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아명 ‘큰 비구니’의 내력
나의 아명은 ‘큰 비구니’다. 철이 들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이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름이 듣기 좋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나중에 비로소 내 이름의 유래를 알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날 당시 집이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아버님도 안 계신데 내가 태어난 후 어머니는 아파 누웠고 돈이 없어 돌볼 형편도 못되었다. 그러나 나는 태어나서 울지도 않고 마치 죽은 아이 같았고 어머니도 아무 힘이 없었다. 어머니는 나보다 열 살 많은 언니에게 나를 버리라고 했는데 언니는 어머니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바빠서 저녁이면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기를 7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 때 집에 키가 큰 할머니 한분이 왔는데 마을에 친척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데 좀 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앉으라고 권하자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놀라면서 아이가 왜 이러냐고 했다. 어머니는, 애가 태어나서 울지도 못하고 젖도 안 먹어요. 내가 큰 애보고 내다 버리라고 했는데 걔가 저녁만 되면 피곤하여 잠이 들어버려서 아직 버리지도 못했어요.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자라면 참 예쁠거야, 약을 좀 먹이면 살 수 있소! 그러자 어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걱정 말라고 하면서 약을 사가지고 돌아와 나에게 조금 먹였다. 이렇게 하여 나는 날마다 노인이 돌보아 한 달을 채웠다.
나중에 나는 정말 좋아졌고 어머니 병도 나아서 걸을 수 있었다. 우리 둘이 다 낫자 그녀는 매우 기뻐했는데 그 후론 다시 오지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가 찾아보았다. 그런데 온 마을을 돌아다녀도 그런 할머니에 대해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구해주신 감격을 기념하기 위해 나의 아명을 “큰 비구니”라고 지었다. (당시 우리 마을을 비구니 촌이라고 불렀기 때문) 나중에 우리 집이 이사를 갔고 또 돌아온 후에도 여러 번 알아보았으나 아무도 이 할머니를 본적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정말 신화 같다. 그 분이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알고 싶다.
신비한 봉재 노인
내가 어려서 병약했기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겨울이면 화로에 둘러앉아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20대 때 언니 의상실에 가서 자질구레한 일을 도왔다.
몇 년 후 언니는 결혼을 했고 나 혼자서 이 가게를 지켰다. 이 기간 동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언니가 떠난 후 나는 제대로 된 첨단 의상을 만들 수 없었고 그저 간단한 옷과 치마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배우려 했고 가능하면 고객을 만족시키려 했다. 한 번은 어느 고객이 제복을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막 유행하던 제복이었다. 하지만 나는 만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나는 이 일감을 받았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고 만든 후 고객이 매우 만족해했다.
나중에는 담이 커져서 무슨 주문이든 다 맡았다. 한 번은 어느 고객이 결혼 예복을 만들고 싶어했다. 나는 양장은 한 번도 안 만들어봤고 심지어 호주머니도 붙일 줄 몰랐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일을 받았다. 또 시간도 매우 급했다. 일을 받고서는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밤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일과 씨름을 했다. 때가 겨울이어서 매우 추웠는데 손발이 다 얼었고 나도 좀 무서웠다. 연탄을 좀 사서 때면 좋겠는데. 하지만 연탄집 주인은 내가 두 장만 사겠다고 하자 너무 적어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때 어느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말하기를, 아가씨, 날 따라오면 연탄 두 장을 팔겠네. 그래서 노인을 따라서 뒤쪽 굽은 곳 골목까지 갔다. 속으로는 나쁜 사람이 아닌가 좀 불안했다. 그래서 멀리서 자전거를 밀면서 따라 갔다. 얼마나 갔는지 노인이 다 왔네 라고 하며 자루를 들고 연탄을 주려고 했다. 내가 도우려 하자 필요 없다 하며, 이 연탄은 너무 더러워 옷을 버리게 되니 들어와 몸이나 좀 녹이라고 했다.
나는 골목을 따라 집에 도착했는데 실내를 보고 매우 놀랐다,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어떻게 이렇게 고급 옷이 있으며 가지런히 온 방에 걸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 모우 서양식 옷인데 옷감도 매우 좋아 고급 품질이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하여 보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나는 얼른 물었다. 할아버지, 이건 누가 만든 것입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만든 것인데 배우고 싶은가? 그럼 내가 가르쳐 주지 라고 했다. 나도 기뻐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 즉시 배우기 시작했는데 주머니와 안감을 붙이는 법을 배웠다. 내가 몰랐던 것을 한 번에 다 배웠다. 받을 일감을 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노인에게 감사드리고 연탄을 가지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그 예복을 만들었고 주문한 사람들이 와서 매우 만족해했다. 나는 정말 신선을 만난 것처럼 운이 좋았다. 중요한 시각에 나를 도왔으니. 마치 꿈을 꿈 것 같았다. 나중에 언니에게 이야기를 하니 언니는 그런 곳이 여기에 없다고 했으며 그렇게 좋은 양복점이 있다면 누가 모르겠니? 라고 했다. 나도 몇 차례 찾으려 시도했는데 찾지 못했다. 노인은 어디로 갔는지 마치 공중으로 사라진 듯했다.
