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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심을 버린 작은 체험

집착심을 버린 작은 체험

작자: 뉴질랜드 대법제자 이성군(李成君)

[정견망] 최근 수련 중에서 하나의 이치를 깨닫게 되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데 바로 어떻게 집착심을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집착심을 버리려면 직접 이 집착심에 대하여 그것을 배척하고 반대해야 하는데, 한 동안을 견지하고 나면 그것은 약해지고 나중에는 소멸되어 버린다. 실은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아주 효과가 있다. 바로 근본에서부터 착수하여 직접 사람의 이기적인 심리(私心)를 겨냥하는 것이다. 끓는 물을 퍼냈다 다시 부어 끓는 것을 막으려 하기보다는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사실 모든 집착심은 모두 사람의 이기심(私心)에서 오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예를 들어보자, 사심(私心)이란 마치 나무의 줄기와 같고, 각종 집착심은 모두 이 나무줄기에서 생겨나는 가지이다. 그러므로 사심이 작아진다면 각종 집착심도 약해질 것인데, 이것이 바로 무사(無私) 경지가 높은 도리이다.

사존께서는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서 부딪친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것을 얻었을 때 역시 다른 사람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가 이것을 잃었을 때 그에게 어떤 상해가 있으며 그의 마음이 괴로운가, 괴롭지 않은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며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나서 그 연후에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바로 당신들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자신을 생각(先他後我)의 정법정각의 원만으로 수련성취시키려고 한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 불성무루”에서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에까지 생각해야 한다! 대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매번 우리가 한 사람 혹은 한 가지 일을 만날 때마다 첫 번째 염두가 자신인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할 수 있고, 매 하나의 염두가 모두 완전히 남을 위하고 자신은 없도록 요구한다면, 매 하나의 염두가 모두 완전히 남을 위하는 것이라면, 그는 수련성취한 생명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하기 쉽지 않으며, 나도 완전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직 우리가 이런 사유방식을 운용하고 이 방향을 향해 노력하기만 하면 사심은 모르는 사이에 줄어들고, 업력도 모르는 사이에 감소되며, 신체도 갈수록 좋아진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에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상 물질에 보증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사실 남을 위하는 것 역시 하나의 무한한 수련 과정으로서,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할 때, 매 번 자신은 결코 완전히 남을 위하지 않았고 아직도 개변해야 할 방면이 아주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속인은 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남을 위하는 이 과정은 바로 한 생명이 근본적으로 전변하는 과정이며, 또한 한 사람이 신으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 버리지 못한 집착심은 모두 당신이 남을 위하는 것을 가로 막을 것이며, 모두 당신의 심령을 충격하여 당신을 몹시 괴롭게 만들 것이고, 당신더러 남을 위하는 것을 포기하게 할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내가 이해하기로는, 우리가 시작에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에 집착심을 거의 다 버리고 곧 승화하게 될 때면 곧 완전히 남을 위하는 단계에로 승화하게 된다. 이것은 다른 하나의 경지이다.

사실 인류의 최고도덕 경지는 바로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하는 것이다. 왜 사람을 감동시키는 수많은 이야기는 길이 전해지는가? 바로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하는 도덕 준칙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업이든 학습이든 막론하고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에 있어서 늘 먼저 남을 생각할 수 있다면 남들은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며 아울러 모두들 공인할 것이다. 당신과 다른 사람들 간의 모순도 갈수록 적어질 것인데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당신이 점차 속인을 이탈하게 되고 속인 중에 있지 않을 때면 각종 모순은 당신에 대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 나는 늘 동료를 도와주었지만 동료는 나를 좋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모순이 있기도 하였다. 후에 사업 가운데서 나는 늘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원칙에 따라 했더니 그 동료의 나에 대한 태도가 어느새 바뀐 것을 발견하였다. 내심으로부터 나에게 감격했고 일하는 가운데 모순도 많이 줄어들었다.

당신이 늘 남을 위할 수 있을 때, 당신은 늘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정이 무척 유쾌해질 것이고, 예전에 보기에는 아주 큰 고비와 난으로 보이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아주 홀가분하게 넘길 수 있는데, 믿기지 않으면 한 번 해 보라.

이것이 바로 내가 깨달은 조그마한 체험이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1년 8월 23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8/23/767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