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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경법하고 자신을 소중히 하자

경사경법하고 자신을 소중히 하자

작자: 종고루(鍾鼓樓)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과거의 사람은 부처, 보살을 생각만 해도 모두 정념(正念)을 갖고, 숭경(崇敬)의 심리를 갖고서야 비로소 부처, 보살 그 글자를 담론하였으며 몹시 수승(殊勝)하고 위대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 그는 이런 정념이 없으며 그는 제멋대로 입만 벌리면 부처를 논하는데, 마치 부처, 보살이 입에 발린 것처럼 제멋대로 말한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연상했는데 부처와 보살이 이렇게 수승하고 위대하다면 하물며 무량(無量)한 불도신(佛道神)을 포함해 우주의 일체 생명을 육성한 대법은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어떻게 대법을 대하고 어떻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 속의 매 한 구절을 대해야 하는가? 나는 대법 책은 겉보기에는 다른 책과 무슨 큰 구별이 없고 흰 종이에 검은 글씨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상 그는 우주의 근본이며 우주의 무량한 뭇 불도신을 육성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 생존환경을 창조한 가장 수승하고 가장 위대한 법임을 깨달았다.

대법 책 속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매 한마디 말씀은 모두 신성한 법리이자 대법의 일부분으로 속인 중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아무리 높이 수련하고 아무리 큰 신통이 있으며 얼마나 높은 과위(果位)를 증오(證悟)했을지라도 모두 대법이 육성한 생명이며 경사경법(敬師敬法)은 영원히 변치 않는 우리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무량한 천체와 우주를 육성한 대법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속인 중의 이론이나 혹은 학문으로 삼아 담론할 수 없다. 이는 자신을 육성하고 자신을 구원한 대법에 대해 중생이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다. 설사 대법제자가 심득을 교류하는 법회에서나 혹은 심득교류문장을 쓸 때라 할지라도 반드시 어느 한 단락 설법인지 인용해야 하며 반드시 정념을 지니고 숭경(崇敬)하는 마음을 지니고 법리를 언급해야만 하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 중에서 구체적인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늘 부동한 의견이 있다. 사실 대법제자의 출발점은 모두 조사정법(助師正法)을 위한 것으로, 자신이 맡은 항목을 더 잘하고 보다 큰 작용을 발휘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에서 부동한 의견이 있는 것이다. 또 매 대법제자가 대법 중에서 깨달은 법리가 서로 다르고 속인 중의 지식, 경험, 경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에 대해 매 대법제자가 보는 각도가 부동한 것이다. 때문에 부동한 의견이 나오는 것 역시 정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일을 할 때 부동한 의견에 부딪힐 때면 어떻게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심태로 선의(善意)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제출하는 동시에 허심탄회하게 부동한 관점을 받아들일 것인가, 공동으로 토론하는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이것이야말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표현이며 또한 상호협력 중에서 대법을 원용하고 실증하는 것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럼 대법의 무변(無邊)한 지혜와 위력이 충분히 체현되어 나올 것이며 조사정법의 효과도 반드시 아주 현저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직 해내지 못하는 까닭은 대법을 실증하는 적지 않은 항목에서 이런저런 많은 곤란에 부딪혀 근본적으로 대법제자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대법제자들은 항목 중에서 구체적으로 일을 할 때 부동한 의견에 부딪히면, 우선 안으로 찾고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찾으며 상대방의 말이 아무리 귀를 자극할지라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스스로 도리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우선 상대방의 부족점을 찾거나 심지어 습관적으로 법리에서 자신의 근거를 찾는다. 대법 책이나 혹은 밍후이왕에 올라온 교류문장 중에서 근거를 찾고는 거기에 자기의 인식을 더한다. 겉보기에는 모두 조리가 있고 대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말한 것은 모두 법리이지만 그러나 출발점은 오히려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은 무변(無邊)하다. 우리가 대법 중에서 아무리 높이 수련했을 지라도 우리 자신의 법리에 대한 고만한 인식은 모두 아주 제한된 것으로 무변한 대법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다만 대법을 실증할 몫만 있을 뿐 어찌 대법의 법리를 이용해 자신을 실증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구절의 말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것에 근거해 이 신성하고 위대한 법리로 구체적인 일에서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단 말인가?

