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일선”을 깨닫다
작자: 무심(無心)
[정견망] “명현일선(命懸一線)”의 뜻은 대체로 한 생명이 한 가닥의 실과 인연을 맺어 공존관계를 만들며 이 한 가닥의 실에 생명의 존재가 묶여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한 가닥의 실이 끊어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것은 생명체의 존망에 관련되며 다시 말해서 “실(線)”은 “명(命)”의 존재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며 “명”은 바로 “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묶여져 있는 생명이 하나의 홍대(洪大)한 천체(天體)라면 안에는 무량한 중생들이 생존하고 있으며 이 한 가닥의 실의 품질,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이 천체 중 중생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공간의 어떠한 물체도 모두 생명을 체현하며 이 실 역시 하나의 생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실이 이미 마비되고 냉담하게 변하여 천체의 안위(安危)를 위해 고난을 감당할 책임감이 없다면 중생의 구도를 위해 일체를 지불하려는 희망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실제상 이미 마땅히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을 잃은 것이며 그는 곧 부패 중에 있게 될 것이고 교란 중에서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못하고 끊어질 것이며 그와 연을 맺은 이런 묶여져있는 “명”은 이 한 가닥의 “선”에 의해 훼멸될 것이다.
여기에서 깨달은 것은 정법기간의 대법제자는 마치 이 한 가닥의 실의 화신(化身)과 같으며 그에게 묶여져 있는 명은 바로 제자들이 각자 대응하는 천체의 범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자신의 수련을 잘하는 것이 바로 중생을 구하기 위함이며, 중생을 구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중생들이 모두 구도됐다면 자신은 자연히 힘들게 일하여 이룬 공적이 크며 공덕이 무량해 중생들의 존경을 더 한층 받게 될 것이다. 중생들이 없으면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도 없다.
중생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의 한 가닥 생존 기회는 자구(自救)의 의미가 있고 없는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한 가닥 실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강하고 강하지 않는가에 달렸다. 제자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의 한 가닥 생존기회는 어떻게 자신을 보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타인을 위해 감당하려는 데 있다. 오직 중생구도에 마음을 두고 있어야만 자신의 한 가닥 생존기회가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여러분들 모두가 명현일선에 있지만 책임이 귀속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주대법은 이런 두 종류의 생명경지에 대한 요구 역시 부동하다.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종래로 천체에 어떠한 책임이 있고, 중생에 어떠한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줄곧 제자들의 사명과 제자의 책임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어떻게 이 한 가닥 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는 가에 달렸으며 이로 인해 비로소 묶여져 있는 천체를 운도(運渡)하여 연결되어 있는 중생들을 구하는 것이다. 세간에 체현되는 것은 바로 어떻게 법공부를 잘하고 어떻게 사부님께서 배치한 일을 잘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차이는 면할 수 없으니 많은 시정을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8월 1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8/16/766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