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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생: 산서 약재상이 백의암을 짓다

글/ 덕혜(德惠)

【정견망】

안휘(安徽) 박주(亳州) 백의암(白衣庵)은 또한 백의율원(白衣律院)이라고도 불리는 중국의 저명한 사찰이다. 중국 전통건축은 흔히 남향을 중시하는데 백의암 산문은 오히려 서북방향인 산서(山西)쪽을 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것은 어느 스님이 전세(轉世)하여 산서 상인이 되어 전생의 소원을 완성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박주 백의함은 송대(宋代)부터 있었다. 명나라 말기에 불타버렸고 청나라 순치제 6년(1649년)에 중건되었다. 처음에는 겨우 단칸 초가였으나 나중에 덕승(德升)화상이 박주에 놀러왔다가 뜻을 세워 강북에 매우 큰 사찰을 세우기로 했다. 수십 년간 동냥을 하고 쓸 것을 아껴 대량의 토지를 매입하고 절을 지을 물자를 구매했다. 하지만 막 공사를 일으키려 할 때 덕승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때가 건륭 5년(1740년)이었다.

20년 후인 건륭 25년 스무 살 산서 출신의 상인이 박주에 약재를 팔러왔다가 우연히 백의암에 놀러가게 되었다. 상인의 이름은 동계선(董繼先)이었다. 젊을 때 과거를 보았으나 애석하게 떨어진 후 상업에 뜻을 두어 큰돈을 벌었다.

동계선은 먼저 백의암에서 불전(佛殿) 및 산처럼 쌓인 건축자재를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낯이 익어서 마치 전에 본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의 전세(前世)의 기억을 깨달았는데 자기가 바로 덕승화상이었다. 과거 덕승화상은 계행(戒行)이 아주 깊었는데 원적(圓寂)할 때 사원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내생에 다시 계속 완성하기로 맹세했다. 그가 전세에 베껴 쓴 불경과 간직했던 도첩(度牒)을 어디에 두었는지 다 찾을 수 있었고 꺼내 읽어보니 자기가 기억한 것과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회상한 그는 슬픔을 금하지 못하고 엎드려 통곡했다.

하지만 사찰 건설을 완성하려면 여전히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의견을 구했다. 뜻밖에 부모는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았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어려서 말을 배울 때 일찍이 박주 백의암이 어디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단다.”

부모님의지지 하에 동계선은 자금을 내어 백의암을 계속 짓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덕승화상이 생전에 계획한대로 건물을 완성했다. 그는 직접 대련을 썼고 자기의 환생에 대해 상세히 써서 전생의 소원을 완성했다. 이때부터 백의암의 산문은 서북쪽, 즉 산서방향을 향하게 하여 이 윤회이야기를 기념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동계선의 상황은 비교적 특수하여 특정한 장소에서 전생의 기억이 격발된 것이다. 이것 역시 생명이 윤회한다는 한 가지 확실한 예가 된다. 사실 중국 역사상 신기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중국문화를 인식하려면 반드시 무신론의 족쇄를 부수어야 한다.

자료출처:《동령소지(洞靈小志)》 등

역주: 동계선(董繼先)이란 이름에서 동(董)이 동(懂)과 발음이 같은 것을 고려하면 이름 자체가 ‘과거의 일을 이어받을 줄 안다’는 뜻이 된다. 즉, 이름 자체에도 깊은 내력이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6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