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애심법: 앙모충혼(仰慕忠魂)

글/ 석방행

【정견망】

나는 전에 하남(河南) 탕음(湯陰)이 일찍이 하(夏) 왕조의 수도 중 하나였단 이야기를 들었다. 주나라 문왕이 억류되었던 상조(商朝)의 감옥인 유리(羑里)가 이곳에 있었고 문왕은 이곳에서 주역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또 고대 명의 편작(扁鵲)의 묘와 사당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편작이 이곳에서 다른 의원에게 찔려 죽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위한 무덤과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편작의 무덤이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2011년에 나는 몇몇 친구들과 탕음에 가서 악비묘(岳飛廟 주로 명나라 때 건축물)와 악비의 고향을 방문했다. 악비묘 안 뜰에 있는 측백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매우 감격스러웠다. 나는 악비의 고향에서 복도에 누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내 기억에 항주(杭州)의 악비묘 앞에는 철제 주물로 된 무릎을 꿇은 조각상이 여러 개 있었는데 방문객들은 진회(秦檜) 등 다른 사람들의 머리를 손이나 물건으로 치거나 침을 뱉곤 했다. 직원이 그들을 막는 경우가 많지만 관광객들은 모두 “맞을 사람은 맞아야 하고 더러운 곳에 있게 해야 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한다.

우리는 이들 관광객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부수는 것인데 그 유지 보수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사실 건의할 것이 있다. 그 몇 명을 유리 캐비닛에 넣으면 여전히 무릎을 꿇지만 손상되거나 더러워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대신 방문자들이 분노를 표시할 수 있도록 길쭉한 바위와 더러운 물이 든 양동이를 옆에 놓아, 때려도 망가지지 않고 침을 뱉어 분노를 풀게 해줬으면 한다.


하남 탕음 악비묘


항주 악비묘의 악비조각상


악비의 등에 글자를 새기는 모친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내심에서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를 구별할 표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큰 간신배나 악인을 마주해 우리는 이를 갈며 미워한다. 많은 경우 나는 생각하는데, 시간을 남송(南宋)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악비가 살해된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회 같은 간사한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나서 바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있지만 그러나 많진 않았을 것이다(예 : 한 무명의 간수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악비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했고, 또 어느 젊은 군관은 진회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능지처참 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명성은 영원히 남았다. 그 외에도, 태학생들이 악비 등이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 진회에게 직접 따지러 찾아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연루될까 두려워하는데 그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선택해 분해도 감히 말을 꺼내진 못하는 그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럼 오늘 우리는 먼저 ‘충(忠)’의 개념에 대해 말해보자. 한 나라의 기수(氣數)가 다했을 때 죽음으로 황제를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명주(明主)에게 투항할 것인가를 무슨 수학 공식처럼 논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은나라 주(紂)왕 같은 폭군을 옹호한다면 천하 백성들은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며 이는 민심을 어기고 하늘의 이치를 위배하는 것이다.

만약 한 조대(朝代)의 기수는 이미 다했지만 황제가 백성에게 그리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럼 중화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말할 때 충심으로 주인을 섬겼다면 바로 영웅이 될 것이다.

비록 이런 종류의 영웅은 문천상(文天祥)이나 사가법(史可法 역주: 명나라 말기 최후까지 양주성을 지키며 청나라 군대에 맞섰다가 피살당한 장군)처럼 비극적이고 또 하늘의 뜻에 어긋나긴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가급적 다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충’을 드러낼 방법이 없다. 삼국시대 촉나라의 제갈량이나 강유(姜維)도 이와 같았다.

