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 하북 대법제자
1. 엄준한 고험
모친은 금년 81세의 고령이다. 1997년 중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속인일 때도 늘 곳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했다. 대법을 얻은 후 곳곳마다 사부님 요구에 따라 했다.
모친은 중년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내 어린 기억 속에(나는 7남매 중 막내) 모친은 늘 자리에 누워 지냈다. 그 때는 무슨 병인지 몰랐으며 70여세 되어서야 엄중한 심장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몸에 늘 폭탄 같은 것을 지니고 있어서 수시로 기절했다. 그랬던 모친이 법을 얻은 후 병세가 급속히 호전되어 수련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모친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단 한 글자도 모르는 문맹이다. 그래서 단지 사부님의 녹음만 들을 수 있었는데 수련한 지 3개월도 안 되어 74세에 생리가 다시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모친의 변화를 보고 대법이 좋음을 믿게 되어 많은 사람이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 집은 연공장이 되었고 매일 많은 사람이 법을 들으러 왔는데 그중에 어린이를 데리고 온 부인도 있었다. 어린아이가 진중하지 못해 말을 잘 듣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바람에 모친은 좀 귀찮게 여겼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모두 법을 얻으러 온 것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어 화는 곧 사라졌다.
어느 날 심장병이 발작하여 쓰러져 침대에 누워 한참이나 지나서야 깨어났다. 깨어나서도 심장의 통증으로 견디기가 힘들었는데 그때 커다란 손이 속에서 휘젓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틀 후 완전히 나았는데 매우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고 했다.(둘째형은 다른 공간의 냄새라고 했다). 그 후 모친의 병은 더는 재발하지 않았다.
2. 아무도 수련하지 않아도 나는 수련하겠다
99년 7.20 이후, 사악이 대법에 대해 탄압하기 시작하자 촌에서는 사람들이 동요하며 연마하지 않았다. 모친은 이런 사람들을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둘째 형이 모친에게 물었다. “어머니는요?”
모친은“아무도 수련하지 않아도 나는 수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후로도 매일 연공하며 법을 들었다. 모친은 연공을 중단한 적이 없는데 명절을 지낼 때도 박해가 엄중할 때도 가리지 않았다. 모친은 사부님께서‘이 생명을 연장해주신 것은 연공에 쓰라고 주신 것임을’알았다. 만약 법을 얻지 못했다면 목숨은 진작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촌에는 매우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매일 연공한 사람들을 촌 사무실로 불러 모아 주의를 환기시키는 회의를 열었으나 모친은 가지 않았다.
“내가 연공하는 것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또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촌 사무실에 가겠는가?”라고 했다. 큰형(99년 이전에 수련했음)은 두려운 마음에“사람들 말로는 어머니가 수련을 계속하면 둘째 아들(둘째형, 당시 연공장 책임자였음)을 잡아갈 것이라고”하더라고 했다. 그러자 모친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스스로가 두려운 게 아니라 둘째아들이 잡혀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법 듣기를 그만두고 연공도 음악 없이 연마했다. 이런 모친의 정황을 알게 된 시내에서 살던 넷째아들(대법제자)이 달려와서 모친에게 법 공부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법 공부를 중단하면 안 된다고 하여 모친은 알아듣고 다시 날마다 법을 듣고 연공도 했다.
평소 쉴 때나 이웃 간에 어떤 일을 만나게 되어도 모두 법으로 대조한다. 나는 비록 모친과 같은 해에 법을 얻었지만 정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모친이 사부님의‘홍음’을 알려주었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홍음>
3. 재차 고험을 겪다
나는 2000년 북경에 가서 법 실증을 하다 체포되었는데 그 후 간수소에 감금됐다. 모친은 거의 3개월이 넘도록 나를 보지 못하자 둘째에게 물어보았다. 형제들은 모친의 수련에 교란이 될까봐 내가 체포되어 감금된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모친은 당시의 시국 형세를 알고 있었으므로 나의 상황을 눈치 챘다.(99년 10월 북경에 법실증 하러갔다가 4년 형 판결 받음) 어느 날 모친은 무의식중에 쓰러졌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정에 이끌려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 말라고 점화를 주신 것을 의식했다.
나는 2001년 또 집을 수색 당했으며 떠돌아 다녀야 했다. 나이든 모친은 또 한번 쓰러졌는데 모친이 매번 쓰러진 것은 모두 나를 생각하다 그렇게 된 것이었다. 2002년 내가 다시 간수소에 갇혔을 때 모친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수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대법에 대해 더욱 굳건해졌다.
80세의 모친은 아들 손자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혼자 사셨다. 농촌에서 겨울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데 아랫목이 너무 뜨거워 이불을 태우면서 불이 났다. 새벽 1시경 연기에 깨어나 불이 난 것을 보았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세숫대야로 물을 퍼다 뿌리며 불을 껐다. 고령의 노인이 혼자서 대야로 조금씩 물을 퍼다 뿌리게 되니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불이 꺼졌다. 모친은‘자신은 수련자고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시니 절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일념이었기 때문에 어떤 위험한 일도 나타나지 않았다. 타다 남은 이불을 마당에 내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불이 났던 아랫목 옆에서 잤다.
또 한 번은 거위에게 먹이를 주다가 또 쓰러졌는데 대야 속 거위 먹이가 온통 얼굴에 범벅이 된 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당시 넘어진 상태에서 정신이 없다가 깨어난 후에야 천천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누우려고 하다가‘그것(구세력)이 나를 쓰러트리고 일어나지 못하게 했구나. 그러니 나는 눕지 않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씻고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과 오전 내내 앉아 지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또 한 번은 소변을 보고나서 갑자기 일어설 수가 없었다. 모친은‘연공자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나는 대법수련을 하는데 절대 문제가 없다.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니 나는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모친은 당시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자식들이 걱정을 할까봐 얘기를 않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한 얘기들이다. (이하 생략)
발표시간 : 2012년 9월 6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node/112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