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의 수련 경험
작자 : 대법제자
【정견망 2008년 01월 21일】
법을 얻은 인연
나는 인생의 곤경에서 법을 얻었다. 1999년 6월 나의 결혼 생활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때 아들은 겨우 3개월이었는데 산후 휴가가 끝나자 직장에서 출근하라고 재촉하여 나는 아이를 어느 노년부부 집에 맡겼다.
그 집 맞은편에 어느 파룬궁 수련생이 살았는데 나는 그가 저녁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그의 딸과 외조카를 데리고 연공을 하며 적극적으로 홍법을 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가 파룬궁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이(李)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내게 파룬궁이 좋다, 도덕을 제고하고 신체가 건강해진다. 등을 말하며 나보고 배우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어디 그럴 정신이 있겠는가! 결혼 실패의 아픔에 아들은 아직 어리고 인생의 길은 어디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통과 미망 속에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마음만 가득 차 있었다.
하루는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보러왔는데, 이(李)형은 그에게 <전법륜> 한 권을 보라고 주었다. 다음 날 아이 아버지가 어제 꿈에 그 책에서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나는 매우 호기심이 생겼다. 어떻게 책에서 빛이 날 수 있는가? 이렇게 나는 어느 날 이 책을 한 번 보았는데 “부체(附体)” 이외에는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7월의 어느 날, 작업반 주임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당시 당서기와 주임만 있었는데 그들은 매우 엄숙하게 물었다: 당신 지금 파룬궁 책을 보고 있지요? 그렇다고 했더니 왜 보느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왜 보는가? 나는 정말 몰랐다. 하물며 나는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단지 책에서는 정부에서 금지하고 비판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후에 주임과 서기가 책을 바쳐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매우 엄하게 말하여 나는 다음 날 책을 바쳤다.
나중에 이(李)형이 정황을 듣고는 또 한 권을 주었다. 이번에는 황색 표지였는데 뒤에는 대원만법(大圓滿法)이 있어서 연공하는 그림이 부록으로 있었다. 나는 간간이 밤에 책을 보았는데 하루는 이런 대목을 보았다. “수련 중에서 구체적으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생전(生前)에 남을 잘 대해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 평생에 그 한 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전법륜>
나는 종종 남편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떠올리며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일생을 그에게 바쳤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괴롭히다니.. 그가 나의 행복을 망쳤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늘 화가 났고 한이 맺혔다. 사부님의 법리를 본 후 생각했다: 아마 전생에 내가 그를 괴롭혔나 보다! 그는 금생에 빚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설사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면 그는 내게 큰 덕(德)을 주는 것이다! 또 이 덕은 얼마나 진귀한 것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런 나쁜 마음에서부터 벗어나왔고 생활은 비록 어려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당시 나는 대법으로부터 생활문제의 어려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만 생각했지 진정하게 이 대법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무신론의 교육을 받아 누가 귀신이 있다고 말하면 그건 봉건미신이라고 했다.
나중에 아이가 노년부부의 집에서 지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李)형을 만날 환경이 없어졌고 진정하게 대법이 무엇인지 이해할 기회가 없어졌다. 나도 점점 책을 보지 않게 되었고 속인처럼 속인들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을 추구하며 결혼의 결과가 좋게 되기를 바랐다.
2004년이 되어 내 생활은 또 곤경에 빠졌다. 직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3년간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갑자기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이 갈 곳을 잃어버렸음을 느꼈다. 마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늘 잠을 못 이루고 불안, 초조해 하다가 홀연 <전법륜>을 읽던 날들이 생각났다. 비록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때는 마음이 편했던 것이 생각나서 또 읽고 싶었다. 그러나 책은 이미 없어졌으니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체면불구하고 이(李)형에게 찾아가서 말했더니 그는 또 열심히 나를 도와 책을 구해주었으며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렇게 나는 또 책을 보았다. 또 <명혜주간>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교란을 배제하자>
이런 목적을 품고 나는 한 번 또 한 번 책을 보고 또 보고 하다가 어느 날 돌연, <전법륜>에서 말하는 것은 부처수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홀연 격동되었으며 기뻤다. 알고 보니 이런 것이구나! 그 후 나는 이(李)형에게 더욱 많이 찾아갔으며 그는 나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면 법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하며 사부님의 각지 설법이 있는데 그것을 내게 보라고 주었다. 나는 보면 볼수록 더 알게 되었다. 사부님은 사람을 제도하러 오신 것이고 대법은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법공부를 통하여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갈 것인지 일체는 모두 정해진 것이며, 일체의 고통과 행복은 자기자신이 조성한 것이며 하늘과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마음은 진정하게 평정해졌다. 이번에는 진정하게 인생의 목적을 알았고 나는 견정불이(堅定不移)하게 나아갈 것이다.
