 벌레들을 죽이게 됩니다. 석가모니가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청소하라는 것은 목욕통이네. 제자는 문득 크게 깨닫고 즉시 목욕통을 깨끗이 청소했다.”(전법륜)
석가모니 부처가 요구한 것은 깨끗한 목욕통이나 제자는 자신의 층차에서 “목욕통을 청소하면 곧 벌레를 죽여야 한다”고 인식해 즉시 그의 사부가 요구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이 사실에서 자신의 사상과 언행을 돌이켜보면, 정법노정 중에 일부 관건적인 부분에서 잘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으로 사존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착실히 수련하는 중에서 “사부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면 우리는 바로 그것을 한다”에 대한 요구에서도 때때로 절충하고 있는데, 그 목욕통을 청소하는 승려와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사존께서는 《더 정진하자》에서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내가 몇 마디 더 하겠는데, “사부가 무엇을 원한다면 우리들은 바로 무엇을 한다”를 말해 보겠다. 사실 어떤 때 당신들은 입으로는 사부가 무엇을 원하면 당신들이 무엇을 한다고 말하는데, 그러나 구체적인 정황을 마주하기만 하면 비자각적으로 여전히 적당히 절충을 한다. 당신들은 늘 당신들 자신의 생각이 있으며, 당신들은 당신들의 생각이 당신들의 실제와 맞으며 당신들의 정황과 맞는다고 여기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당신들은 잊지 말라, 오늘의 역사는 정법을 위해 남긴 것이며, 또한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고 자신을 성취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사람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또 한 가지는, 또 일부 사람은 늘 생각한다: 사부가 원한다면, 우리는 곧바로 한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잘 해야 하겠다며 ——사부가 원하는 것을 여전히 또 개변시켰다. 늘 일부 사람의 마음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며, 또한 일부 교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언행과 대조해보니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비자각적으로 여전히 적당히 절충을 한다.” 뿐만 아니라 교활한 사람의 마음으로 늘 구실을 찾아 이 큰 누락을 감추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또 “조사정법” 방면에서 법에서 빗나간 상태를 줄곧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부님의 “무엇을 조사정법(助師正法)이라 하는가”를 읽고서야 나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듯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줄곧 일부 수련생들에게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한 가지 아주 관건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어떻게 사부를 돕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컨대, 사부 어떤 일을 말했거나, 혹은 사부가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정했을 때, 일부분 수련생은 늘 사람의 마음으로 사부를 가늠하며, 이 일은 사부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 일을 저렇게 하면 어떠어떠하다고 여기면서, 마음을 사부가 말한 데 따라 어떻게 잘 원용(圓容)하고 구체적인 일에서 방법을 생각하려는데 두지 않는다. 더욱이 어떤 수련생은 사부의 생각을 고치려 하고, 또 어떤 수련생은 수련생 중에서 자신의 생각이 고명(高明)하다고 퍼뜨리며, 또 어떤 사람은 사람 마음으로 사부가 말한 일을 이해하지 못해,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부의 가족을 찾아 다른 방법의 근거를 얻어내고자 한다. 사실 사부가 무엇을 하려 하는, 그것은 무량한 천체의 정법의 수요이다.”
제자는 반드시 “수련생으로서, 조사정법하려면, 단지 사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잘 원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비로소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인데, 어찌 사부더러 당신을 도우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무엇을 조사정법(助師正法)이라 하는가)를 마음에 깊이 새길 것입니다.
층차의 제한이 있으니 부당한 곳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1년 8월 10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8/10/765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