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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륵불상 진장집(珍藏集) (하편)

【정견뉴스】

미륵보살상[공초제(孔招俤) 제작] 북제(北齊) 하청(河清) 3년(564) 금동 높이 27.8cm 산동 박흥(博興) 용화사(龍華寺) 유지(遺址) 출토

미륵보살교각좌상(彌勒菩薩交腳坐像) 북제(北齊) 하북(河北)박물관 소장
미륵보살교각상 북주(北周)~수대(隋代) 황화석(黃花石) 서안박물관(西安博物館) 소장
교각미륵보살상 높이 13m, 운강 제13굴

불오존조상비(佛五尊造像碑) 중 미륵보살교각상 북제(北齊) 진단(震旦) 박물관 소장
불칠존조상비(佛七尊造像碑) 중 미륵보살의좌상(彌勒菩薩倚坐像) 북제 진단 박물관 소장
미륵보살상 북주(北周)~ 수대(隋代) 섬서(陝西) 약왕산(藥王山) 석굴
사유보살반가상(思惟菩薩半跏像) 북제(北齊 550-577) 대리석 높이 33cm 미국 워싱턴DC 프리어 미술관 소장

북제(北齊) 시기에는 오른손 손가락을 뺨에 대고 좌측 다리를 아래로 한 채 반가부좌 자세를 취한 미륵보살상이 아주 성행했다. 미륵이 도솔천 내원에서 하생(下生)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긴 것을 의미한다. 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반가부좌 자세로 사유하는 조상)이 보여주는 고요하고 편안한 표정과 청정한 법희(法喜)의 미소는 미륵정토(彌勒淨土)의 수승(殊勝)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반가사유보살상(半跏思惟菩薩像) 북제 대리석 높이 57.8cm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
북제 사유보살상

반가사유보살상 북제 천보(天保) 8년(557) 하북 창주(滄州) 박물관 소장

발원문: 위대한 제(齊)나라 천보 8년 정해(丁亥)년 5월 보름에 비구 승경(僧慶)이 공경하게 황제폐하, 태황태후, 주군(州郡)의 영장(令長) 및 스승님과 부모님을 위해 한 구(區)의 미륵상을 만드나이다. 승경이 불상을 만든 복으로 널리 법계의 유형(有形)과 일체 중생과 지옥아귀들이 모두 해탈하게 하소서. …중략…. 창주(滄州) 낙릉군(樂陵郡) 양신현(陽信縣) 마자□사(馬子□寺) 비구 승경이 삼가 공양하나이다.

미륵보살은 중생을 불쌍히 여겨 산림 속에서 조용히 수행하며 깊은 선정을 구하거나 열반에 들어가 해탈을 구하길 원하지 않고 사바세계에서 성불해 중생을 제도할 것을 발원하셨다. 이는 미륵보살의 가장 자비로운 원력(願力)이다.

반가사유보살상(半跏思惟菩薩像) 한국 7세기 금동상 높이 27.5cm 한국은 예부터 미륵신앙이 성행했고 불제자(佛弟子)들이 도솔내원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했다.

반가사유보살상 백제 7세기 금동상 높이 93.5cm
반가사유보살상 한국 금동상 7세기 높이 83.2cm

미륵법문은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크게 성행했으며 또한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전해졌다. 일찍이 백제의 국왕이 미륵불상을 일본 천황가에 전해주었다. 일본에서는 나라(奈良)와 헤이안(平安) 시대(710~1185년)에 미륵사찰의 건설이 유행했다.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상당히 많은 반가사유미륵보살상이 남겨지게 되었고 또 이들 미륵보살상 대부분이 이들 나라의 국보(國寶)로 손꼽힌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목조(木彫) 7세기 일본 국보 제1호 교토 고류지(廣隆寺) 소장

쇼토쿠(聖德) 태자가 신라계의 대신 진하승(秦河勝 하다노 가와가츠)에게 이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하사하자 진하승이 이 불상을 본존(本尊)으로 모시기 위해 고류지를 창건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아스카(飛鳥) 시대 목조(木造) 높이 126.1cm 일본 나라 주구지(中宮寺)

이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아름다운 조형 및 준수한 얼굴과 우아하고 매혹적인 미소, 청순한 기질 때문에 아스카시대(650~710년) 최고작품으로 꼽힌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 고대 불상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아스카 시대 목조 높이 90cm 일본 고류지(廣隆寺)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서는 선(善)을 행하고 귀의하며 불상을 만들거나 불호를 외치는 수행법을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수세기 동안 유행했던 미륵정토신앙이며 북위(北魏)와 수당(隋唐) 시기 최고조에 달했고 당나라 중기이후 점차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으로 대체되었다.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 북위(北魏) 태화(太和) 원년(477년) 금동 전체 높이 140cm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발원문: 태화 원년……아래 변경지역 중생들이 미륵상 한 구를 만듭니다.

