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일찍이 몇몇 법학습 소조에서 법을 배우면서 한 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학력이 높건 낮건 상관없이 법을 읽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자를 틀리게 읽는데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배후에 사람마음의 요소가 있다.
가장 흔히 발견되는 현상은 글자를 빼놓고 읽는 ‘낙자(落字)’다. 예를 들면 한 구절의 법을 읽으면서 첫 글자나 마지막 글자를 소홀히 하기 쉽다.
또 글자를 추가해서 읽는 ‘가자(加字)’가 있는데 보통 추가되는 글자는 “료(了)”, “적(的)”, “아(我)”, “문(們)”, “상(上)”, “유(有)” 등이다. 원인은 대부분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만약 공경한 마음으로 법을 읽는다면 매 한 자 매 한 구절도 모두 아주 중시하고 정확하게 본 후에 읽어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법을 읽을 때 사상은 반드시 집중해야 하며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가령 몇 초에 불과할지라도 틀림없이 잘못 읽는다. 다른 공간의 각종 사악의 요소들이 곧 틈을 탈 것이다.
법을 읽을 때 눈은 매 글자와 매 구절을 주시해야 하며 진정으로 주원신(主元神)이 공부해야 하고 읽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아야 한다. 빠르게 읽으면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다음 구절을 읽게 된다. 법을 읽을 때는 마음에 들어가게 해야 하며 마음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효과가 있다.
내가 또 발견한 것은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자존심,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며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 잘못 읽기가 가장 쉽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몹시 중시해서 잘못 읽으면 체면을 잃고 평판이 떨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할수록 더욱 잘못 읽기 쉽다.
소조의 한 동수가 말했다.
“나는 오늘 몇 곳을 틀리게 읽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동수는 남이 말을 못하게 하는 마음이 아주 중해서 건드리지 못하는데 누가 의견을 내면 십중팔구 당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러니 그녀가 틀리게 읽는 게 우연일 수 있겠는가? 그녀더러 “위신이 떨어진다”고 느끼게 만들고 동시에 그녀더러 자신을 한번 잘 수련하라는 것이 아닌가? 법을 읽는 목적은 제고가 아닌가!
또 한 가지 현상이 아주 뚜렷한데 바로 법을 읽기 위해 법을 읽는 것이다. 누가 법을 읽을 때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곧 평화롭고 공경하며 부드럽고 완만하며 원만한 심태로 법을 읽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발언대에 올라가 발언하는 것처럼 본래는 평온했던 마음이 일단 단상에 올라가기만 하면 두근거리면서 잘못 읽으면 남들이 자신더러 무식하고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할까 두려워한다. 이렇게 법을 읽으면 무슨 수확이 있겠는가? 비록 모두 함께 모여 같이 법을 공부하지만 당신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잘못 읽지 않고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마치 잘못 읽지 않는 것이 잘 닦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자아를 중시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신으로 수련 성취될 수 있겠는가?
법을 읽을 때는 반드시 읽는 한편 대조해보아야 한다.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는가? 어디에서 법과 차이가 나는가? 나는 또 무엇을 깨달았는가? 등등. 이렇게 대조하고 조사하는 가운데 비로소 빨리 제고해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법공부가 자신을 겨냥하지 않으면 몇 번을 읽어도 역시 형식에 불과하고 시간낭비일 뿐이다.
또 어떤 동수는 법을 읽을 때 좀 허세를 부리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외향적이다. 남에게 뒤처지길 싫어하고 사람도 눈에 거슬려하는데 함께 법을 공부할 때 틀리게 읽으면 자신의 위신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어투나 말투도 뚜렷하게 가식적이거나 작위적이라서 뭔가 들뜬 느낌을 주는데 내심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마치 다른 사람에게 법을 읽어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동수들이 함께 법을 배우지만 모두 보는 것은 다 심성이며 심성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또 어떤 동수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는데 바로 페이지를 뒤로 넘겨보는 것이다. 뒤에 몇 페이지가 남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으로 마치 초등학생이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것같다. 이는 마음이 들떠서 임무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법공부는 경건하고 공경하게 해야 한다. 대법은 사람이 신(神)으로 나아가는 하늘사다리로 보배 중의 보배이다. 얼마나 배우든 모두 자신에게 주는 것으로 마음을 전일하게 하지 않고 배우고 마치 임무완성 식으로 한다면 법 배후의 내함(內涵)이 드러날 수 있겠는가? 이런 심태로 법을 배워서 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상은 내가 본 약간의 현상들이다. 이를 써내어 우선 자신을 수련하고 또한 동수들에게 작은 참조로 제공하는 바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7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