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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이야기: 삼세(三世) 부처님 앞에 발자국을 남기다

글/ 해안(海岸)

【정견망】

대략 5년 전 끊임없는 수행 중에서 나는 2천여 년 전 오래 전 나의 전세(前世)를 보았다. 이것은 또한 왜 내가 서남(西南) 지역에서 몇 년을 살게 되었는지 인과를 알게 해주었다. 동시에 불가사의한 점은 전세의 아들이 지금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비서인 점이다. 그는 아직 혜안(慧眼)을 잃지 않아 금생에 경건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지만 다만 믿기만 하고 닦지는 않으며 또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와 함께 밥을 먹고 나서 산책을 좋아한다. 나는 또 그에게 일부 불가 수련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사람이 정말로 각종 욕망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이건 사람의 본성인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경에 모세의 10계가 있지 않은가? 단순히 신을 믿기만 해서는 안 되고 신의 가르침에 따라서 해야만 자연히 일체 악을 버릴 수 있고 결국에 가서는 일체 사람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이든 불가의 불국세계든, 모두 지극히 성결(聖潔)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더럽거나 심지어 사악한 사상과 칠정육욕을 지니고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만약 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윤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전생이나 인과에 대해서는 그에게 투철히 말한 적이 없다.)

말하자면 2천여 년 전 어느 한 세(世)에 나는 귀주(貴州)의 깊은 산속에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승단(僧團)에 생활했다. 그들은 여전히 불조(佛祖)의 가르침에 따르고 있었고 노란 승복을 걸쳤으며 맨발로 다니면서 걸식하고 수행했다. 우리 승단에서 도행(道行)이 고심(高深)했던 대사형은 뭇 사람들의 희망으로 기대가 승단에서 가장 깊었다. 나는 승단에서 키가 가장 컸고 힘도 가장 세었다.

어느 날 내가 대사형(大師兄)과 행각하며 산림을 지나가다 2, 3명의 산적을 만났다. 도적들은 칼을 목에 대고 우리를 위협했다. 그러나 대사형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출가인이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머리를 당신에게 주겠소.”

말을 하면서 암암리에 법력(法力)을 운용했는데 그 순간 도적은 자기 머리를 잘랐다. (도적은 손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를 자기 손에 받쳐 들었다. 그렇게 되자 몇 명 나머지 강도들은 벌벌 떨었다. 그들은 엄마야! 하면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다.

사실 대사형은 단지 장안법(障眼法 일종의 속임수)으로 겁을 주어 그들에게 교훈을 준 것일 뿐이었다.

나중에 우리 승단에서는 산중턱에 삼세(三世) 불상(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 미래불인 미륵불의 불상)을 세우려 했다. 당시 운남이나 귀주 산악 지역(雲貴山區)은 가난하고 기술이 낙후되어 있었다. 우리는 암벽에 조각을 한 게 아니라 바위를 쌓아 부처님의 신체로 삼고 머리 부분은 바위를 조금 깎아 사람의 얼굴 윤곽처럼 만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함께 손을 써서 산 아래서 산 중턱으로 바위를 옮겼다. 그중 두껍고 긴 큰 석판이 있었는데 3,4명의 사제들이 한 사람이 한 귀퉁이씩 들고 온통 얼굴에 땀투성이가 되어 힘들게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내가 말했다.

“자네들은 좀 쉬게. 내가 할게.”

그러자 그들은 한쪽에 기대어 쉬었고 나 혼자서 가볍게 이 바위를 들어 맨발로 산길을 따라 가볍게 날아 산허리에 불상을 만들 곳에 옮겨놓았다. 두 발로 산길을 따라 간 것이므로 사제들이 내가 길을 가는 것처럼 여겼지만 사실 나이 두 발은 전혀 지면에 닿지 않았다. 신통을 이용해 공중에 뜬 채 간 것이다.

사실 이런 신통은 별게 아닌데 중화민국 시기 유명한 고승 허운(虛雲)화상도 비가 내리는 날에 발이 진흙에 젖지 않고 길을 걸은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제자들이 여러 차례 이런 현상을 발견하고 놀라워했다.

삼세불상이 만들어진 후 나는 삼세불 앞에 발자국을 남겨 이것으로 큰 서원을 발하고 싶었다. ‘저는 앞으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행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왼발을 뻗은 후 암암리에 신통(神通)을 운용해 한번 디디자 발자국은 깊이 삼존 불상 앞 암석 속에 박혔다. 맨발인 좌측 발 전체가 암석 속으로 약 3치 정도 깊이로 박혔다. 밟혀서 생겨나온 발자국은 내 발 면적의 대략 3배 정도 되었다. 온 신체를 아래쪽으로 향해 신통력을 썼으므로 오른쪽 발도 암석에 빠졌는데 다만 오른쪽 앞 발바닥은 바위에 좀 깊이 들어갔고 뒤꿈치 부위는 좀 얕았다.

그때로부터 순식간에 2천여 년이 흘렀지만 내가 당시 남겨놓았던 발자국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발자국은 몇 년 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고 중국내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었다.[바이두에서 귀주월량산대각인(贵州月亮山大脚印)을 검색해 볼 것]

당초 내가 디뎠던 발자국과 신문에 보도된 크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사진 속 발자국보다는 훨씬 깊었다. 암석이 2천년간 풍화를 거치며 발자국의 깊이가 많이 얕아진 것으로 오른쪽 발자국 앞 발바닥도 아직도 남아 있다.

다음 사진을 참조할 것. https://www.sohu.com/a/118229332_157537.

하지만 우리 승단이 고생스럽게 깎은 삼세불상은 일찍이 종적이 없어졌다. 운남 귀주 산악 지역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 최근 수십 년 동안에도 늘 지진 보도가 있었다. 2천 년이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을지 모른다.

때문에 돌로 쌓은 삼세불상은 흩어져서 흔적도 없어졌다. 그러나 내가 당초 내가 마음을 써서 고생스럽게 만든 삼세불상의 모습은 깊은 기억 속에 여전히 뚜렷하다. 2천여 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무엇 때문에 이같이 또렷하게 귀주 심산 속 삼세불상을 기억하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당초 삼세불 앞에 발자국을 남길 때 내가 큰 서원을 발했기 때문이다. 아마 바로 이 생생세세 내 마음속에 있던 부처가 금생에 내가 사부님을 만나도록 인도했을지 모른다.

초기에 수련하면서 나는 늘 전생에 내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약 1년 전부터는 그다지 전생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늘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전법륜》)

그렇다면 나는 생생세세에 한 세는 사람이지만 또 다른 세에는 동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세(世)가 진정한 자신이란 말인가? 사실 매 한 세 모두 꿈이며 한바탕의 꿈은 모두 공허한 것이다. 이런 것에 집착해선 뭐 하겠는가?

가부좌 입정(入定) 중에 전세(前世)의 영상이 얼마나 많이 스쳐갔는지 모른다. 한번은 승려, 한번은 여인, 또 한 번은 조정 관리였다. 최근 반년 동안 나는 이런 교란을 배제하기 위해 매번 가부좌 전에 일념을 내보낸다.

“매 한 세는 모두 한차례 꿈이며, 매 차례 꿈은 나의 입정을 교란할 수 없다. 특히 현세(現世) 이 장이 바로 꿈이다.”

그 결과 나는 더 쉽사리 맑고 투명하게 입정(入靜)하게 되었고 그 후 다시 입정(入定)에 든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7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