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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치료하다”는 마음을 제거

“병 치료하다”는 마음을 제거

작자: 대륙대법제자 사우(思雨)

[정견망] 본문에서 말하는 “병 치료하다”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적 질병을 가리킨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누구나 즐겁고 유쾌하게 일생을 보내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진(紅塵)의 미혹과 업력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 발생한다. 특히 지금 말법(末法)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압력과 모순을 참을 수 없어 다양한 심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어떤 심리적 질병은 그 아픔이 완전히 육체의 고통에 못지않고 심지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못지않게끔 한다.

필자는 일찍이 심리상에서 문제가 나타났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나약하고 게다가 마음이 좁아, 많은 문제가 잘 이해되지 않았고, 마음을 졸이고 번민하면서 쾌락과 햇빛을 멀리하였다. 기나긴 인생을 마주하여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따를 것인가를 몰랐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행운이 있는 듯 우연한 기회에 파룬따파를 만나게 되었다. 대법의 무한한 법리, 사존의 자비한 가르침은 나로 하여금 마음속의 흙먼지를 털어버리게 하였다. 그때부터 나 자신은 유쾌하고 양광과 희망으로 충만된 사람으로 되었다. 그러나 대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심령을 달래려 생각했고 자신의 정서가 더는 “극도로 흥분하여 불안하다”는 생각을 자신의 마음속에 밀어넣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이 문제를 발견했다.

대법의 법리는 초상적인 것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이 한 부의 법, 그는 어떻게 사람이 되고 어떻게 하늘 사람이 되는가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또 여러 분들에게 알려 주겠다. 어떻게 불도신이 되며 더욱 높은 경지 중의 신이 되는가를. 그가 당신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가 당신의 사상을 열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다 할 수 있다.”

법리는 나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어 나로 하여금 건강한 심리, 건강한 인생을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법이 중생에게 전해 주는 것은 중생들이 수련하여 반본귀진(返本歸眞)하기 위해서이지 심리 치료가 아니다! 대법을 이용하여 심리를 달래고 심리 평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곧 법에 대한 모독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역시 자신의 수련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한다. 후에 나의 심리가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할 때, 다시 말하면 내가 손해를 볼 때면 나는 법 중에서 법리를 찾아 자신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인정하였다. 이렇게 되자 마음은 유쾌하였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게 조롱당할 때,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였기에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이 있은 후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덕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심리가 곧 평형 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하나의 수련인으로서 반드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손해를 보아도 마음속에 두지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하여 심리가 평형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수련이 아닌 것으로 반대로 대법의 법리를 이용하여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이로 하여 심리 평형에 도달하는데 이것은 수련하는 사람인가? 이것은 수련과의 거리가 너무도 먼 것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근본적으로 수련이라는 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이 근본 집착을 파 낸 후 자신마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행 상에서 때로는 수련인 같지만 내심의 더러운 물건을 근본적으로 쏟아 버리지 못했던 것 이다.

때로는 “수련”이란 이 단어가 얼마나 위대하고 수승(殊勝)한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수련의 길에 들어선다면, 아울러 수련 와중에 이 근본 집착을 수련하여 버리지 못한다면 표면상으로 볼 때는 수련하는 것 같지만 구하려 하는 이 마음이 이 사람과 법 사이를 막아 그로 하여금 법의 위대한 내포를 보지 못하게 하며 영혼 깊은 곳도 진정으로 법에 동화 될 수 없다. 이는 근본으로부터 말하면 그는 아직 진정한 수련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은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펼쳐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나는 자신이 수련한다고 생각할 때 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일종 격동으로 인한 전율이 있게 된다. 하지만 속인 중에서 양성된 습관적인 사유로 인해 자신이 무슨 일을 할 때면 늘 이 일을 하여 무엇을 얻게 되며 무엇을 보유하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하면 신체가 건강해질 수 있고, 자신이 도덕상에서 미끄럼 치지 않을 수 있고, 또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등등 등등을 속마음을 갖고 있다.

나는 오히려 『전법륜』에서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잊어 버렸다.

“현재 부처에게 절을 함에 마음속으로 정과를 얻겠다고 생각을 갖고 부처에게 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이런 사람은 너무나도 적다. 대다수 사람들이 부처에게 절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재난을 없애고, 난을 해결하며, 돈을 버는 이런 것을 구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사존께서는 『전법륜』중에서 말씀 하셨다.
“당신이 각종 구하려는 목적을 품고 와서 공을 배우고 대법을 배우려고 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다 배우지 못한다.” 사존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장난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구하려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몇 십 년을 배우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지 모두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발표시간: 2011년 8월 17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8/17/766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