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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은 형식일 뿐 수련이야말로 관건이다

항목은 형식일 뿐 수련이야말로 관건이다


작자 : 구소(九霄)

[정견망] 정견망 2011년 10월 21일 문장 “경사경법(敬師敬法)하고 항목의 위치를 바로 놓자”를 보고 무척 공감하는데 여기서 해외 대법제자들이 꾸리고 있는 항목에 대한 자신의 체득을 말해 보고자 한다.

대법제자가 박해 초기에 꾸린 일부 항목, 예를 들면 매체는 모두 반(反)박해와 대법 홍전(洪傳)을 위한 목적에 입각해 설립한 것으로 지난 십여 년간 줄곧 이러한 책임을 이행하면서,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매우 큰 역할을 했고, 국내외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명도를 지니게 되었으며 사악에 대해서도 강대한 진섭과 억제 작용을 했다.

바로 이 때문에 대법제자들이 항목과 대법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하기가 쉽지 않다. 대법제자의 항목이 사악을 진섭(震懾)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항목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대법제자가 항목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여 우주대법의 법력을 매체라는 이 항목을 통해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씬탕런 방송 토론회에서의 설법”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물론 방송국 자체는 대법수련이 아니며, 대법과 직접 관계가 없는데, 방송국은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바로 이런 하나의 관계이다. 그것은 대법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도구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대도무형(大道無形)의 수련 방식으로 항목에 종사하건 하지 않건 수련이야말로 영원히 제1위이다. 만약 항목이 없을지라도 대법제자는 마찬가지로 수련할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 대륙에서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방식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고 곳곳에 꽃처럼 피어났는바 모두 법을 실증하고 있다.

해외에서 어떤 사람은 오직 항목에 들어가야만 수련에 정진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사부님의 “더 정진하자”란 경문이 발표된 후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수련을 하려면 반드시 항목이 있어야 하고 오직 항목에 들어가야만 원만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조건이 적합한지 여부는 따지지 않고 모두 항목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는 모두 사부님의 법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전법륜” 제1강에는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라고 했다. 이는 우주의 법이며, 심성은 영원히 가늠하는 표준으로서 대법제자가 항목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어떠한 항목을 하는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항목을 하는가 여부”를 가지고 대법제자의 수련상태를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지 말아야 하며, 원만할 수 있는가 여부의 보증으로는 더욱 간주할 수 없다. 이런 행위와 생각의 배후에는 유위(有爲)적인 마음, 위사(爲私)한 마음이 숨어 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중의 “유위”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신을 모시느라 정말 다망하지만
유위란 한낱 헛된 노릇임을 어찌 알리요
어리석고 미혹되어 서천(西天) 길 망상하나니
더듬더듬 밤길에 달을 건지고 있네”

항목이란 유형적인 형식은 다만 우리로 하여금 수련하게 할 뿐인데 만약 항목의 형식에 집착한다면 “절을 짓고 신을 모시느라 정말 다망”한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모든 항목이 전부 세계 1류에 도달할지라도 대법제자의 심성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성불(成佛)할 수 없다. 물론, 대법제자의 심성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그런 공덕(功德)을 성취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더욱 분명히 지적하셨다.

“설령 당신이 대법제자의 항목을 한다고 해도, 천상에는 텔레비전방송국이 없고, 신(神)에게는 신문도 없는데, 이것은 모두 속인 사회의 형식이다. 당신이 정념으로 당신을 지도하지 못하고, 당신이 대법제자답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하고, 세계를 가늠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다.”

대법제자의 항목은 본래 서로 보충하고 협력해야 하건만 항목을 하는 중에 사람마음을 버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각자 자신의 항목에 집착하다 보니 항목 내부에서 또 항목과 항목 사이에서 이익 다툼이 나타나게 되었다. 각자 자신의 일에 집착하면서 모두 자신의 항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과시심, 환희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를 낚거나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 등 갖가지 사람마음이 일어나게 되었고, 항목 간에 서로 방해하거나 서로 깔보는 상황이 나타났다. 특히 질투심이 비교적 엄중하며 또 다른 항목을 망치게 하는 상황도 나타났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항목과 수련 사이의 관계를 바로 놓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각종 매체, 각종 회사는 수없이 많고 각양각색인데 우리는 그 중 몇 개 형식을 채용해 수련할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는 수련으로, 이는 생명이 본질로부터 고급생명으로 전화하는 과정이며 다시 말해서 이 자리에 앉은 모두는 신의 길 위에서 걷고 있는 생명들이다.”(로스앤젤레스 시 설법)

한 수련인으로서 얻은 과위가 얼마나 높은가는 그의 경지가 얼마나 높은가를 보아야 하며, 항목 중에서 그의 직책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항목은 수련의 “보호우산”(保護傘)이 아니며 속인 사회를 회피하는 바람막이(避風港)도 아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즐기기 위한 클럽도 아니다. 항목을 잘 하면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예리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잘 하지 못하면 도리어 수련인의 속박이 될 것이다. 항목을 위해 일하는 것은 대법을 위해 하는 것과 같지 않다. 가령 하는 과정 중에 수련인의 정념에 입각해 하지 않는다면 속인 일을 하는 것과 같으며 그럼 위덕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또 자신의 얕은 깨달음을 말해보고자 한다. 바로 대법제자들이 “션윈(神韻)”과 다른 항목 간의 관계를 바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션윈”도 하나의 항목이라 부르는데 나는 이렇게 보지 않는다. “션윈”은 사부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으로 “션윈”의 가사는 이미 “홍음 3″에 발표되었다. 때문에 나는 “션윈”은 법의 일부분으로 정법노정 중에서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개인적인 이해로는, 대법제자가 원만할 때, 대법제자가 경영하던 항목이 만약 이미 양성순환에 들어섰다면 후인(後人)들에게 남겨주어 계속 경영하게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션윈”은 장차 신우주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항목이건 모두 “션윈”과 비교할 순 없다. 현재 각 항목에서 대량의 대법자원과 대법제자 인력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 항목과 매 대법제자는 모두 션윈보급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바, 이는 정법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작은 견해이며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는 바이다.

발표시간:2011년 10월 25일
정견문장: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10/25/781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