좀 심하게 말하면 이렇게 하는 수련생은 자신의 사심(私心)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대법의 법리를 이용해 다른 수련생을 공격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은 이용당할 수 없다”(정진요지 대법은 이용당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누가 당신이 이렇게 하도록 허락했는가? 우주의 무량한 중생, 극히 높은 층차의 왕과 주를 포함한 수를 알 수 없는 불도신이 누가 대법을 이용할 자격이 있는가? 누가 감히 대법을 이용해 위사(爲私)위기(爲己)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구세력은 바로 이렇게 한 것으로 그것들은 바로 대법을 이용해 정법을 좌우지하며 자신의 위사(爲私)한 목적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때문에 그것들은 또 죄악이 너무나 커서 끝이 없는 것으로 대법에 의해 도태되기로 정해진 것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책임은 중대하며 우리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은 모두 아주 큰 요소와 관련이 있다. 때문에 경사경법이란 이 근본에서 반드시 잘 파악해야 하며 자신의 위치를 바로 놓아야 한다. 항목 중에서 구체적으로 일을 할 때 제자 간에 부동한 의견이 나타날 때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말할 수 있고, 자신이 대법에서 깨달은 이치를 말할 수는 있지만, 법리에 관련될 때는 반드시 아주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은 과거 우주 중에서 아무리 높은 생명이라 모두 모두 모르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깨달음은 과거 우주 중의 일체 생명은 모두 법을 알 자격이 없다. 이번에는 사부님의 홍대(洪大)하신 자비로 우리에게 우주의 근본대법을 전하신 것이다. 바로 이 법을 위해 만왕(萬王)이 세상에 내려왔고 얼마나 많은 위대한 불도신들이 천담(天膽)을 무릅쓰고 성결하고 아름다운 고층 공간에서 오독(五毒)이 가득한 이 혼탁한 세상으로 내려왔으며, 그중 또 얼마나 많은 신들이 이곳에서 훼멸되었는가?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우주 중에서 가장 행운인 생명으로 천상의 일체 뭇신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생명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대법을 대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대법을 전하고 우리에게 신성한 법리를 말씀해주신 것은우리가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에 동화해 원만하여 되돌아 올라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결코 우리더러 대법의 법리를 이용해 자신을 수호하고 자신을 끌어올리거나 혹은 서로 헐뜯고 다투며 권력과 이익을 쟁탈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뭇신들이 죽음을 무릅쓴 어려움을 겪으며 이곳에 온 것은 위대하고 수승한 대법의 신성한 법리를 얻어 위사위아(爲私爲我)한 목적에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법에 대한 모독이며 이렇게 한다면 극히 위험한 것이다. 대법제자는 다만 대법을 위해 쓸모가 있어야 할뿐 결코 대법을 이용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며 누가 이렇게 한다면 곧 자신이 도태되는 것을 선택한 것과 같다.

사부님의 자비는 홍대한 것으로 제자들이 교류 중에서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교류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제자로서 우리 자신은 반드시 법리의 신성함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경사경법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특히 대법제자 중에서 “말을 잘하는” 그런 사람들, 늘 법리를 말하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은 더욱 이 문제에 주의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대법은 사부님께서 전하신 것으로 대법에 불경(不敬)하면 곧 사부님께 불경한 것이며 이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설사 다른 방면에서 아주 잘했다 할지라도 이 근본적인 문제에서 잘 파악하지 못하면 곧 자신이 제고와 원만으로 나아가는데 아주 큰 장애를 조성할 것이다. 아울러 수련과 조사정법이란 이 길에서 큰 번거로움과 큰 마난에 부딪힐 수 있다. 이 누락은 실로 너무나 크기에 사악이 틈을 타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천상의 뭇신들도 간과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설법 중에서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당신들 이 환경을 소중히 여기라. 당신들이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기는 이것이 바로 당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공개적인 설법에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은 반드시 보편적인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우리 매 대법제자는 모두 법리에 대조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생각해보아야 하며 자신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경사경법은 또 마땅히 자신을 소중히 하는 내포의 하나가 아닌가.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이 모두 이 문제를 충분히 중시하기를 희망한다.

이상은 개인의 얕은 인식으로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는 바이다. 부족한 곳이 있다면 삼가 비평과 지적을 바란다.

(밍후이왕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