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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경법하고 항목의 위치를 바로 놓자

경사경법하고 항목의 위치를 바로 놓자

작자: 종고루


[정견망]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구도를 위해 근년 들어 대법제자들은 대법을 실증하는 각종 항목(項目)을 조직했으며 또 아주 큰 역할을 했음은 모두 목격한 바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장기간 속인사회에 입각한 일부 항목을 하기란 아주 쉽지 않았고 자금, 인력, 시장 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곤란이 존재했다. 지지부진하며 속인사회에서 돌파를 이뤄 양성순환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항목에 참여한 적지 않은 제자들 및 항목 책임자들은 비교적 곤혹감을 느끼고 있다. 모두들 다 방법을 생각해 현재 우리항목의 발전을 가로막는 “병목”문제를 해결해 우리 항목이 조사정법 중에서 보다 큰 역할을 발휘하게 하고자 생각하고 있다.

물론 현재 사악(邪惡)의 교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한 방면이다. 그러나 법학습을 통해 나는 사악의 교란은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주요원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매 제자와 매 항목에 모두 한갈래 길을 배치하셨으며 이 길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 자신이 잘 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길을 바르게 걸어가기만 한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대법제자 개인수련이건 아니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하건 그 어떤 장애에 봉착했다면 우리는 모두 안으로 찾고 법에서 답안을 찾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어떠한 일이든 모두 우리 자신이 이 방면에서 한번 가늠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원만의 이 길에서 어떠한 장애도 당신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히면 모두 밖을 본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장애이다. 과거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는 제일 큰 장애로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받은 고통과 당한 불행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의 어느 곳이 잘못되었는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하기 매우 어렵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에서, 수련하는 이 길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당신을 가로막을 어떠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러하다.”(싱가포르법회설법)

인류역사상 과거의 일부 정교(正敎)는 일찍이 아주 강성하고 휘황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로마제국이 군림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준 영예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종교는 사람이 인정한 것이며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신은 오히려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사람 마음만 인정한다.”(북미제1회법회설법)

기왕지사 신이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럼 왜 신은 이들 정교에 영예를 주었는가? 나는 이들 정교가 역사적으로 신이 원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예를 들어 종교는 수련인에게 환경을 제공했고 일부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 환경 속에서 수련해낼 수 있게 했다(비록 푸왠선이 수련성취했지만) 동시에 종교가 광범위하게 전파된 것은 인류의 도덕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 유지될 수 있게 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법이 전해지기 위해 인류에게 마땅히 있어야할 수련과 신앙에 관한 문화를 다져주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신이 원하는 것으로 그런 정교들이 신이 원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신은 그것에게 복을 주었고 영예를 주었으며 그런 종교들이 강성해지고 지상에서 휘황하게 한 것이다.

종교는 비록 사람이 신을 믿게 했고 출가인을 조직해 수련하게 했지만 그러나 종교는 필경 신을 대표할 수 없으며 다만 사람이 만들어낸 일종의 형식일 뿐이다. 종교를 믿는 것이 신을 믿는 것을 대표할 수 없으며 종교를 수호하는 것도 신을 수호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과거의 많은 사람들은 도리어 분명히 알지 못하고 종교를 수호하는 자체를 신을 수호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마음은 순수하지 못하며 또 바르지 못한 것으로 사실상 신에 대한 불경(不敬)이다. 만약 종교 중의 사람이 보편적으로 모두 종교를 수호하는 것을 신을 수호하는 것을 간주한다면 그럼 이 종교는 빗나가게 되는데 다시 말해 바르지 못하게 된다. 세간의 그 어떤 유형적인 조직도 다른 공간에서 표현되는 것은 모두 실체(實體)이며 생명이 있고 사상이 있는 것이다. 종교가 변이되고 불순해지면 다른 공간에서 표현되는 그 생명 역시 불순해지고 일정 정도 변이된다. 종교는 더 이상 신의 영예에 어울리지 않게 되는데 신은 이에 대해 아주 똑똑히 본다. 그러므로 속인의 마음으로 종교를 수호한다면 사실상 그런 사람들은 종교를 파괴하는 것과 같으며 단지 자신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서방의 일부 종교들이 중세에 아주 말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는데 한마디 말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이단”으로 공격하고 종교재판소에 보냈으며 심지어 사람을 기둥에 묶어 화형 시켰다. 이 일체는 모두 종교가 한 것으로 신이 한 것이 아니다. 물론 신이 원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일체는 오히려 신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이 종교가 신을 영광스럽게 했는가 아니면 신을 먹칠한 것인가? 종교가 이 정도까지 이르렀다면 신은 곧 그것의 복을 철회할 것이며 그것의 영예를 회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방에서 중세 종교의 광풍이후 종교는 하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를 대신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신은 복과 영예를 예술(藝術)에 주었으며 르네상스 시기의 그런 위대한 예술가들은 예술의 형식으로 신을 영광스럽게 하고 인류에게 이번 차례 인류문명에서 최고봉의 예술작품을 남겨놓게 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예술작품을 통해 무엇이 미(美)이고 무엇이 추(醜)이며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지 알게 했다. 마찬가지로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데 인류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문화를 다졌으며 이 역시 신이 원하는 것이다.

