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세세 윤회는 이번 생을 위해
작자: 소성(蘇醒)
[정견망]
1. 천년을 윤회한 나는 누구인가?
유유한 만고에 큰 연극 바삐 연기하고
속세에 빠져있으니 돌아갈 길 얼마나 먼가?
인류 역사의 대하(大河) 중에 속세에서 윤회전전 하는 중에 우리는 같지 않은 역할을 맡았으며 무수한 이합집산을 연기했고 슬프고 기쁜 일을 엮어냈으며 역사의 오늘날을 위해 연을 맺었고 동시에 오늘날 법을 얻어 수련 문화의 내포를 다졌다.
오늘 다행히 주불(主佛)의 제자가 되어 대법 중에 지혜가 열렸다. 때로는 꿈속에 지난 세월에 대한 비장함과 곡절을 느끼고 늘 감개가 무량했다.
2002년 여름 날 꿈에 소동파(東坡), 산곡[山谷-황정견(黃庭堅), 북송의 시인겸화가, 소식의 제자], 불인선사(佛印-소동파와 친분이 있는 고승) 등 여러 사람이 내게 말했다. “백성들이 나쁜 사람 때문에 아주 잘못하고 있소.” 그리하며 눈물을 비오듯이 흘렸다. 원우(元佑 1086년-1094년) 연간 국사에 뜻이 있어 늘 비분강개했다. 또 꿈속에서 젊은 장수가 되어 가정과 국가를 보위하고 전쟁터에 나아가 일대의 이야기를 남겼다.
그날 우연히 “악비전”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범벅이 됐다. 대략 책장을 넘기며 읽었을 뿐인데 뜻밖에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악비의 정충보국(精忠報國)의 호연지기는 하늘을 뚫었으나 오히려 간신에게 해를 당했다. 당시 몸은 갈 곳 없었고 천고의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당시 그 비장한 역사의 증거가 분명했다.
또 하루는 몸이 양산박에 처해 있었는데 살굿빛 깃발이 높이 달려 있어서 다시 한 번 슬픈 연극을 연출한 것을 보았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숨기고 혼자서 비바람 속에 산림, 수풀을 걸어 다니기를 거의 40년,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꿈속에서 또 센 바람과 눈 속에 걸었는데 산야가 아득하게 나의 기억에 고정되어 꽤 감회가 있었다.
2010년 신판 “서유기”가 인기리에 퍼졌을 때 그 영화를 찍은 수준이 매우 뒤떨어져 있고 변이된 것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당직할 때 우연히 한번 봤는데 당나라 태종이 물었다. “누가 짐을 위해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진경을 구하겠는가?” 두 번이나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나는 눈물을 온통 흘렸고 그 장면에 감동됐다. 당연히 그때 당현장은 아니나 윤회 중에 역시 한때 법을 구하고 도를 찾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겪었다. 이 한 번의 물음은 마치 “션윈(神韻)”의 시작을 본 것처럼 그 오래전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당초 세상에 내려올 때 주불과 신성한 서약을 했을 것이다! 다만 속세에서 윤회 중에 층층의 관념의 장애로 본성이 가려졌을 뿐이다.
또 한 세(世)에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우리 셋은 다른 사람의 추격을 받았다. 내가 그들을 이끌었고 또 물에 꽤 능통했고 자신이 있었으므로 거의 따라잡히려 할 때 몸을 솟구쳐 강물 속에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하지만 추격하는 사람은 헤엄을 더욱 잘 쳐서 최후까지 버텼으나 마침내 따라잡혀 절망적인 지경에 이르렀다.
명나라 말기에 청나라 병사가 관문으로 들어와 이자성이 참패했고 그 후 양주가 함락되고 청군이 강남까지 쫓아왔다. 나는 한 때 저항군에 참여했으며 물과 육지 간을 전전하다 당시 소위 항청의사(抗淸義士)가 됐다. 남명 왕조는 다시 일패도지(一敗塗地)하여 국세는 이미 만회할 수 없었고 궤멸할 형세를 맞이해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강산의 주인이 바뀌고 이민족의 침략을 당하는 것을 보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고 가슴속은 비분과 슬픔으로 가득 차 아득했다.
어떤 때는 물속 생물로 전생했는데 망망한 대해 중에서 떠돌아다니며 시작도 끝도 없는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디가 해안인가 어디가 끝인가 하고 헤아렸다.
2. 구세력의 안배를 부수다
어렴풋하게 또 근대 어느 공산당 문인과 꽤 연원이 있었음을 보았는데 꿈에 몇 차례 계시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 갑자기 문학에 빠졌다. 방송에서 그에 관한 장편 전기 소설에 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속으로 좀 놀랐고 가슴에 와 닿았다. 평소에 다른 사람이 이 이름을 부르면 늘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나중에 현의 고등학교에 붙었는데 무의식중에 노점상에서 그의 전기 중 제 1권을 발견하고 보물로 여겼으며 그의 언어 표현력에 탄복했다. 나중에 동급생에게 빌려주었다 잃어버려 오랫동안 유감이 됐으나 사실 하늘의 뜻이었다.