하지만 바로 지금처럼 중공이 사람을 해치는 체제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여전히 옹호하려고 한다면 이는 하늘의 뜻을 위배했을 뿐만 아니라 민심마저 위배한 것이다. 반대로 이 체제를 이탈한다면 하늘의 뜻은 물론이고 민심에도 떳떳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의(義)’에 대해 말해보자. 이 의(義)란 삼국시기 도원결의를 통해서 볼 수 있다. 만약 국가적인 측면까지 올라간다면 유비는 한마음으로 한 황실을 회복하려 했고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는 자연스럽게 뒤따라갔다. 그들은 이 목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세 형제 사이에서 ‘의’의 내함을 풀어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종종 매우 착하고 어려운 시기에 서로 돕고 “복이 있으면 나누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감당하는” 정신을 공동으로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매우 소중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중국 고대에 도덕 수준이 매우 높았던 때에는 ‘군자(君子)’가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함께 한 지역의 도덕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어질고 의로운(仁義) 사람들을 보면 모두 탄복한다. 이 ‘의’는 무슨 패거리를 만들거나 산적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소위 ‘의기(義氣)’란 아주 협애한 것으로 민가를 습격하고 약탈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의기’라 부를 수 없으며 ‘여기(戾氣 사악하고 나쁜 기운)’라고 불러야 하며 살기(殺氣)와 사기(邪氣)가 지나친 것이다.

사실 고대에 일부 강도들은 어쩔 수 없이 압박에 의해 된 것으로 일반 백성들은 침범하지 않고 오직 탐관오리만 죽였다. 이런 종류를 숭배할 가치는 없지만 이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도덕적 양심으로 이루어진 ‘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본문에서는 남송의 악비가 풍파정(風波亭)에서 살해된 지 15년 후의 이야기다. 탕음에 아명이 효아(孝娥 13세)라는 소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날 때부터 의협심이 매우 높아서 어려서부터 남을 도울 줄 알았다. 열여섯 살 때는 한 여자 도인을 따라 무술을 배웠다. 이 여자 도사는 무예가 아주 대단했다. 그녀는 또 악비의 영웅적 명성을 앙모했다. 나중에 그녀는 악비의 생전의 일부 벗들을 찾아갔고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악가(岳家)의 창법(槍法)을 일부 배웠다. 비록 정수를 배우진 못했지만 악비 가문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배웠다. 물론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효아에게 전해주었다.

효아는 어릴 때부터 마을 사람들로부터 악비가 살해된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찼고 때로는 분노로 죽을 지경이 되기도 했다. 여도사에게 무술을 배운 후 도사의 가르침 아래 더 나아질 수 있었지만, 장기적인 슬픔과 분노로 인해 악비가 당한 일을 언급하기만 해도 그녀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나중에 효아가 25살이 되었을 때 여도사는 우연히 주동(周侗)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주동은 아주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북송(北宋)의 유명한 무술 명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했다. 나중에 그는 소림파 무술의 담정방(譚正芳)을 스승으로 모셨다. 사실 그는 (수호전에 나오는) 옥기린 노준의(盧俊義)와 표자두(豹子頭) 임충(林沖) 및 무송(武松)의 사부였다. (또 노지심(魯智深)과 사문공(史文恭)의 사부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 진위를 고증할 필요는 없다.) 물론 악비의 스승이기도 했다. 주동은 악비가 결혼했을 때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일종의 가사(假死)상태였다. 다시 말해 그는 그 생에서 악비와의 속세 인연을 완성했으니 마땅히 멀리 떠나야 했다. 제갈량이 오장원(五丈原)에서 병사(病死)한 것도 이런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고대 중국에는 아주 많았고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도사는 주동의 위명(威命)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효아의 마음속 매듭을 좀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주동은 효아를 보자마자 먼저 눈물부터 흘렸다. 여자 도사와 효아는 이유를 몰랐고 주동은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효아가 악비 원수님이 해를 입은 일에 대해 들을 때마다 비분강개한 것은 이전의 인연 때문이다. 나의 몇몇 도제들(노준의, 임충, 무송) 은 모두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 사실 굴욕과 마난(磨難) 속에서 충량(忠良)한 본색을 바꾸지 않을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생명의 가장 소중한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굴욕은 생명의 이전 업장과 악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일부 나쁜 생명이 참여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때 풍파정에서 악(岳) 원수가 살해된 후 당신들은 여전히 악 원수가 ‘천일소소 천일소소(天日昭昭,天日昭昭)’라는 8글자를 남기고 떠난 것을 기억하는가? 사실 악 원수는 자신의 일생으로 충효절의(忠孝節義)란 네 글자를 성취해 우리 위대한 중화에 사람이 되는 기본 이념과 규범을 다져준 것이다. 악 원수는 그것을 굴욕적인 방식으로 연기해 돈이나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을 일깨워 주려고 한 것이다. 모든 새 장부와 낡은 장부는 ‘천지가 밝아올 때(天地清明)’ 함께 결산할 것이다. 그래서 악 원수가 마지막 남긴 말이 바로 ‘천일소소(天日昭昭 역주: 하늘이 밝아온다는 의미)’였다.”

