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방행(石方行)
【정견망】 향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고대 이집트부터 인도나 서양 문명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천 년간 향을 알았고 향을 태우는 역사가 있었다. 향에 대한 문화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다.
오랜 옛날에 사람들은 천지신명에게 제사 지낼 때 약간의 향냄새가 나는 식물을 불살라서 하늘과 신명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이것이 향을 태운 최초의 뜻이었다.
고대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실 때 어느 승려가 조는 일이 있었다. 다른 승려들은 이렇게 하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불경이라고 여겨 향냄새가 나는 나무를 가져와 가는 막대기 모양으로 만들어 그릇에 넣고 불을 붙였다. 그래서 졸던 승려가 정신이 들게 하는 동시에 벌레와 외부의 나쁜 것을 막는 작용을 했다.
중국 문명의 하(夏), 상(商)과 서주(西周) 시기에 향을 태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릴 때 위주로 했다. 나중에 한무제(漢武帝) 시기에 향을 피우는 범위가 점점 확대돼 일상 중에서도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했다. 심지어 부귀한 사람들 집이나 문인묵객(文人墨客)들은 일종 취미로 향을 피웠고 했으며 더 이상 제사와 신불(神佛)을 모시는 데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용도에 따라 향을 제작하는 원료도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현대인은 향을 태우는 의의와 용도에 대해 많은 사람은 천지에 대한 경의와 신불을 향해 일종의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느낀다. 사실 이것은 표면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향을 태우는 더 깊은 내포는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설법 중에 있다.
“향을 피우는 것 역시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현재 당신이 스님에게 왜 향을 피우는 가고 물으면 그는 부처를 공경한다고 말한다. 부처를 공경하는데 왜 향을 피우는가? 다른 어떤 것을 하면 안 되는가? 사실 향이 타서 나온 연기도 물질이다. 그러나 연기로 형성된 물질은 표면 물질뿐만이 아니며 연기도 다른 물질체가 있는데, 신불(神佛)은 이런 것들을 연화(演化)하여 제자들을 가지(加持)하는 데 쓴다.”(휴스턴 법회 설법)
고대에 사람들의 도덕 수준이 비교적 높아서 사람들은 천지신명에게 예를 올릴 때 모두 순정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당시 사용한 향은 모두 천연적인 목재나 다른 식물로 만든 것이었다. 이런 향은 게다가 제작자와 제사를 올리는 자의 마음이 순정하고 전반 과정에서 순정한 상태를 유지해 효과가 필연 좋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도덕 표준이 높은 시기에 사람들은 일심으로 수행하고 불가(佛家)든 도가(道家) 혹은 서양의 정교 방식이든 사람들은 향을 태워 천지신불과 주께 경의를 표했고 동시에 자기의 염력을 집중해 수행했다. 따라서 우주신명의 소통과 가지(加持)를 얻어 자신의 생명 경지와 상태를 제고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향을 태우며 대부분은 신불에게 속세의 개인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향을 올리는 본의와 배치된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고 향을 만드는 사람들도 대다수 돈을 벌기 위한 것이기에 많은 신자가 순정한 향으로 예를 올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하면 신불에 불경한 것이다. 또 한 가지 현재 상점에서는 원가절감을 위해 제작과정에 많은 화학물질, 심지어 독성물질(예: 인 등)을 첨가하는데 이런 화학약품은 연소한 후 연기 중에 방출하는 독성이 천연원료로 만든 향보다 훨씬 더 많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많은 사람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목적이 비록 불순하지만 필경 그는 신불과 천지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귀중한 선념이다. 우리가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향의 위해를 모를 때 그것으로 신불께 예를 올리면 이것은 큰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 위해성을 알고도 여전히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예를 들면 깨끗한 흰 밀가루로 만든 만두로 공양할 것인가, 아니면 먼지투성이 만두를 올릴 것인가? 우리는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경건하다고 말하는데 경건한 마음은 어떻게 존경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사용 향을 선택하는데 가능한 천연재료로 만든 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만일 신앙 있는 사람이 제작한 것이면 더욱 좋다. 진정 신앙 있는 사람은 제작과정에 마음이 순정할 뿐 아니라 만든 것도 바르고 선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광대한 대중이 천지에 제사 지내고 신불을 경배하는데 정념을 가지(加持)하는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향을 선택하는 과정에 한 가지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경제적 능력을 참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천연재료로 제작한 향은 원료가 화학제품보다 판매가격이 높다. 그러나 여러 가격대가 있을 것이니 자신에게 맞는 가격대에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찍이 향과 관련된 법을 찾는 경험을 쓰려 했다. 최근에 인연이 되어 나는 제향(制香) 공예를 좀 알게 됐고 향의 문화적 내포에 더 깊은 이해가 있게 됐다.