미륵불상교각좌상(彌勒佛交腳坐像) 북위 황흥(皇興) 5년(471년) 석상 높이 87cm 섬서성 서안(西安) 비림(碑林)박물관 소장
류보생(劉保生)부부가 만든 미륵불삼존상(彌勒佛三尊像) 북위(北魏) 경명(景明) 시기(500~503년) 석상 높이 108cm 섬서성 서안 비림박물관
미륵불상[우유(牛猷) 제작] 북위 정광(正光) 5년(524년) 금동 높이 76.8cm 하북 정정현正定縣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발원문: 대위 정광 5년(大魏正光五年)……미륵불 한 구를 조성하다.

미륵불 및 협시상(脅侍像) 북제 천보(天保) 3년(552년) 대리석 높이 70.9cm 일본 오카야마(岡山) 구라시키(倉敷) 오하라(大原)미술관 소장

발원문: 대제(大齊) 천보 3년 7월 15일, 조원종(趙元宗)・조란흥(趙蘭興)・조업흥(趙業興)이 미륵상 한 구를 만들어 널리 일체 중생과 복을 함께 하길 바랍니다.

불조상비(佛造像碑) 동위(東魏) 무정(武定) 2년(534년) 석회암 높이 111cm 대만 중대(中台)세계박물관 소장
미륵불의좌상(彌勒佛倚坐像) 당나라 상원(上元) 2년(675년) 석회암 높이 70cm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

발원문: 大唐上元二年……敬彌勒一□……

미륵불의좌상 무측천 장안 (長安) 3년(703년) 석회암 높이 68cm 원래 서안 보경사(寶慶寺) 칠보대(七寶臺)에 있었다가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

발원문: 長安三年……姚元之……發願所作之彌勒造像

미륵불의좌상[염종(閻宗) 제작] 당나라 신룡(神龍) 원년(705년) 석회암 전체 높이 82.3cm 미국 시카고 미술연구소 소장
미륵불의좌상 당나라 시대 사천(四川) 석상

미륵이 하생할 때 성불하는 법상(法相)은 석존(釋尊)과 흡사하고 상호(相好)가 장엄하며 가사를 걸치는데, 자세는 대부분 두 다리를 수직으로 늘어뜨리고 손으로는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미륵불의좌상 당대(唐代) 용문석굴
미륵불의좌상 수대(隋代) 금동상
막고굴 제130굴 남대상(南大像) 성당시기(712~756년)
막고굴 제130굴 북대상(北大像)

낙산(樂山) 미륵대불(彌勒大佛) 높이 71m 당나라 현종 개원(開元) 초기 713년 해통(海通)선사가 조성해 803년에 완성

경건하게 앉아 있는 미륵대불의 모습이 장엄하고 상서로워 보는 이들에게 경외감을 준다.

병령사(炳靈寺) 석굴 제171감 미륵대불 당대(唐代) 바위에 찰흙 높이 27m 감숙(甘肅) 영정(永靖)
소흥(紹興) 가암미륵불(柯岩彌勒佛) 수대(隋代) 높이 11.3m 절강 소흥
미륵상 서하(西夏 1032-1227년) 진흙 높이 13.5cm 내몽골 흑수성(黑水城) 몽골박물관 소장

오대(五代)이후 강소와 절강 일대 사찰 중에 활짝 웃는 얼굴에 배가 불룩 나온 미륵불상이 출현했다. ‘대두(大肚 배가 나왔다는 의미)미륵’이 바로 포대화상인데 본래 이름은 계차(契此)화상이며 별호가 장정자(長汀子)다. 포대화상은 원래 절강 봉화(奉化)사람으로 손에 석장(錫杖)을 들고 포대를 메고 다녔다. 세상을 두루 다니며 탁발로 얻은 공양물들을 모두 포대 속에 보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포대화상’이라 불렀다.