세가지 일을 하려고 하다
나중에 나는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후, 나와 함께 진상에 동참할 수 있는 동수를 찾았는데 그녀는 박해 전 연공장 보도원이었으며 이미 세 번이나 잡혀갔다 풀려났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는 조금도 박해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 아주머니에게는 사부님의 경문, 각종 진상자료 등 무엇이든 다 있었다. 또 그녀는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은 우리 대법제자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그녀가 있는 그곳에서 더 많은 동수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우리 가까이 사는 세 사람, 예씨, 조씨와 나 이렇게 법공부 팀을 이루었는데 나만 홀몸이어서 우리 집에서 법공부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우리 세 사람이 우리 집에서 법공부, 연공, 진상자료 돌리기 등을 했는데 정말 즐겁고 충실한 시간이었다!
2006년 설을 쇠기 전 날 조씨는 호북으로 돌아갔고 나와 예씨만 남았다. 정월 초파일(8일)은 보통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날이므로 우리는 상의하여 7일 밤에 나가서 진상자료를 뿌리고 다음 날 사람들이 출근하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날 밤 땅에 눈이 매우 많이 내렸는데 저녁을 먹은 후 예씨, 나, 수련하지 않는 15살 된 나의 외조카, 이렇게 셋이서 언니의 공장 숙소로 갔다.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다 붙잡혔는데 먼저 공장 보위과에 갇혔고 나중에 국보대대로 옮겨졌다. 외조카는 놀라서 크게 울었고 쇠고랑을 차고 하루 밤낮을 잡혀 있었고 다음 날 오후 간수소로 들어갔다.
간수소에서의 날들
간수소에 들어간 후 벌써 5개월이나 지나갔다. 막 간수소에 들어갔을 때 다른 범인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들어왔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했더니 그들은 빨리 전향하라, 전향서를 쓰면 놓아준다고 했다. 십 몇 평방미터 되는 공간에 십여 명이 바글거렸는데 살인한 자, 마약하는 자, 강도, 사기꾼 등이 있었으며 또 몇 명은 <성경>을 읽는 기독교도도 있었는데 먹고 자고 싸는 것을 전부 이곳에서 하였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하는데 바깥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을 일들이었으나 여기서는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감옥에 들어온 심득체험을 쓰기 거절했기 때문에 여자 경찰이 내 귀에 열쇠를 흔들며 수갑을 채울까, 족쇄를 채울까..라고 말하며 위협했다. 나를 심문할 때 경찰이 말했다. 너는 파룬궁이 좋다고 하는데 집에서 연마하면 되지 밖에 나가 표어를 붙여서는 뭐하게? 사람을 퇴당시켜서는 뭐하게? 내가 말했다 “사람을 구하려는 것이요. xx당은 곧 망할 텐데, 마치 이 집이 무너지려고 하지만 많은 좋은 사람이 모르고 있으면 그들에게 빨리 뛰어나가라고 말해야하지 않겠소? 당신들도 당원이 아니오? 그렇다면 빨리 퇴출하시오!” 그 여경은 “또 그렇게 말하는군, 우리는 당신처럼 멍청이가 아니오!”
감옥 속에서의 날은 매우 지내기 힘들었다. 내가 막 들어갔을 때 변소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24시간 감옥의 통제를 받았으며, 밖에는 큰 눈이 날리는데 세수도 냉수로 해야 했으며 먹는 것은 돼지 여물과 다름없는 것이었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나는 견정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고 법정인간의 도래를 기다리며 늘 <예언>, <법정인간 예언>등의 글을 외웠다.
어느 날 나는 자기 전에 또 외웠는데 외우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시는 것을 보았다. 감옥에는 방마다 텔레비전이 있는데 아침에는 사당(邪黨) 노래를 틀어놓으며 사람들에게 따라 부르라고 했다. 나는 따라하지 않았으며 음악소리만 나오면 발정념을 내보냈더니 얼마 안가 텔레비전이 고장 나서 영상도 안 나오고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가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그랬다.
