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중국 대법수련생
【정견망】
“인간이 세상에 태어남은 법 기다리기 위한 것
선자(善者)는 하늘의 집으로 돌아가리라
윤회 전전 천백 년
세상에 온 것은 이 한번을 위해서라네” 《/span>홍음 4>
어느 날 인상이 깊은 꿈을 꿨는데 그 속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위 단락 법의 함의를 깨달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꿈을 꾸면 기억이 그리 오래가지 않고 또 논리성도 별로 없다. 늘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깨어나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꾼 꿈은 이미 꿈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 똑똑했고 또 논리성도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기분이었다. 꿈속에서도 자아의 사상과 감정이 있었다. 깨어난 후 나는 자세한 부분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미 2, 3개월이 지났지만 꿈 속 장면이 깊이 새겨져 있다. 나는 이것이 사존께서 꿈을 이용해 점화해주신 것으로 주왠선이 다른 공간에 간 것임을 안다.
꿈속에서 나는 마치 방관자 같았다. 어느 큰 광장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입은 것과는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분장을 했다. 또 배낭을 들고 광장 중심에서 집회를 했다. 나는 그들이 각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여행을 떠나거나 어떤 임무를 완성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서로 아쉬워하고 서로 걱정해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그들은 흩어졌다. 나는 또 그들을 따라갔다. 마치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보고 싶은 것처럼. 어떤 이는 보통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삶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면 나는 몹시 괴로웠다. 역시 인생은 지내기 어려운 것이구나. 또 어떤 사람은 길고양이로 변했는데 형을 따라 함께 유랑했다. 불행히도 여기서 ‘나’는 겨우 50일만 살고 죽었다. 죽을 때 그 고양이의 형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고 고양이가 죽는 것을 보았을 때 방관자인 나도 생명의 취약과 비애를 느꼈다. 또 한 사람은 과자로 변했다. 비로 과자였지만 그것의 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다른 것들도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 비록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일생의 연극이 빨리 끝나 자신의 진정한 사명을 시작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때 한 가지 사유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것은 모두 나의 전생이었다. 그들이 같은 출발점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연기하며 온갖 고생을 겪은 것은 바로 오늘날 내가 법을 얻기 위함이었다. 나는 크게 깨달았고 눈물이 솟구쳐나왔다.
사존께서 이렇게 나를 점오해주신 것은 당시 너무 정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고생이 너무 심해 세간의 각종 교란과 각종 미혹에 이끌렸고 많은 집착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존께서는 내가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시고 이런 식으로 나를 점화해 정진하게 하신 것이다. “당신의 걸어온 길을 소중히 하라!” 《/span>대만법회에 치사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중국에서 수련생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당신이 느끼기에 당신은 평범하고도 평범하게 이 학습반에 와서 강의를 들었지만, 아마 당신은 지난 몇 세에서, 심지어 십 몇 세에서, 몇십 세에서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하여 고생을 겪었을 것이지만(박수), 단지 당신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 법을 얻기 위하여 머리가 떨어진 적도 있다. 수련 중에서 나는 입이 닳도록 선을 권고하며 당신들을 이끄는 것은, 역사상의 당신들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당신들이 오늘 그를 얻기 위하여 아주 많은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이렇게 당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또한 당신 자신에게 미안한 것이다.” 《/span>미국제일차 설법
확실히 이렇다. 내가 이번에 나의 과거 전생을 가서 보니 지금의 고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것에 이끌려 수련을 잘 하지 못한단 말인가? 법도 얻었는데 만약 수련을 잘 하지 못한다면 사부님의 구도에 떳떳할 수 있겠는가? 세세생생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가? 이왕 겪은 마난은 모두 헛수고가 되지 않겠는가?
동시에 꿈속의 장면들이 이렇게 똑똑한 것은 그것이 내가 정말 걸어왔던 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면 내가 겪은 각종 모순이든 마난이든 현실의 각종 유혹이든 그것들은 사실 꿈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는 왜 이렇게 마음에 두는가? 무엇 때문에 이런 것에 이끌려 지지부진하며 전진하지 못하는가? 사람이 세간에 있는 것은 미혹 속에 떨어진 것과 같다고 하는데 세간의 각종 일에 너무 집착한다면 그것은 꿈에 곤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때야 비로소 진정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이 세계상의 어떤 것도 다 당신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모두 당신이 법을 얻지 못하게 한다.” “어떤 일이든 다 사람을 유혹한다. 이 사회가 바로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사람을 유혹하는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법을 얻지 못하게 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를 훼멸하려는 것이다.”
옛말에 “인신난득, 중토난생, 정법난우(역주: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중국에서 태어나기 힘들며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라 했다. 우리는 어렵게 온갖 윤회의 고통을 겪으며 천시·지리·인화의 큰 행운을 만났다. 또한 법을 얻었으니 미혹의 몽환이 자신이 돌아갈 소원을 가로막게 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사존의 가르침을 같이 보기로 하자.
“비록 수련의 일을 말할지라도
마음속 집착을 버려야 하노라”
《/span>홍음 2> 집착을 버려라.
개인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사존의 용서를 바라며 또 동수들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8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