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내려놓고 정체적으로 협조해야만 비로소 위력이 더욱 크다
작자: 금주(錦州)대법제자
[정견망] 우리 지역의 수련생들은 매우 정진한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 역시 매우 자발적이다. 특히는 협조인은 매우 수고하는데 밤낮 수련생들을 위해 쉬지 않고 바쁘게 일한다. 하지만 수련생들이 수련함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하나의 문제를 토론할 때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거나 건의하는 현상이 있다. 물론 수련생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을 실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발생한 일이다. 수련생 6명이 CD를 배포하다가 납치됐다. 협조인은 소식을 듣고 즉시 현장에 가서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상황을 모르는 동수들에게 발정념을 하라고 통지했다. 모두들 온 하루 바쁘고 저녁에 돌아와 교류하면서 인근 현 수련생들에게도 발정념하라고 통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통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분쟁이 생겼다. 어떤 수련생들은 전화와 이메일을 이용하자고 했고(수련생이 납치된 일을 이미 이메일로 소식을 알렸음), 어떤 수련생들은 직접 찾아가 통지하자고 했다. 그 김에 소통에 대해서도 교류했다. 이치대로 말하면 어느 것도 틀리지 않는다. 이른 바 한 발자국 차이는 바로 자신이 견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과 협조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옳다고 견지할 때 생각하는 것은 법을 위하고 수련생을 위하는 것으로서 법에서 각자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심태가 옳지 않고 평온하지 않으며 편안하지 않다. 평온하고 자비한 것이 아니라 격양되고 매우 격동되는데 이것은 곧 사람의 것이다. 신이 문제를 보는 것은 표면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 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신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본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쟁론할 때 자신의 심태가 어떠한가? 신이 응당 있어야 할 심태인가? 당연히 아니다. 표면으로는 어떻게 옳다고 하지만 법에 있지 않고 사람의 자아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응당 다른 사람과 협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건의가 자신보다 주도면밀하지 못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협조해야 하며, 상대의 완벽하지 못한 면을 스스로 묵묵히 잘해야 한다. 이러한 심태가 있다면 어떻게 해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수련생들의 마음이 매우 바르며 과분하게 자신을 견지하지 않았기에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법에 있었기에 법의 위력이 있게 된 것이다. 그 사악은 우리들 중의 그 어느 누구도 박해할 수 없고 미처 도망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쟁론 중에서 누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는다면 그가 바로 법에서 진정으로 제고된 것 이다. 누가 자신의 의견을 견지하면서 내려놓지 못한다면 정말 옳다고 하더라도 또 어떠하단 말인가? 법에서는 약간한 제고도 없다.
사실 수련생들은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련을 하기 전에는 모두 집착이 있는데 역시 정상이다. 다만 그들이 시간을 오래 지연시키지 않는다면 중생구도의 위력을 초상(超常)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매번 문제를 토론하는 기회를 틀어쥐고 법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는 수련생들은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타당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희망한다.
발표시간: 2011년 8월 16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8/16/766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