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우(林雨)
【정견망】
한 수의 좋은 시(詩)나 사(詞)는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 한 곡의 노래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좋은 시는 호탕한 기개나 청정하고 그윽한 운치 내지는 선의(禪意)로 충만하다. 가장 아름다운 언어의 한 형식인 시사(詩詞)의 아름다움은 실로 말로는 전부 형용할 수 없다.
당나라 때의 대시인 왕유(王維)가 지은 《조명간(鳥鳴澗)》을 보자.
골짜기에서 새가 울다(鳥鳴澗)
사람이 한가하니 계수나무 꽃 떨어지는데
고요한 밤이 되니 봄 산이 텅 비었네
달이 뜨니 산새가 놀랐는지
봄 골짜기 속에서 수시로 우는구나
人閑桂花落
夜靜春山空
月出驚山鳥
時鳴春澗中
이 시는 불과 20글자에 불과하지만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다. 왕유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림은 정지되고 고정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생생한 일화이자 경지(境界)이다.
“사람이 한가하니 계수나무 꽃 떨어지는데(人閑桂花落)”
사람이 한가할 때면 마땅히 마음이 조용해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한가함은 단지 할 일이 없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한가한 것으로 진정한 청한(淸閑 깨끗한 한적함)이다. 하나의 움직임과 하나의 고요함이 세간에 드러나니 움직임은 고요한 마음을 더욱 깨끗하게 부각시킨다. 청정한 마음만이 비로소 선의(禪意)가 가득할 수 있다. 첫 구절 5글자에 이미 시경의 아름다움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고요한 밤이 되니 봄 산이 텅 비었네(夜靜春山空)”
수련계에서는 “불가는 공(空)을 숭상하고 도가는 무(無)를 숭상한다”는 말이 있다. 왕유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그에게 있어 소위 고요한 밤(夜靜)이란 마음이 조용해져서 일체가 다 공(空)이 된 것으로 마음속에 아무런 때도 없고 걸림도 없는 것이 진짜 공(眞空)임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달이 뜨니 산새가 놀랐는지 봄 골짜기 속에서 수시로 우는구나(月出驚山鳥,時鳴春澗中)”,
만약 그냥 고요함만 있다면 이것은 죽은 적막에 불과하다. 마침 밝은 달이 가지 끝에 걸리며 어두운 밤을 비출 때 산 속의 새를 놀라게 했다. 한두 마디 새 울음소리가 한밤의 그윽한 고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오직 마음속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만이 시경(詩境)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다. 청량(淸凉)한 세계를 불가에서는 소위 공(空)이라 하는데 단순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내려놓고 달관한 것을 말한다. 속세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경지가 저절로 있는 것이다. 왕유의 경지가 어떠한지 한 수의 시를 통해 유감없이 드러냈다.
어쩌면 신선(神仙)세계야말로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깨끗할 것이다. 신(神)이 전한 문화로서의 시사(詩詞)는 어쩌면 신의 경지를 기록하기 위해 탄생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왕유의 이 시는 바로 자신의 청량한 세계를 성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시경(詩境)의 아름다움은 신계(神界)의 아름다움이니 인류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도연명(陶淵明)이 말한 것처럼 “이곳에 진정한 뜻이 있으니 말로 표현하려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此中有真意,欲辨已忘言)”와 같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