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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감상】 백거이 관예맥(觀刈麥)-보리 베기를 보며

글/ 문사격(文思格)

【정견망】

관예맥(觀刈麥) 백거이

田家少閑月(전가소한월) 五月人倍忙(오월인배망)
夜來南風起(야래남풍기) 小麥覆隴黃(소맥복롱황)
婦姑荷簞食(부고하단사) 童稚攜壺漿(동치휴호장)
相隨餉田去(상수향전거) 丁壯在南岡(정장재남강)
足蒸暑土氣(족증서토기) 背灼炎天光(배작염천광)
力盡不知熱(역진부지열) 但惜夏日長(단석하일장)
復有貧婦人(부유빈부인) 抱子在其旁(포자재기방)
右手秉遺穗(우수병유수) 左臂懸敝筐(좌비현폐광)
聽其相顧言(청기상고언) 聞者爲悲傷(문자위비상)
家田輸稅盡(가전수세진) 拾此充饑腸(습차충기장)
今我何功德(금아하공덕) 曾不事農桑(증불사농상)
吏祿三百石(이록삼백석) 歲晏有餘糧(세안유여량)
念此私自愧(염차사자괴) 盡日不能忘(진일불능망)

【해석】

농부 집에 한가할 달 적다지만 오월이 되니 곱으로 바빠지네.
밤사이 남풍이 불어와 밭두렁엔 보리가 누렇게 덮였네.
아낙네들 광주리에 밥을 이고 아이들은 국물 담은 항아리 들고
줄지어 밭으로 참을 나르며 장정들은 남쪽 언덕에서 일을 한다네.
두 발은 흙 열기에 찌듯이 익고 작렬하는 더위에 등짝은 타건만
일에 몰두해 더운 줄도 모르고 긴 여름 해를 아쉬워하며 일을 하누나.
또 가난한 아낙들은 어린아이 품에 안고 그 옆에 서서는
오른손은 떨어진 이삭 줍고 왼 어깨엔 떨어진 광주리를 걸었네.
그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 들으니 듣는 사람의 가슴이 아프구나.
농사 지어 거둔 것 세금으로 다 뺏기고 이렇게 이삭 주워 주린 배를 채운다네.
나는 금생에 무슨 공덕 있기에 밭농사며 양잠도 하지 않으며
삼백 석 녹 받는 관리가 되어 연말에도 곡식이 남아 있는가?
이 일을 생각하면 스스로 부끄러워 하루 종일 잊을 수 없구나.

【작가 소개】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자가 낙천(樂天)으로 성당(盛唐)의 뒤를 이은 유명한 대시인이다. 그의 시는 시어가 통속적이고 쉬우면서도 유창해서 소위 원백체(元白體)라 불리는 독자적인 풍격을 형성했다.

【자구 해석】

이 시는 원화(元和) 3년(807년) 백거이가 섬서(陝西) 주지현(周至縣)의 현위(縣尉)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그의 초기 풍유시(諷喻詩)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부고(婦姑):여기서는 일반적인 부녀(婦女)를 가리킨다.

하(荷):메거나 짊어진다는 의미

단사(簞食): 대나무 광주리에 담은 밥

동치(童稚):어린 아이 또는 아동

호장(壺漿): 병에 담은 진한 음료수

향(餉): 음식을 대접하는 것

정장(丁壯):청장년 남성

병(秉):잡다, 손에 쥐다

이록(吏祿):관리가 받는 봉록(奉祿)

석(石):곡식을 재는 단위로 10말에 해당

세안(歲晏):연말

【언외의 뜻】

사용한 시어(詩語)나 구조는 물론이고 내용과 층차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아주 얕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뜻이 너무 분명해서 얼핏 평범하게 보인다. 하지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당시(唐詩)의 명작으로 손꼽히며 후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주요 원인은 바로 백성들에 대한 시인의 깊은 동정과 자선(慈善)의 마음 때문이다. 바로 이 마음이 시대와 시공을 초월해 독자들의 심령에 울림을 주고 공명(共鳴)시킨 것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었으니 수확을 해야 하지만 땅에 떨어진 이삭들은 썩어버린다. 건장한 남자들은 모두 남쪽 언덕에 있는 보리밭에서 힘쓰는 작업을 하고 아낙과 아이들까지 모두 투입되어 음식을 나른다. 땅은 찌는 듯이 덥고 하늘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비춘다. 남자들은 비록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뜨거운 줄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낮이 긴 여름에 열심히 일을 해 빨리 보리를 수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겪는 고생과 일반인들과는 다른 이런 감정만으로도 이미 감동을 주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찌는 듯한 여름 더위에 뜻밖에도 아이를 안은 가난한 한 아낙이 농부들의 뒤를 따르며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다. 헤어진 광주리에 하나씩 주워 담아 집에 가져가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다. 관아에 낼 세금 때문에 경작지마저 다 팔아버린 아낙의 집에는 이미 수확할 땅이며 보리가 없다. 그러니 이렇게 뜨거운 뙤약볕 아래 오랫동안 이삭을 줍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오늘 이삭을 줍는 가난한 아낙도 아마 어제는 농사지을 땅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보리를 수확하는 농부들 역시 세금이 과다하면 나중에 이삭 줍는 아낙처럼 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인의 마음은 이곳에서 강렬한 진감(震撼)을 받는다. 그러면서 또 자신을 반성해보니 자책과 함께 부끄러운 심정이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이 시가 세상에 알려진 후 비록 시인이 이미 후인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었고, 지금까지 이미 천년이 넘었지만 사실 얼마나 많은 관리들이 시인처럼 백성들의 고생에 대해 친근하게 동정하거나 심지어 백성들의 가난에 대해 자책하고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권력과 돈을 쥔 자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란 확실히 어려운 것이다. 서양 속담에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인의 자비로운 마음이 붓으로 전해져 자기 마음속의 진감과 반성을 독자들에게 전하는데, 이미 마음속에 선념(善念)이 아주 적어져 고목나무처럼 마비되어 버린 오늘날 사람들에게조차 맹렬한 일격을 가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