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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사지에 빠진 나를 구해주셨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사지에 빠진 나를 구해주셨다

작자 : 섭의웅(葉義雄) 구술(口述), 오수지(吳樹枝) 대필

【정견망 2008년 1월 21일】나는 섭의웅이라고 하며 올해 70세다. 집은 도원현 용담향이며(대만) 1남 2녀를 두고 있다. 1999년 설날 법을 얻어 약 9년이 되어간다. 법을 얻기 전에는 물고기, 돼지고기를 좋아했고 술담배를 좋아했으며 매일 낚시를 즐겼는데 낚시가 취미였다. 젊을 때는 무슨 느낌이 없었는데 나이가 좀 들자 온몸이 아파왔다.(다리, 위, 허리 등등) 30여 년 간 병마가 온몸을 감아 출가할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절의 주지를 찾아 뜻을 말했더니 주지가 말하기를 출가하려면 우선 50만 위안을 내고 매일 밥을 짓고 요리를 해야 하며 만약 100만 위안을 내면 밥을 짓지 않아도 되며 그저 경만 읽고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출가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들다니, 내게 이런 돈이 있으면 출가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여 출가할 생각을 단념했다.

99년 설날, 우연한 기회에 대법을 만났는데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아마 암암리에 배치된 것이리라. 법을 얻은 후 나는 매우 정진하여 홍법(洪法)하러 나갔는데 10일 후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먹기만 하면 토했는데 이런 현상이 5, 6차례 반복되어 『전법륜』서 말한 것과 같았다. 천천히 신체도 많이 좋아지고 두 달 후 아내도 따라서 법을 얻어 우리 부부는 공동으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99년 7.20에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했으나 우리 부부는 더욱 더 정진했으며 자전거를 타고 도처를 다니며 박해사실을 알리고 진상을 알렸다. 특이한 현상은 매번 낮에 홍법을 나가면 신체에는 아무 일도 없다가 밤에 돌아오면 위장병, 다리병 등 소업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하루 지나면 또 좋아졌다. 낮에 또 나가서 홍법해도 아무 일이 없다가 밤이 되면 또 소업하기 시작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는데 어느 새인가 그런 일도 다 없어졌다.

아마 업력이 너무 커서인지 법을 얻은 지 2년 후 위장병이 또 도졌고 피를 토했는데 이전에 낚시를 하여 살생으로 지은 업이 너무 커서 생긴 병업관임을 알았다. 이 때문에 참는 것도 순조롭게 넘겼다. 나중에 계속해서 병업관이 생겨서 피를 토했으나 정념이 족했기에 고험을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었다. 대법이 나에게 심성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몇 년 후 두 딸도 이어서 법을 얻었고 매우 정진하고 있으나 아들은 아직 연분이 닿지 않았다. 이 기간에 법을 얻은 우리 식구들은 매우 정진하며 매일 연공하고 법공부하는 외에 진상을 말하고 발정념도 제 때에 모두 했으며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세 가지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고 또 미국에 가서 홍법을 했다.

금년 10월 초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위가 극심하게 아파 어지러웠고 거의 움직일 수 없었는데 내 평생에 가장 아픈 날이었다. 또 대량의 검은 피와 선혈을 토했다. 하루 종일 한 양동이나 쏟아냈는데, 속으로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여기며 아마 대법이 나의 신체를 이용하여 법을 실증하려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다. 이번에는 아마 가망이 없나보다. 모든 것이 사부님의 배치이니 내가 떠난 후 뼈조차도 필요 없다. 그러니 물고기에게 먹여주어라. 이전에 낚시를 너무 많이 하여 업을 갚아야 하니 너희들은 상심하지 마라.”

피를 많이 토한 후(이것이 6번째의 토혈이었으며 가장 엄중했다) 전신이 마비되어 몸은 침상에 누워 꼼짝할 수 없었고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는데 하루걸러 토하고, 멈추고 하다가 체중도 급속히 내려가는 등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아내가 보고 있다가 사부님의 비디오를 가져와서 사부님께 병업을 좀 약하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너무 괴롭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증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통증은 견딜 수 없었고 좋지 않은 염두는 늘 머릿속에 떠다녔으며 몸이 자유롭지 못해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났는데 며느리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서 감히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아들은 나의 기가 미약하고 나아지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고 식구들과 친척들을 소집하여 어떻게 해야할 지 상의했다. 아내는 여러 사람이 있는데서 내게 물었다. “병원에 가실래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안가겠다고 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니 죽어도 집에서 죽을 것이며 내 생명은 사부님께서 모두 배치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념을 견지했기 때문에, 피를 토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 나는 9일 만에 마침내 침대에서 몸을 움직여 내려올 수 있었으며 죽과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25킬로나 빠졌으며 뚱뚱하게 살이 쪘던 몸이 완전히 원래의 모양을 잃어 환골탈태한 듯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침상에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신체는 허약하여 걷기는 힘들었다. 10일 째 되던 날, 나는 건너편 방으로부터 천천히 걸음을 힘들게 옮겨 내 방쪽으로 걸어오려고 했는데, 희미하게 사부님의 옆모습을 보았으며 그 따뜻한 두 손의 부축에 의지해서 내 방으로 걸을 수 있었다. 침대에서 나를 부축하실 때 나는 사부님께서 내 몸에 이불을 덮어 주시는 것을 희미하게 보았고 또한 좀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또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먹을 수 없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매우 낯익은 목소리였다).

당시 나는 이것이 정말 사부님이 오신 것인가 아니면 컴퓨터를 고치러 온 동수인가 의심이 들었다. 동수가 왔었느냐고 물었더니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비로소 정말 사부님께서 오셔서 이불을 덮어주셨다는 것을 알았고 감격한 나머지 만면에 눈물이 흘렀다. 현재 나는 이미 정상을 회복하였고 소업도 이전보다 더 좋으며 정상적으로 연공하고 법공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사부님의 위대한 자비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번의 병업관은 사부님의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진작 고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자비롭게 나를 죽음에서 구해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이번의 생생한 체험으로 옹고집이던 아들도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우리 전 가족은 대법수련의 가정으로 변했다.

이 후 나는 더욱 정진하고 조사홍법(助師洪法)으로 세인을 구도할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동수들이 정념으로 협조해준 것에 감사한다. 최후에 나는 “이 마을을 지나면 다시는 그 주막이 없다(過了這個村,可沒有這個店)”는 말로써 여러분과 공동으로 정진하기를 희망한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발표시간:2008년 1월 21일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1/21/505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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