종교라도 좋고 예술이라도 좋은데 이런 것들은 모두 형식이다. 관건은 형식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데 있다. 그 어떤 형식이든 오직 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세간에서 잘 하기만 한다면 신은 곧 인정할 것이며 복과 영예를 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하는 이런 항목을 보자.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늘 “대도무형”을 언급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사회의 어떠한 표현형식도 이 법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대법 유전에 알맞은 진정한 형식을 채용했다. 어떤 형식인가? 바로 “대도무형(大道無形)”이다. (박수) 우리는 진정으로 “대도무형”의 한 갈래 길을 걷는데, 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 이 대법에 어울리는 것이다.”(싱가포르법회설법)

이를 통해 본다면 항목 자체는 대법이 아니고 단지 제자들이 이를 이용해 대법을 실증하는 형식에 불과하다. 대법은 그 어떤 형식도 없다. 대법제자들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에 또 닦아버리지 못한 속인의 마음이 있다. 속인의 마음은 종종 유형적인 것에 착안하며 종종 일종 유형적인 형식을 수호할 수 있다. 항목을 하는 제자가 만약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시간이 오래되면 곧 항목자체를 수호하는 것을 대법을 수호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이 전심전력을 기울여 항목을 위해 일하는 것을 대법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대법제자가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은 항목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사정법하기 위한 것이다. 항목은 단지 한 가지 형식일뿐이며 대법제자에게 무대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진정한 주역은 대법제자이고 진정으로 할 일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제자가 만약 항목을 잘하는 것을 제1위로 삼는다면 그것은 곧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이는 대법을 실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항목을 잘하는 것을 제1위로 삼는다면 곧 속인의 마음으로 일을 하는 형식에 흐르게 된다. 만약 제자가 일을 하는 것이 법에 있지 않다면 곧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토록 신성함이 없게 되며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못된다. 이렇게 일을 하고 있고 심지어 모두 생기발랄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상 대법을 실증하는 요구에는 도달하지 못하며 조사정법 중에서 마땅히 일으켜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만약 제자가 속인의 마음으로 항목을 수호한다면 이는 항목이란 이런 형식으로 대법을 실증하지 못한 것으로 그렇다면 이 항목 역시 이 과정 중에서 대법을 실증하지 못하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대법제자를 성취시키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작용을 하지 못한다. 또 대법제자의 속인마음을 조장하거나 심지어 일부 대법제자 사이에 항목을 하는 것으로 인해 모순과 간격이 생긴다. 이렇다면 이 항목은 정법 중에서 정면적인 작용이 부족하게 되고 마땅히 있지 말아야 할 부면작용이 오히려 날이 갈수록 뚜렷해진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해나간다면 사부님께서 이런 항목을 어떻게 보시겠는가? 뭇신들은 또 이런 항목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항목 자체에 누락이 있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사악이 틈을 타 이들 항목에 마난을 조성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나는 정법 중에서 일체는 모두 대법 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아야 함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하는 이런 항목들을 포함한다. 항목에 참여한 제자들이 만약 자신을 바로 놓고 항목과 대법의 위치를 바로 놓지 못하고 항목을 수호하는 것을 대법을 수호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항목의 가장 큰 누락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법제자가 이들 항목의 위치를 바로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은 개인의 견해이니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는 바이다.

발표시간:2011년 10월 21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0/21/781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