효아는 이 말을 다 듣고 나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의 조정은 위아래가 모두 사치에 빠져있는데 언제나 ‘천지 청명(淸明)’의 때가 나타날까요?”

효아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고 주동이 직접 말했다.

“당신들은 상나라 말년에 주나라 문왕은 탕음 감방 안에 갇혀(문장 처음 부분에 언급했음) 주역을 만들었는데 주왕(紂王)은 그가 도술이 있는지 시험해보려고 아들을 죽인 후 그 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였다. 또 진(秦)나라 말기와 한(漢)나라 초기의 한신은 남의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굴욕을 당했으며, 유방을 도와 천하를 차지하게 했지만 결국 여후에 의해 미앙궁에서 살해당했다. 선조(先朝 여기서는 북송) 양가장(楊家將)은 국경을 지킨 정벌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죽었고, 또 금조(今朝 남송)의 악 원수는 악가군(岳家軍)을 이끌고 금나라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은 풍파정에서 죽을 운명에 처해졌다. 만약 이 모든 것을 한 생명으로 연기했다면 마지막에 ‘천일소소(天日昭昭 하늘이 밝아온다)’는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당신들이 한번 생각해보라.”

이때 여도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기왕에 과거에 영광스럽지만 비참한 역할을 연기할 그런 한 생명이 필요했다면, 그럼 이 생명은 미래에도 이런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천일소소(天日昭昭)’는 모종의 도법(道法), 인간세상을 바로잡는 이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않으면 어떤 황제가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는 그 생명의 이렇게 많은 영광과 비참한 결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또한 이렇게 말하면 이 생명은 분명 평범한 생명이 아니며 심지어 근본적으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경지의 그런 생명이 아닐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경력을 이용해 이렇게 많은 영광스럽고 비참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주동이 말했다.

“당신 말이 옳소, 당신들 누가 오셨는지 보려는가?”

그러자 그들은 악 원수와 악운(岳雲) 두 사람을 보았다. 효아는 너무 기뻤고, 수년 동안의 슬픔과 분함이 눈물로 변하여 흘러나왔다.

악운이 앞으로 나아가 저지하려 했는데 악비가 막지 말라고 표시했다. 효아가 울다가 지쳤을 때 악비는 효아에게 엄숙히 말했다.

”네 가슴에 가득 찬 비분은 너와 나의 예전 인연 때문이니 더는 그렇게 하지 말거라. 무슨 일이든 초연하게 보아야 한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내가 당초 고종과 진회가 내린 12금패에 소환되었을 때 나는 진강(鎭江) 금산(金山) 천강사(天江寺)에 가서 나의 또 다른 불가(佛家) 사부인 도열(道悅) 선사를 만났다. 이 선사는 개오했으며 아주 많은 일들을 아주 똑똑히 알았다. 그는 내가 돌아가길 원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왜 돌아가야만 했는가? 표면적으로는 내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며 고종과 진회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나는 그 일생을 이용해 ‘충효절의(忠孝節義)’를 연기한 것은 이후 역사에 문화를 다져주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다음 조대부터 시작해 서방 문화와 교류하는 기회가 점점 많아질 것이고, 또 몇 백 년 후에는 서방 문명이 점차 발전해 동방을 위협할 것이다. 그때 나는 우리 중원 자녀들이 모두 과거 조대(朝代)에 출현했던 충신과 양장(良將 뛰어난 장군)들이 문화의 혈맥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음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 했다.