중국 고대에 제향은 일반적으로 수행인이나 신앙인이 했다. 이 과정은 마찬가지로 수행이며 일종 자신의 생명 경지를 제고하는 과정이다. 아래에 역사상 부자(父子) 두 사람이 향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창세주를 찾는 진실한 경험을 말해보겠다.
송태조 조광윤의 개국 초기, 그와 함께 후주 시기에 같은 조정에 관직으로 있던 사람은 조광윤이 진교역에서 황포(황제의 옷)를 입혀져 어쩔 수 없이 황제가 됐다고 생각했기에 “두 주군을 모실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관직을 떠나 은거했다. 은거할 때 도가의 고인 담진인(譚眞人)을 만났는데 담진인의 진심 어린 전수 하에 수년 후 그 조카와 같은 날 백일비승(白日飛昇)했다. 나중에 송태조 조광윤이 이 일을 알고 명을 내려 그 자리에 신선전(神仙殿)을 건립해 그들을 기념했다.
이 신선전이 세워진 지 백여 년 후, 인근 어느 산자락에 부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원래 대장장이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아들은 15세 정도에 이름은 벽우(碧宇)라 했고 부친은 운양(雲揚)이라 했다. 운양은 솜씨가 매우 좋아 인근에 이름이 나 있었다. 대장장이는 힘이 매우 강해야 하는데 운양도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그들 부자의 대장간은 제법 흥성했으나 나중에 어쩐 일인지 오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져 심지어 며칠 동안 한 명도 손님도 오지 않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에 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는데 부자 두 사람은 일찍 일어나 서로 마주 보고 약속이나 한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없는데 이런 날에 누가 쇠를 손보러 오겠는가. 그래서 두 사람은 화로를 불을 붙이고 차를 마시면서(산에서 채집해온 향기 있는 나뭇잎에 물을 탄 것) 노닥거렸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아들이 갑자기 대문 밖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더 이상은 아무 동정이 없었다.
벽우가 얼른 밖으로 달려 나가보니 대문 입구에 자기 나이 또래 되어 보이는 여자가 누워있는데 몸에는 포대를 두르고 있었고 입구에 뻣뻣하게 누워있었다. 그는 얼른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러 오라고 했고 두 부자는 여자를 들어 집안으로 데려갔다. 그때 날도 맑아졌는데 어쩐 일인지 여자가 걸어온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당시는 이런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여자를 실내로 들고 와서 운양은 방금 자기들이 마시던 찻잎을 달인 물을 입에 좀 부어 넣었다. 잠시 후 여자가 깨어났고 운양은 먹을 것을 좀 주었다. 여자는 다른 것은 먹지 않고 참깨와 콩 계통 음식만 먹었다.
벽우는 그녀가 먹고 있을 때 물어보았다. “처녀가 혼자서 큰 눈이 내리는데 집에 잘 있지 않고 뭘 하러 나왔소?” 여자는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온 것이 아니라 누가 절 여기로 보냈어요”하고는 또 기절했다.
운양의 대장간이 크지 않아 자는 곳과 쇠를 두드리는 곳이 나뉘어 있는데 여자는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나도 떠나지 않았다. 그들 두 부자는 쇠를 두드리는 방에 침상을 하나 만들어놓고 잠시 며칠간 머물게 했다.
여자는 잠을 잤다 하면 8일간 잤으며 깨어난 후 특별한 파란 콩을 먹고 싶다고 하며 벽우에게 말했다. “동쪽으로 가면 해변인데 문 앞에 두 그루의 큰 배나무가 있는 집에 가면 파란 콩이 있어요.” 당시 벽우는 ‘해변에 어떻게 과일나무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다음날 벽우는 약간의 마른 양식을 갖고 길을 떠났다. 겨울에는 눈이 매우 쌓여 걷기 힘들었지만 대장장이 출신인 그는 매우 건장하므로 많은 곤란을 극복해 마침내 해변에 닿았다. 큰 바다를 대면해 그는 멍해졌다. ‘망망한 해안에 어디서 배나무가 있는 집을 찾는단 말인가! 또 해변에 어떻게 나무가 자란단 말인가?’ 그가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어쩐지 그와 아버지가 처음에 그 여자를 들고 들어왔을 때 발자국을 보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그는 마음이 움직였다. ‘그녀가 어떤 내력이 있는 게 아닐까? 무엇 때문에 보통 음식은 잘 안 먹을까? 그저 몇 가지 특별한 음식만 먹고 또 이렇게 먼 길에 파란 콩을 찾아오라고 할까. 그 여기에 무슨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벽우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을 가다듬고 해변을 따라서 문 앞에 두 그루 배나무가 있는 인가를 찾기로 시작했다.