미륵불상 송대(宋代) 석상 항주(杭州) 서호 비래봉(飛來峰)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따르면 포대화상은 몸이 뚱뚱했고 가슴과 배를 드러냈다. 근기에 따라 설법하고 행동이 자유로웠으며 길흉이나 맑고 흐린 날씨를 미리 알았다. 오대 양(梁)나라 정명(貞明) 3년(917년) 자신이 갈 때가 되었음을 알고 악림사(岳林寺) 옆 큰 바위에 올라가 단정히 앉아 게송을 읊은 후 편안히 원적했다. 이때 그가 남긴 게송은 바로 다음과 같다.

미륵 진짜 미륵이
천백 억으로 몸을 나누어
늘 세인들에게 보이지만
세인은 알지 못하누나!

彌勒真彌勒
分身千百億
時時示世人
世人自不識

미륵불상 원대(元代) 석조 항주 서호 비래봉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계차화상을 미륵불의 화신(化身)으로 여겼고 송대(宋代) 이후에는 일반적인 불교 사찰에서도 늘 크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미륵상(彌勒像)으로 삼아 천왕전(天王殿) 정중앙에 모시고 사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게 했다.

미륵불상 원대(元代) 화강암 높이 0.9m 폭 0.89m 복건(福建) 서암산(瑞岩山)
미륵불 명대(明代) 구리 높이 75.6cm
미륵불상 명대 대족(大足) 석각(石刻)
미륵불좌상 명대(明代) 철 높이 80cm 대만 대북 역사박물관
미륵불(彌勒佛) 청대(淸代) 금정표(金廷標) 백묘(白描) 대북 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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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독자들이 미륵불 몸에 18명의 아이가 있다는 전설과 거기에 담긴 의미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전설은 장래 법(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할 분의 성이 ‘이(李)’씨 임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18명의 아이는 ‘十八子’가 되는데 이를 합치면 ‘李’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석가모니부처님이 당시에 법을 전할 때에도 인류의 말법・말겁시기에 사람을 제도할 부처님이 미륵불의 형상으로 사람을 제도한다고 한 적이 있다.

또 고대부터 전해져오는 《추배도(推背圖)》, 《소병가(燒餅歌)》, 《매화시(梅花詩)》를 통해 지금 시기가 바로 말법시기이며 사람을 제도할 불법(佛法)이 널리 전해질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유명한 예언 《격암유록(格庵遺錄)》에서는 “성인(聖人)은 어떠한가? 木子의 성씨로 토끼띠에 속하며 4월에 38선 이북 삼신산(三神山 백두산) 아래에서 출생한다.”고 말했다. 이 성인이 바로 천상 왕 중의 왕(王中之王)인 법륜성왕(法輪聖王)이며 이번에 인간 세상에 내려오실 때의 칭호가 바로 미륵불이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세기(諸世紀)》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히 예언했다.

그 동방의 인물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아펜디노 산맥을 넘어 프랑스까지 올 것이며
그는 장차 하늘과 바다와 눈을 넘어
모든 사람이 장차 그의 지팡이에 의해 건드려질 것이다

The Easterner will leave his seat,
To pass the Apennine mountains to see Gaul:
He will transpire the sky, the waters and the snow,
And everyone will be struck with his rod.

이 시는 바로 파룬궁(法輪功)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중국에서 대법의 전파를 마친 후 서양으로 건너와 서양 여러 나라에서 법을 전해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질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또 “진짜 부처가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함에 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정견망(正見網)에 이런 한 가지 일화가 나온다.

1990년대의 일이다. 당시 숙화(淑花)의 부친과 고모부는 모두 80대 노인들이었다. 부친은 원래 화공이셨는데 음양(陰陽)의 이치에 통달하셨고 고모부는 부친보다 3살이 위였다. 1996년 당시 이미 83세였던 부친은 하루 종일 “이론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당연히 오실 때가 되었는데 어째서 아직 오시지 않는 걸까?”라며 중얼거렸다.

부친은 임종 전 자식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법륜(法輪)이 돌고 진짜 부처님이 나타나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겠지만 때가 되면 너희들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숙화의 고모부는 당시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임에도 누가 기공을 전한다는 말만 들으면 곧바로 달려가서 지켜보곤 했다. 하지만 돌아와서는 “이건 진짜가 아니야, 진짜 부처님이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하신다면 돈을 요구하지 않으시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이듬해 파룬궁이 그들의 고향에서 전해졌을 때 숙화는 파룬궁을 배웠다. 이에 곧장 고모부를 찾아가 알려주었다.“방금 제가 파룬궁을 배웠는데 돈을 요구하지 않고 모두들 아주 좋다고 말해요.”

그러자 고모부는 ‘파룬(法輪)’이란 두 글자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니까 나도 가서 배워야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