또 장래 중화대지의 생령(生靈)들이 도탄에 빠지고, 한 사악한 오랑캐가 그것의 물건을 중화대지 위로 수송해 중화에 잔학한 짓을 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길고 긴 윤회 중에 다진 ‘충효절의’를 공경하는 요소가 작용을 일으켜 그때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내가 ‘천일소소(天日昭昭 하늘이 밝아온다)’한 노정을 연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효아는 이해할 듯 말 듯 막 묻고자 하는데 악비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그리고는 악가 창술의 정수와 요령을 다시 한 번 효아에게 말해주고 또 직접 시연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네가 이 창법과 다른 무술을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까지 연마하면 내가 또 너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겠다.”

이렇게 말을 마친 악비는 악운을 데리고 떠났다.

여 도사가 효아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번에 악 원수도 보았으니, 이제 마음속으로 악 원수와 악운이 살해된 것에 대해 괴로워하지 말거라. 사실 악 원수와 악운의 죽음 역시 ‘가사(假死)’에 속한다. 그런 식으로 그 생의 인연이 끝내고 하나의 문화를 남긴 것이다. 너는 앞으로 무술을 잘 연마해야 한다.”

주동도 이렇게 말했다. (설명 : 이런 종류의 죽음은 무언가를 자신의 외모로 바꾸어 대신 죽게 하고 몇 시간 만에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그런 평범한 수련자들과는 다르다. 사실, 악비와 아들의 육신은 당시 실제로 죽음에 처해졌고 그들의 원신이 해탈해 나왔다. 해탈해 나오는 이유는 아직도 점화를 받을 인연이 있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며 그 사람 앞에서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여기에서 언급한 ‘가사’는 몸은 죽어도 생명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이다. 즉, 필요할 때면 여전히 인간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는 그런 뜻이다.)

나중에 효아는 여 도사와 주동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서 태행산(太行山) 밀림 속에 들어가 무예를 연마했다. 악 원수의 당부를 잊지 않기 위해 그녀는 돌을 하나 찾아서 악 원수의 두상을 조각했다. 나중에 그곳에서 세상 밖의 몇몇 고인들을 만났는데, 그중 일부는 무술에 뛰어나고 일부는 내수(內修)에 뛰어났다.

원래 그녀의 첫 번째 생각은 무공을 배워 배신자를 제거하고 양홍옥(梁紅玉 역주: 남송 시기 금나라 침략에 맞서 싸운 여자 영웅)과 같은 여자 영웅이 되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남송이란 환경에서는 유능한 사람들이 오히려 희생 대상임을 발견했다. 동시에 내수공(內修功)을 함께 수련하면서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더 깊은 견해를 갖게 되었고, 세상 모든 것의 원인과 표현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 상태는 점점 더 활달해졌다.

그녀가 악가 창술과 다른 무예 및 내수 공법을 연마해 모두 출신입화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녀는 이것들이 출신입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행방면에 큰 격차가 있음을 느꼈다. 생명 경지의 향상은 여전히 최고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 없이는 자신의 깨달음만으로 더 높은 경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바로 이 때, 어느 날 그녀는 그녀가 조각한 악비 두상의 눈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가부좌를 하고 마음을 진정시켰으며 가장 높은 존경심으로 대했다.

그렇게 입정(入定)에 들어선 그녀는 악 원수를 보았다. 형사은 여전히 악비와 같은 모습인데 입고 있는 옷은 달라서 극히 높은 경지의 천신(天神)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적지 않게 놀랐다. 오직 악비의 목소리만 들렸다.

