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두(一斗)
【정견망】
명나라 헌종(憲宗) 성화(成化) 5년 장승(張升)이란 거인(擧人 역주: 향시에 합격해 전시를 볼 자격이 있는 선비)이 배를 타고 북경으로 시험을 보러 갔다. 뱃머리에 앉아 책을 읽는데 어떤 도사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늘 한권의 책만 읽습니까?”
장승이 대답했다.
“반드시 반복해서 복습해야만 숙달할 수 있으니까요.”
도사가 이 말을 듣고는 책을 가져가더니 한번 휙 보고는 그대로 외웠다. 장승은 자신이 기인을 만났음을 알고는 급히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자신의 장래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도사가 말했다.
“자네에겐 3가지 큰 일이 있을 걸세. 장원급제하고 집을 사고 등왕각(滕王閣)에서 사흘간 술대접을 받을 거야.”
나중에 장승은 정말 전시에 장원급제해 수년간 관직에 있었다. 나중에 바른 말을 하다가 남경(南京)으로 밀려났다. 부임 도중 남창(南昌)을 지나는데 남창의 관리가 그의 인품에 탄복해 등왕각에서 사흘간 주연을 베풀며 그를 대접했다. 이후 또 한곳에 저택을 구매했으니 정말로 도사의 말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2.
왕화(王華)는 절강 여요(餘姚) 사람이다. 여섯 살 때 한번은 그가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다. 이때 술에 취한 한 사내가 발을 씻고 가다가 실수로 헝겊 주머니를 떨어뜨렸다. 왕화가 열어보니 안에 수십 량의 은자(銀子)가 들어 있었다. 그는 저 사람이 술에서 깨면 분명히 다시 찾으러 오리라 여기고 물 옆에 앉아서 주머니를 지켰다.
나중에 그 사람이 울면서 찾으러 오자 왕화가 그에게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그가 감사의 뜻으로 주머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사례로 주자 왕화가 말했다.
“저렇게 많은 은자도 갖지 않았는데 은자 하나를 받아서 뭘 하겠습니까?”
왕화는 성화 17년 장원급제했고 관직이 예부시랑(禮部侍郎)까지 올라갔다. 20여 년간 벼슬을 하면서 비록 두드러진 업적은 없었지만 절개가 아주 곧았다.
3.
마지막으로 숭정(崇禎)황제 때의 일이다. 그는 제위를 이은 후 뭔가 큰일을 해보려는 생각에 인재선발을 대단히 중시했다. 숭정 원년(元年) 과거에서 황제가 직접 인재를 선발했다. 전시에 답안지가 제출된 후 답안지를 읽어본 대신들이 성적이 좋은 36명의 답안지를 올렸다.
숭정제는 혹시라도 자신이 진짜 인재를 선발하지 못한 건 아닌가 의심이 생겼다. 이에 이 36명의 진사(進士)들의 이름을 적어 제비로 만들고 단지 안에 넣고 금 수저로 건지게 했다. 그러자 처음 나온 이름이 유약재(劉若宰)였다. 황제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건지게 했는데 매번 유약재가 나왔다. 그러자 마침내 유약재를 장원으로 삼았다.
명조(明朝) 사람들은 자식을 교육할 때 “비록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일을 성취할 수 있지만 영화로운 날을 보려면 오래 기다릴 수 있어야 하고, 화후(火候)가 도달해 단(丹)을 이루는 자가 어찌 불을 단련하는 공부를 아까워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지금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 어리석고 맹목적으로 책만 봤다고 하지만 이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자료출처: 《명대진사이야기(明代進士的故事)》와 《유학경림(幼學瓊林)》)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31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