대법이 내 몸에 일으킨 기적
현재 나는 40대다. 법을 얻어 수련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대법 중에서 나는 사람이 어디서 왔으며 왜 사람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서약과 사명이 있으며 암암리에 다 정해진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인생 역정을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고생이 많았고 경제적으로나 결혼에서나 압력이 매우 컸다. 생활에 곤혹스럽고 힘들었다. 하지만 암암리에 신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내가 대법을 배우게 되어 비로소 인생중의 그 기적들은 사부님이 묵묵히 보호하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글자를 모르기에 내가 《/span>전법륜을 구했을 때 기다릴 수 없어 남편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듣자하니 이 책이 매우 신기하다고 했다. 처음에 그는 즐겁게 나에게 읽어 주었으며 파룬궁이 정말 좋다고 했다. 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읽어주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바닥에 엎드려 책을 몇 번씩 뒤적거리면서 조급해 했다. 어느 날 나는 책을 보다 피곤하여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내가 얼마동안 잠을 잤는지 모르겠는데 깨어난 후 갑자기 글자를 알 수 있었다. 글자를 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span>논어를 외울 수 있었다. 나는 몹시 기뻤다. 묵묵히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대법이 내게 신기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기뻐하며 남편에게 다시는 책을 읽어줄 필요가 없다고 했고 내 스스로 읽을 수 있다고 했더니 그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읽어주었더니 그는 불가사의 하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로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했다. 내가 연공한 후 몸의 이 많은 병을 가진 나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고 백가지 병이 전부 없어졌다. 길을 걸어도 가뿐하다. 나는 몸으로 대법의 신기함을 증명한 사람이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나를 구도하신 것에 감사드린다.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다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수와 북경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결백을 밝히는 일이었다. 당시 두 아들은 겨우 몇 살인데다 집에 돈도 없어 남편 이름을 팔아 돈을 200위안을 빌렸다. 가는 차비만 있고 돌아오는 일은 생각지도 않고 동수와 함께 상경했다. 북경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저물었다 우리는 여관을 찾으려고 했는데 여관은 모두 하룻밤에 몇십 원씩 하여 우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좀 더 싼 곳을 찾으려고 하여 우리는 거리를 떠돌았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잘 거냐고 물었다. 좀 싼데 하루에 3위안이라고 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는 우리 마음을 추측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래서 어느 골목에 매우 누추한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다음날 우리는 천안문으로 가서 법실증을 했는데 경찰에 쫓겨 흩어졌다. 나는 “파룬따파 하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달라”고 외치다 붙잡혔고 많은 동수들과 함께 갇혔다. 어떤 동수는 얻어맞았다. 경찰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으나 우리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석가장역으로 보내주었다. 그러나 역에 도착한 후 나는 집에 돌아갈 차표를 살돈이 없었다. 또 배는 고프고 피곤해서 터미널 긴 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달콤하게 자고 있을 때 청소하는 할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아가씨, 어디로 가요? 내가 사정을 이야기 하자 그는 차가 곧 떠난다고 급히 말했다. 나는 아직 정신이 들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내손을 끌고 우리 방향으로 가는 차 쪽으로 달렸다. 그래서 겨우 차에 올랐다. 내가 오르자마자 차가 떠났다. 노인의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노인은 나를 끌고 검표구까지 데리고 갔는데 표도 필요 없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기차표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후 남편은 내게 밥을 차려주었고 나 혼자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한데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떠난 후 그는 몹시 화가 나서 내가 돌아오면 껍질을 벗겨놓겠다고 심하게 떠들었다고 한다. 남들이 다 나를 걱정했지만 내가 무사히 돌아오자 그도 기뻐했으며 사람들에게 보시오 우리 집사람이 북경에 가서 정법 일을 해도 무사하게 돌아오지 않았소 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공교로운지 감탄했다. 모두 사존께서 묵묵히 감당하고 도우신 것이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법공부,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서약을 완성하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6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