그는 보름이나 찾아다녔는데 갖고 갔던 양식도 다 떨어졌고 그 인가도 찾지 못했다. 나중에 벽우는 아예 구걸하면서 찾아봤다. 어느 날 날이 매우 좋은 날 그는 정말 너무 피곤해 본래 해변에서 좀 쉬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 잠이 들어버렸다. 이때 해수는 만조가 되어 차오르고 있었다. 이때 어느 바닷속 신선이 한 마리의 물고기로 변해 큰 입을 벌려 벽우를 삼키고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이 해역 인근의 육지가 역사상 일으킨 작용은 매우 특별했다. 육지 문화가 일으키는 이런 작용과 이 바다의 호위(護衛) 작용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중원문화의 보호막이었다. 이 바다에는 매우 좋은 해신(海神)이 있었는데 그는 해저의 큰 궁전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물고기로 변한 신이 바로 그가 타는 말이었다. 이 해신은 그와 벽우의 인연 관계를 보아내고 그를 한 마리 물고기로 변하게 해 이런 식으로 벽우를 데려오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궁전에 도착했을 때 벽우는 진작 깨어 있었고 그곳이 매우 깜깜했지만 온화하다고 느꼈다. 벽우가 이곳이 어디일까 번민하고 있을 때 그 물고기 신이 입을 열어 벽우를 뱃속에서 토해냈다. 벽우는 궁전과 신전의 각종 신선을 보았는데 이런 장면을 처음 보았기에 적응이 되지 않아 멍하게 있었다.
이때 그 해신이 다가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인연이 있는 까닭으로 너는 해신의 궁전에 왔다. 이왕 왔으니 먼저 이곳 구경을 좀 하게. 이후에 내가 너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 그리고는 어린 해신에게 그를 데리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구경을 시키라고 했다. 이렇게 바다 세계를 구경하며 벽우의 시야는 넓어졌고 내내 신기하다고 감탄했다.
이곳에서 며칠을 돌아다닌 후 해신이 말했다. “나는 네가 큰 배나무 두 그루가 있는 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날 그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있는데 조개껍데기 하나를 파란 콩을 찾는 그 여자에게 좀 갖다줘야 한다.” 벽우는 이 일이 매우 간단하다고 느꼈으나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 조개껍데기는 너무나 커서 길이가 2m, 폭이 1m가 넘었다. 그는 전혀 갖고 갈 수 없었다. 그가 곤란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곳은 신이 거주하는 곳임을 생각했고 그 신선이 분명 그들 도울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손으로 조개껍데기를 어루만지며 속으로 신장(神將)들에게 이 조개껍데기를 손가락 크기로 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자 조개껍데기는 즉시 손가락 크기로 축소됐다. 벽우는 매우 기뻤으며 이곳이 신선세계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그 해신을 쳐다보니 그 해신은 자비롭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벽우는 많은 일을 잘 알지 못했기에 본래 해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려 했다. 그러자 해신은 “너는 얼른 돌아가서 그 여자를 만나보거라. 그녀가 무슨 일이든 다 알려줄 것이다.”
벽우가 해신과 작별하자 해신은 법력으로 그를 매우 먼 해변의 어느 높지 않은 산에 보내줬다. 이 산꼭대기에는 어느 인가가 한 채 있었는데 문 앞에 두 그루의 큰 배나무가 있었다. 그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에는 중년 여자가 집안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다.
벽우가 온 뜻을 설명하자 중년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봉황선자(鳳凰仙子)가 보냈구만, 그녀가 자네에게 여기 와서 파란 콩을 찾아오라고 한 것은 자네의 사고를 젊게 유지하게 하는 방법인데 바로 ‘집을 떠나라[梨家: 오얏리(梨) 자를 떠날 리(离) 자로 해석]’라는 뜻이네.”
그러면서 중년 여성은 파란 콩을 벽우에 주고 또 네모반듯한 만두를 꺼내주며 가는 길에 먹으라고 했다.
벽우는 이곳을 떠날 때 머리가 멍했고 자기가 어떤 신선을 만났는지 몰랐다. 또 감히 물어볼 수 없어 얼른 만두를 갖고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젊고 건장한 사람으로서 만두 한 개로는 한 끼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가 이 만두를 반쯤 먹었을 때 갑자기 배가 불렀다. 다음에 먹으려 할 때 만두를 보니 원래 모양 그대로 있었다. 반을 먹자 또 배가 불렀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됐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도 습관이 됐다. 또 이 만두를 먹자 몸이 갈수록 건강해지고 발걸음도 나는 듯이 가벼워졌다.(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8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