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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가 창작한 음악

글 / 백지(百志)

[정견망 2003년 10월 19일] 최근에 출근해서, 나는 대법제자가 창작하고 연주한 고쟁곡(古箏曲)을 틀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주변의 몇몇 동료들도 대법제자이기에, 우리는 이런 환경 중에서 매 개인의 심령(心靈)이 상화롭고 음악에 배합하여 아무런 말도 없이 단지 각자의 일만 할 뿐이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마치 각자 자기의 악기소리[樂聲]를 가지면서 동시에 조화롭게 교향악을 만들 듯이 정말로 하나의 정체였다.

우리는 교류도중 대법제자의 음악은(특히 고아한 고쟁) 사업장에 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심지어 공중장소에서 틀어 일반사람들이 들어도 아주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동수는 “대법제자의 음악을 듣는 것”과 “아무 음악도 듣지 않는 것” 그리고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것”이 사람의 심리적 특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마땅히 실험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계속해서 《신선도(神仙渡)》, 《등귀도(登歸途)》, 《여몽령(如夢令)》 등 고쟁곡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자비의 에너지가 부드럽게 흘러 넘치면서 나의 심령이 그런 미묘(美妙)한 경지로 녹아들어감[溶入]을 느꼈고, 동수는 때때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증명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나는 반복해서 음악을 틀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덕음(德音)”이니 “아악(雅樂)”이니 “선악(仙樂)”이니 하는 말로도 이런 고쟁곡들을 완전히 형용할 수 없다. 나는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는데, 소리도 또한 생명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고쟁곡의 소리는 사실상 대법을 내포하는 생명의 순정(純正)하고 자비로운 에너지장이 내 마음을 바로잡고 이 환경을 개변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동한 주파수는 마치 부동한 심성(心性)과 유사하고 부동한 음색(音色)은 마치 부동한 특질과 유사하다. 그러나 대법제자의 손을 거쳐서 이런 생명은 그렇게 조화[和諧]롭게 된다. 나는 만약 사람과 사람이 서로 협조하는 것이 능히 이 곡과 같은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면 높낮이가 서로 다른 어지러운 곡조를 만들어내지는 않을 것이며 동시에 돌출하는 잡음을 만들어 내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쟁곡들을 들으면 속으로 순선(純善)이 충만하는데, 정말로 속세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미래의 인류사회는 능히 이런 대법제자들이 창작한 음악으로 충만할 것을 희망한다. 만약 곳곳에서 이런 선악(仙樂)을 방송한다면 사람의 마음도 반드시 조화롭게 될 것이다.

음악은 단지 나의 마음만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세인(世人)들의 마음도 바로잡을 수 있다!

한가지 작은 체득이지만 동수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써낸다.

발표시간 : 2003년 10월 19일
문장분류 : 문명신견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0/19/240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