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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 사당의 신기한 사진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1997년 9월 11일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大師)가 하남성 탕음현(湯陰縣)에 오셨다. 리 대사는 오전에 현성에 위치한 악비(岳飛) 사당을 참배한 후 오후에는 악비의 고향인 정강촌(程崗村)으로 갔다.

사당 관리인에 따르면 리 대사는 사당 안팎은 물론 정원과 후원 등 세세한 부분까지 매우 자세히 보고는 마당에 있는 향로에 향불을 태웠다고 한다. 또 사당을 수리하기 위해 후원에 쌓아둔 석재와 목재 등을 보고 기부금을 냈다. 관리인은 규정에 따라 일정 액수 이상의 돈을 낸 사람에 한해 비석에 기념을 남길 수 있고 많이 낸 사람은 단독으로 기념비를 세울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당시 리 대사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리 대사가 차에 오를 때 관리인이 문밖까지 배웅하며 이름을 남겨달라고 청하자 잠시 멈춘 후 노트에서 종이 한 장을 찢어 그에게 주었다. 그 종이에는 한수의 시가 적혀 있었다. 바로 리 대사가 나중에《홍음》에 발표한 《악비묘를 거닐며》 였다.

“비장한 역사는 유수처럼 흘러가고

호기충혼만 세상에 남겼구나

천고의 옛 묘 마음 쓰린 곳

오로지 단심(丹心)만이 후세 사람 비추네“

관리인은 리 대사가 떠난 후 글을 새기는 사람을 불러 비문을 새기게 했다. 비석의 글씨는 크지 않았고 또 리 대사의 필체에 따르지 않았다.(그는 해서체로 새겼다) 나중에 그 지역 대법제자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리 대사의 필체에 따라 커다란 비석을 새긴 후 악비 사당 정문 동쪽에 단정하게 세웠다.

1999년 4월 25일 이후 하남성 안양시 당원들이 상부의 요구에 따라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구실을 만들어 이유 없이 리 대사의 시가 새겨진 비석을 넘어뜨린 후 옮겼다. 당시 많은 대법제자들이 찾아가 비석을 보호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된 후 사악한 무리들이 비석을 부수어버렸다.

다음 3장의 사진은 서안 대법제자가 1998년 11월 악비 사당에 놀러가서 찍은 것이다. 당시는 디지털이 아닌 필름 사진기였다. 나중에 사진을 인화한 후 보니 신기한 장면이 나타났다. 리 대사의 필체를 새긴 커다란 대리석 비석이 투명하게 되어 비석 뒤쪽의 사람과 경치를 뚜렷이 볼 수 있었고 리 대사의 글씨가 허공에 분명히 떠 있었다. 심지어 투명한 비석은 거울처럼 반사하는 작용이 있어서 비석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반대편에 투영되기도 했 다.

이 신기한 사진은 대법의 신기를 입증하는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지난 세월을 견증한다.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2015/01/21/141755.神奇照片見證大法的超常.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