날이 하루하루 지나갔고 재판도 시작되었는데 소식이 없었고 나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여기 있으면 안되며 나가려고 생각했고 신향 여자감옥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듣기에 그곳의 전향수단이 악랄하며 강온양책을 다 쓴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사부님에게 외쳤다: 사부님, 나는 나가서 집에 돌아가야합니다. 어떤 사형수가 그런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급했군, 네 사부에게 외치니! 하였다. 오후가 되자 여경이 왔고 나를 끊임없이 보더니 잠시 후 말했다: 모모씨 당신 언니가 데리러 왔소, 준비하시오. 나는 좀 일찍 사부님에게 가지를 청했더라면 좀 더 일찍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했다. 왜냐하면 내가 나가서야 알았는데, 나는 불법판결을 받았고, 내게 나열한 죄명은 :모모교를 이용하여 국가의 법률을 파괴한 것이었다. 재판 결과는 일찍 나왔는데 집행을 늦게 질질 끈 것이었다. 언니가 가서 물었더니 법원직원은 말했다. 그들은 판결 결과가 나온 6개월 후 집행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대만에 오다
2006년 12월, 나는 혼인의 인연이 있어 대만이 왔다. 도시에서 시골까지, 익숙한 것도 있고 생소한 것도 있는데 갈 때 동수들은 신신당부했다: 절대 안일을 탐하지 말고 세 가지 일을 잊지 말아라.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이런 자유로운 환경을 찾은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 내게 사부님을 만나뵈면 대신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으나 아직 동수조차도 못 만나보았다.
나중에 나는 순조롭게 대만의 동수를 찾았고 내가 토요일 교류회에서 나의 정황을 소개했으며 나의 곤혹을 이야기 했다. 진상을 말할 때, 나는 대륙에서는 자료를 나누어주었는데 대만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라고 물었다. 교류회가 끝날 때 어느 자매가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우리 집에 갑시다. 집에 3대의 컴퓨터가 있는데 인터넷 채팅을 가르쳐 줄테니 우리 집에서 대륙의 친구들에게 진상하고 삼퇴를 권하면 됩니다.
나는 이전에 컴퓨터로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을 일부 알고 있어서 배우기 쉬웠고 곧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너무 긴장하여 어떤 사람에게는 잘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엉망으로 했다. 그러나 시범을 보여주는 동수들이 10명씩이나 침착하게 조리정연하게 진상을 전하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나도 할 수 있었다. 채팅하는 과정이 사실 두려운 마음, 색심을 제거하는 수련 과정이었다.
처음에 상대방이 나를 욕했다: 매국, 반동이라 하며 나보고 죽어버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며칠 간은 욕을 먹을까 무서워 감히 채팅을 못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무엇을 두려워할 게 있느냐! 두려워하지말고 하자. 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직도 욕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도 내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바로 색심을 제거하는 과정이 있었다. 인터넷 상대편에서 내게 음란물을 보내주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어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랐으며 또 보고 싶었다. 때로는 그림에 끌려 허황된 생각까지 하였다. 채팅을 하다 보니 이런 마음은 천천히 바뀌어 갈수록 담담해졌고 때로는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으나 나는 싫어하는 마음조차도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물같이 고요해야 하며 마음이 이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 나라의 생활환경이나 풍습이 다른데다 나와 남편은 결혼 전 많이 만나지 못했고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그리 조화롭지 못한 데가 있었기에 또 결혼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고 심지어 이혼하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무엇을 하러왔는가? 내가 행복한 혼인생활을 하러 왔는가? 이전에 나는 늘 일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고 많은 시간이 있어 법실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현재 바로 이렇지 않은가? 대륙에서 법실증을 하려면 체포될 위험을 무릅써야하고 식구들도 모두 걱정하지만 지금 나는 컴퓨터 앞에서 마음 놓고 대담하게 하는데 또 무슨 불만이 있는가?
다시 말하면, 법공부로부터 나의 혼인 역시 생생세세의 인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럼 과거에 내가 남편에게 함부로 대한 적이 없는가? 그러면 현재 그의 나쁜 습관, 나에 대한 인색함 등은 그가 정상적으로 갚는 것이 아닌가? 왜 내가 그에게 불평하며 요구하는가? 내가 과거에 그에게 주지 않았고 그 역시 나에게 빚을 지지 않았는데 내가 요구하면 그가 주어야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심정은 평정해졌으며 오히려 나는 현재의 수련환경을 더욱 소중히해야겠다고 느꼈다. 바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가장 좋으며 대법을 얻을 수 있는 생명이 가장 행복하며,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대법제자가 가장 신성하다!
여기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수련기회과 배치하신 수련의 길에 대해 감사드린다. 대만 동수들이 나를 도와 준 것도 감사드린다. 오로지 금후의 수련의 길을 잘 걷는 것만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발표시간:2008년 1월 21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1/21/505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