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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서약을 똑똑히 인식

작자/ 동진(同真)

【정견망】

수천년 중국 전통문화 중에는 맹세에 관련된 것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고대인들은 서약 앞에서 상당히 두려워하고 겸허했다. 옛사람이 서약할 때 보통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맹세를 다한 후 가지를 부러뜨린다. 그 뜻은 만일 서약을 위배할 때는 이 나뭇가지처럼 된다는 뜻이다. 아니며 무릎을 땅에 꿇고 하늘에 대고 맹세한다. “만약 서약을 위반하면 어떤 처벌이나 벼락 등의 징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래에서 밍후이왕과 정견망에 올라온 서약에 관한 일들을 다시 음미해보자.

첫 번째 이야기: 두 눈이 실명된 현인(顯仁)황후

송나라 정강(靖康) 2년 흠종(欽宗) 황제와 비빈, 관원 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나라의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갔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다. 포로가 된 송흠종이 나중에 금나라와 화의를 이루자 현인황후는 석방되어 돌아가게 되었다. 떠날 때가 되자 흠종이 그녀의 손을 잡고 울며 말했다. “내가 만일 남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태을궁(太乙宮) 벼슬만 하게 해줘도 만족하겠고 다른 기타 사치스런 기대를 하지 않겠소.”

현인황후가 말했다. “제가 돌아간 후 만약 당신을 모셔올 방법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두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인황후가 한 서약이다.

현인황후가 돌아간 후 나라에 군주가 둘이 될 수는 없었기에 당시의 송 고종(高宗 현인황후의 아들)은 아버지인 흠종을 모셔올 생각이 없었다. 현인황후는 매우 실망했다. 그러나 감히 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흠종을 모셔오는 일은 이렇게 없던 일로 되어버렸다.

얼마 안 되어 현인황후는 두 눈이 실명이 되었다. 도처에 의사와 약을 구해보았으나 낫지 않았다. 나중에 어느 도사가 궁에 들어와 금침으로 눈을 찌르자 왼쪽 눈이 보였다. 현인황후는 매우 기뻐 도사에게 다른 눈도 치료해 달라고 했다. 도사는 말했다. “당신은 이후에 한쪽 눈으로만 물건을 보며 다른 눈으로 당신의 서약을 지키는데 써야 합니다.”

두번째 이야기 : 독한 맹세로 비명횡사하다

<수당연의(隋唐演義)>, <흥당전(興唐傳)>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진경(興唐傳)이 나예처에서 군사를 보충할 때 사촌 동생 나성(羅成)과 서로 상대방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절기인 “나가창(羅家槍)”과 “진가간(秦家鐧)”을 서로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감추는 것이 없도록 했다.

진경은 맹세했다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숨기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진경이 막상 가문의 절기인 “살수간(撒手鐧)”을 가르칠 때 사촌이 나중에 자신을 뛰어넘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성은 맹세했다.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숨기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온몸에 화살을 맞아 죽을 것이다!” 그러나 가전의 절기를 가르칠 때 역시 사촌 형이 자신보다 나을까 두려워하여 “회마창(回馬槍)”을 가르칠 때 가볍게 한번 하고 지나가며 절초를 숨겼다. 쌍방은 이 일을 둘 다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중에 나성은 소정방(蘇定方)과 교전 중 소정방의 간계에 속아 혼자 단기필마로 진흙에 빠져 화살을 맞아 죽었다. 백전백승의 상승장군(常勝將軍, 늘 이기는 장군)은 23세에 이렇게 비명횡사했다.

진경도 만년에 보응을 받았다. 진경은 당시 이미 당나라 개국공신이 되어 있었다. 그는 만년에 위지공(尉遲恭)과 함께 장수의 인을 빼앗는 시합을 하던 중 천근이 되는 솥을 들 때 힘에 겨워 피를 토하고 죽었다.