“사실 너와 나 사이의 인연은 가장 근본적으로 말하면 천상에 있다. 너는 그 한 층 천체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나를 따라 함께 내려오겠다고 발원했다. 우리는 인간세상에서 아주 많은 역할을 연기했다. 인간세상에서 나의 사부 주동이 지난번에 언급한 비장한 인물은 모두 내가 연기한 것이다. 이 인물들을 연기한 것은 사실 인간세상의 문화를 부단히 다지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는 모두 하나의 목적 즉, 때가 되어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대법을 전하기 위한 길을 닦는 것이다. 만약 그때에 사람들이 충간(忠奸 충신과 간신)과 선악(善惡)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모두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때때로 비극적이며 때로는 평범한 경험을 연기한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이 모두 바로잡힐 것이다. 그럼 예전 장부와 새 장부를 함께 결산하게 되는데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럼 당신께서 언제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될 수 있는 대법을 전하기 시작할 것입니까?” 효아가 궁금해하며 물었.

“내가 지난번에 말했지 않은가. 그 때는 한 오랑캐의 학설이 중화에 널리 퍼져 이곳 생령들이 도탄에 빠진 후 사상에 진공(眞空)이 있을 것이다. 삼국연의 및 양가장과 악비 정충(精忠)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다시 언급되고 난 얼마 후일 것이다.” 악 원수가 대답했다.

효아는 “그럼 당신께선 탕음에 다시 돌아오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너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악 원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효아는 그 말을 듣고 내키지 않아 하며 아이처럼 순박한 성질이 나왔다.

“그래도 제 눈으로 직접 원수님을 뵈어야 합니다!”

악비는 웃으며 말했다.

“그때 너는 ‘큰 상자(역주: TV)’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어쨌든, 내가 한말을 기억하거라. 부친을 도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잘 이끌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한때 아버지의 친척이었으니까! 절대 그들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네 성격과 인연 때문에 너는 많은 생명과 접촉하게 될 것인데 너는 그들을 잘 이끌어 그들에게 다시 태어날 희망을 주어야 한다.”

효아는 이미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는데 다시 눈물을 닦았을 때 악 원수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녀는 그 생을 마칠 때까지 평생 태행산에서 수행했다. 이후의 발전은 악 원수가 말한 대로다. 원나라 시기 몽골군의 정벌로 서방이 동방을 알게 되었고 동서 문화의 교류가 날로 번창했다. ‘마르코 폴로 여행기’는 바로 이 시기의 산물이다.

명나라 시대에도 서학이 점차 동쪽으로 전해져왔다. 청나라 때 강희제는 서양 문화를 공부하여 중국 문화의 단점을 보완하였고 나중에는 유럽의 러시아와 여러 차례 싸웠으며 ‘네르친스크 조약’에 서명했다. 건륭제 시기 대영 제국에서 사절을 보내 통상을 요청했지만 황제는 거절했다. 이후에 중화민족은 중국 공산당이 70 년 넘게 나라를 훔친 것을 포함하여 170년 이상의 고통을 겪었다.

금생에 서방에서 유래한 마르크스-레닌주의란 사악한 교리가 중화대지를 황폐화시키고 중화 자손들의 생령을 도탄에 빠뜨렸다.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시들어 갈 때 신(神)은 전통문화를 부활하도록 배치했다. 사람들은 곡예(曲藝)와 소설에서 삼국연의, 양가장, 악비전 등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에 오래 전부터 누적되어 왔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다시 깨어났다. 1992년 파룬궁 창시인이 중국 동북의 장춘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기 시작했다.

효아는 금생에 1998년 법을 얻었다. 정말로 그녀는 탕음에서 환생하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환생했다. 그녀는 금생에서 여자로 태어났지만 역시 의협심이 강했다. 책과 TV(연공과 설법을 하는 비디오와 CD-ROM)에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있는 지역의 수련자들 및 그녀와 인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

후기: 이 글을 쓸 때 첫 글자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글자를 쓸 때까지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악비로 전세(轉世)하셨을 때 우리를 위해 다져주신 ‘충’의 내함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금생에 기회가 무르익자 나는 당시 악비가 진회 등에게 재소환 되면 생사의 대겁난에 직면할 것을 알면서도 왜 의연히 돌아왔는지 원인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전통문화 속에서 ‘충’이란 내함을 아주 많은 방면에서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는 바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