그는 공산당을 찬양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아 마지막에는 박해를 당했고 비참하게 “자기”의 감옥에서 죽었으며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그가 남긴 문학은 세상 사람들을 독해했을 뿐 아니라 나 역시 금생에 그 음침함에 빠져 장기적으로 스스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역시 내가 사악한 당(黨)문화를 철저히 제거하지 못한 주요 원인이다. 그렇게 다방면으로 교란을 받았고 기연이 한 줄에 매달려 있어 매우 위험했다.
나는 당문화에 대해 결코 피동적이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주동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한때 4,50년대 문학에 열중했고 공산 사당의 서적을 전적으로 끌어안고 본적도 있다. 나중 몇 차례 공산당 서적을 없애고 깨끗이 청리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도서를 들치다 보니 대마두의 글씨가 있는 달력 한 장이 뚝 떨어졌다. 수련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아직 이런 것이 있는가? 역시 법리에 뚜렷하지 못해 남은 것이 있었다. 비로소 진지하게 한번 청리를 했다. 마두의 친필을 새긴 적이 있고 비록 내가 지웠지만 아직 자국이 남아있고 다 깎아 없애지 못했다.
또 수집한 그림과 도서가 있는데 잘 조사해 보니 아직도 다른 사람이 쓴 마두의 시가 있었다. 한때 글씨 연습을 하느라 수십만 자의 일기를 썼었는데 버리기 아까워 줄곧 놓아두고 있었다. 비록 많은 것은 경치를 묘사한 것이거나 자기 주위의 잡다한 일을 적은 것이었지만 나중에 우연히 들쳐보니 공산당 문화의 사유와 관념이 잡다하게 섞여 있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수의 시를 써놓은 것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 대지의 괴로움의 근원을 보고 다시금 나의 피로써 견고하게… ” 나중에 비록 삼퇴를 성명했지만 오히려 이같이 독한 맹세를 남긴 줄을 몰랐다.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다가 마침내 모든 일기를 소각했다.
역사상 각종 역할을 연기하는 동시에 구세력은 역할 배후에서 많은 수작을 부려 일부 부정적인 요인을 배치했으며 무명(無明) 중에 많은 업력의 빚을 지어 풀기 어려움을 만들었다. 목적은 정법수련 시기에 교란을 위해 협박하며 배치하는 구실로 삼기 위해서였다.
나는 금생에 졸업 후 법을 얻기 전에 고향의 시골 공산당 부서에서 일을 배치 받았다. 구세력은 사악한 직업에 종사하도록 미리 자세한 배치를 하여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장기적으로 공산당의 사업에 종사했다. 줄곧 손재주에 의지해 밥벌이를 하려고 했으나 부족했고 뜻밖에 사악한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14년이나 됐고 늘 열등감에 초조했다. 구세력의 올가미에 걸렸는데 이것이 바로 사악이 얻으려 하는 효과로서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걸었다.
이것은 반드시 철저히 부정하고 제거해야 한다. 오늘 써내 자기를 폭로하고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하고 철저히 사악한 당문화 요소를 제거한다. 빨리 자기를 바른 곳으로 돌리고 평소 배운 대로 조사정법 중생구도하여 사전의 서약을 실천해야 한다.
바로 이렇다:
보검을 천년 주조하여 십년간 날을 갈았으니
오랫동안 갇혀있다 뛰어나와 사악한 영을 베리라.
3. 역사상의 원한을 선해하다
아내와의 연분도 매우 큰데 역사상 몇 번의 인연이 있었다. 금생은 십여 년 전 어떤 사람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아내는 줄곧 마음에 두지 않다가 인연인 까닭으로 얼떨떨하게 그대로 함께 걷게 됐다. 우리는 2000년 10월 혼인 신고를 했으며 며칠 후 내가 체포됐는데 결혼 후 열흘도 되지 않은 때였다. 정에 집착해 바르게 걷지 못하고 식구들의 교란에 대해 줄곧 소극적으로 감당하며 장기적으로 돌파하지 못했다. 아내는 더욱 온갖 방법으로 괴롭게 했는데 늘 작은 일로 싸우고 물건을 집어던졌으며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만일 수련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헤어졌을 것이다.