지금 사람들은 신성하고 장엄한 서약과 맹세를 이미 아이들 장난처럼 여긴다. 즉, 말로만 하는 희극이나 연기 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록 사람들의 인식상에서 서약이 변질되었다고는 해도 그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서약은 아이들 장난처럼 여길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진경이나 나성처럼 설사 영웅호걸이라도 서약을 위반한 징벌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피를 토하고 죽거나 온몸이 화살에 쏘이는 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늘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면서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인용하곤 한다. 그러면서 속인이 공산당관련조직에 들어갈 때 맹세한 서약은 만약 탈퇴하지 않는다면 결과가 얼마나 엄중한 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우리 매 사람은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조사정법 중생구도”를 하겠다고 모두 서약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서약을 실현했는가? 대법제자는 주불(主佛)과 서약했는데 서약 자체로 말하자면 인간세상의 서약보다 몇배나 신성하고 엄숙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서약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대법제자는 서약을 했노라고 말씀하셨고 서약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후과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일부 수련생은, 나는 알고 있는데, 정진하지 않는다. 일부는 심지어 아주 정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부는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을 어찌하겠는가? 당신은 어찌하여 정념이 없는가? 사부는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가, 이 법이 당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 직책을 몸에 겸하고 있는데, 자신마저도 잘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자신이 신(神)에 대한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면, 후과는 자신이 서약 중에서 정한 대로 된다.” <2013년 서부 국제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정진하지 않는 것 역시 자신의 서약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수련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이 한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정진하지 않을 때 이는 자신의 서약을 실행하지 않는 거라고 시시각각 스스로를 일깨우고 있는가.

고대인은 일단 서약을 맹세하면 일반적으로 감히 서약을 위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약을 위배한 후과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세한 그 순간부터 오늘 이후의 인생의 길에서 시시각각 자기를 일깨운다.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라도 결코 서약을 위배하지 않겠다. 현재 중국 대륙 사람들은 공산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며 서약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긴다.

때로 나는 속인 친구에게 인사한 후 자연스럽게 말한다. “시간 있으면 가볼게.” 사실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옛사람은 “일언천금”이라고 했다. 말에는 행동이 따라야 했다. 우리는 일상 늘 말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데 비록 서약처럼 그리 엄중하지는 않지만 자기 사상을 확대해 보면 사실 이 문제는 엄중한 것이다. 이 방면에서 잘하지 못해도 자신의 수련 중에 존재하는 문제로 반영되어 나올 수 있다. 말한 것을 하지 않는 것과 서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다시 수련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사부님께서는 입이 닳도록 우리들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문제를 만나면 자신에게 찾으라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매 시각 그렇게 하고 있는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면 자신의 서약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책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보아라. 반드시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스위스 법회 설법>

“나는 여러분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하라, 법공부를 하라, 법공부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각지 설법 4-2004년 시카고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 법공부 문제에 대해 이미 이 정도로 말씀하셨는데 만약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서약을 실천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동수는 법공부 할 때 경사경법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법공부 할 때 자세가 삐딱하든가 심지어 반쯤 누워본다. 또 어떤 이는 안정하지 못하고 십분도 안 돼 물을 마시던가 다른 일을 하면서 한시간에 몇 번씩 중단한다. 또 일을 하면서 설법을 듣던가 심지어 대화를 하며 법을 보는데 일이 있으면 책을 덮지도 않고 멋대로 가버린다. 이런 현상은 법공부 태도에 단정하지 못함의 체현이며 법공부에 이런 태도가 지속되면 법 배후의 요소가 드러날 수 있겠는가?

속인이 무슨 일을 해도 바른 태도가 있어야 한다. 옛날 학생들은 공부할 때 옷깃을 단정히 하고 앉았으며 불자들이 경을 읽을 때면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옛날 속인과 수행자들이 이와 같았는데 우리 대법 수련자는 법공부 할 때 반드시 단정한 태도, 존경의 마음이 있어야 된다. <전법륜>의 매 글자는 다 사부님의 법신이므로 우리가 <전법륜>을 읽는 것은 사부님께서 직접 강의하시는 것처럼 매우 엄숙하고 신성한 일이다. 단정한 태도가 없으면 안된다.

우리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자신은 단정한 법공부 태도와 경사경법(敬師敬法)의 마음이 있는가? 정진하고 있는가? 자신의 서약을 실천하고 있는가?

여기서는 법공부를 예로 들었다. 개인적인 이해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서약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정법은 이미 최후가 되었다. 인간세상의 매 하루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끝없는 대가를 지불하고 연장해주신 것이다. 대법제자들은 자신의 서약 자체에 대해 반드시 청성한 인식이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부님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중생들이 좀 더 구도될 희망이 있으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분이 우주 중에서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개인의 인식이니 부당한 곳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http://www.zhengjian.org/2016/02/29/151401.清醒的認識自己的誓約.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