2009 년 아내가 소주(蘇州)로 일하러 갔을 때 처음 꿈속에서 사부님께서는 과거 어느 세의 은원을 보여주셨다. 이는 처음으로 매우 뚜렷하고 완전한 꿈이었다. 당시는 중화민국 초기였는데 아내의 집안 환경이 매우 좋았고 또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유명한 배우 같았다. 아내는 지금보다 더 예쁘고 착하며 사람의 뜻을 잘 이해했다. 우리 둘은 서로 매우 좋아했다. 한번은 우리 일행 4-5명이 그 모친 저택에서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잊어버렸다. 큰 거리에 도착하자 이번에 나온 것을 후회했다. 그때는 군벌이 혼전을 하고 공비들이 발발할 때였다. 아내는 또 매우 잘 차려입었으므로 너무 눈에 띄어 나는 고향으로 가서 낡은 옷 몇 개를 빌려 입자고 했다. 그러나 누가 말하길 가는데 마다 전염병이 있으니 낡은 옷을 입으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졸이며 조심조심하여 걸어가는데 가는 곳마다 반군들이 무리를 지어 다녔다. 하늘이 보우하사 다행히 그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나중에 사람들과 흩어져 우리 둘만 남았다. 나는 왼손에 그녀를 잡고 오른손에 채찍을 들고 골목길을 골라 빨리 걸었으며 겁이 나서 뒤돌아 볼 수 없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좀 봐, 누가 뒤따르는 사람이 있어?” 두려워하면 그게 온다더니 몇 명 반란군에게 발견됐다. 두목은 뒤를 한동안 따르자 나는 우리는 누구누구(당시 유명인) 집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자 그 사람은 어리둥절해졌으며 우리는 이 기회에 얼른 도망쳤다.
아내는 장종창(당시 군벌 장군의 한명)의 집에 가서 의탁하자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세력이 있었고 또 아내는 그를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이리 굴에 들어가 자살하는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급히 달렸으며 숨을 곧을 찾다가 곧 공비가 집합하여 곳곳에 수색한다는 말을 들었다. 매우 은밀한 곳에 숨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우리를 핍박해 강제로 나오게 했다. 우리는 상심하여 고통이 극심했고 그때 꿈에서 깨어났다.
당시 아내를 데리고 도망 다닐 때 병마들이 마구 달리고 병사들에게 쫓기는 절망적인 심정을 며칠 연달아 느낄 수 있었다.
그 생에 나는 손에 철편(鋼鞭)을 지니고 있었는데 약간의 무예를 가진 듯했으나 난세에 그녀를 보호할 수 없었다. 비록 꿈에서 끝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내가 그녀를 보호하지 못하여 비극으로 마쳤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빚을 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에 원한이 생겼으며 무엇을 하든 아무리해도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욕이 그치지 않으며 하루도 화를 내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늘 마음에 이끌려 불평한다. 처음 몇 년은 피동적으로 응대하고 소극적으로 감당했다. 근래에 정법이 말미에 다가옴을 느껴 급한 마음이 일어나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내가 세 가지 일하는 것을 그녀가 교란한다고 느꼈다. 마침내 그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생겨 그녀의 비난에 대해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만일 역사상 겪었던 고생과 마난을 본다면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천만년의 기다림, 우리는 결코 부부의 은혜와 사랑을 위해서, 안일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다른 방면에서 말하면 결혼, 가정은 사람의 정상생활을 위해 일종 방편을 제공함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속세에서 윤회하는데 필요한 일종 무대다. 부부의 인연은 사실 매우 낮은 인연이며 주불과의 대법과 맺은 성스러운 인연에 비하면 사실 미미하기 그지없다. 또 동수간의 순결한 인연에도 비할 수 없다. 다만 정상생활을 유지하고 대법을 기다리는 일종 수단이다. 더욱이 하늘이 정한 부부라는 설이 없으며 모두 업력이 돌고 돌거나 선연과 악연이 있을 뿐이다.
수련인으로서 사람의 관념에서 뛰쳐나가야 한다. 정의 인연을 돌파하여 연을 맺은 목적을 진정 깨달아야 한다. 한때 부부이지만 전세에 원수일 수 있고 구세력의 수작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단 기왕 함께 걸어가니 이지적으로 대해야 한다. 만일 똑바로 보지 못하면 흔히 구세력에 이용되어 마난을 가중할 수 있다. 은혜도 좋고 원한도 좋고, 금생에 요행이 대법을 만났으니 바로 걷는다면 모두 능히 선해(善解)될 수 있다. 그 생명의 본질 역시 대법에 의해 구도되기를 갈망할 것인데 다만 후천 관념의 업력에 얽혀 무명 중에 이끌려 연기할 뿐이다.
4. 맺는 말
일부는 진실하게 비칠 수도 있고 일부는 아마 가상일 수도 있으니 꿈에 집착하면 좋지 않다. 윤회 이야기는 더욱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나 본인은 어떤 때 사람 마음이 솟아나와 이런 이야기에 기어코 집착하며 동수들의 윤회의 글을 보고 흥미진진해 하며 속으로 나도 역시 일반인이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실 역사상 누구였던지 중요하지 않다. 만일 사존을 만나지 않고 법을 얻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헛것이 된다. 만일 이번 정법수련 중에서 잘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것이며 이때 생긴 유감은 영원히 보충할 수 없다. 그러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미안할 뿐 아니라 역사상 나와 연을 맺고 나에게 희망을 기탁한 중생에게도 미안하고 동시에 우리가 생생세세 윤회하며 겪은 많은 고생이 헛되게 된다.
속세에 들어오면 심해에 빠진 것 같아
이리저리 떠다니며 배회하다
미혹 중에 운 좋게 사존의 구도를 받으니
만고의 기연이 마침내 왔구나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8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