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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20주년원고】 윤회기실: 법해의 진정한 모습

글/ 감원(勘元)

【정견망】

주지하다시피 신(神)이 인류 역사를 배치했다. 그런 역사를 연기한 풍운 인물들은 다 대법제자 중에 있다.

2015년 여름 내가 동수와 발정념할 때 한 장면을 보았다. 어느 스님이 진홍색 옷을 입고 도사의 신을 신고 오른쪽 다리는 활 쏘는 자세로 딛고 오른 손바닥으로는 동시에 공력을 내보내어 전력으로 악을 멸하고 있었다. 그것은 산하를 삼킬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가 법해(法海)임을 알았다.

법해는 과거 역사 시공 중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나였다. 나는 또한 그 자리에 앉아있던 모 동수는 그때의 허선(許宣)임을 알았다, 정념이 끝나자 한 동수가 말했다.

“내가 탑을 하나 보았는데 요괴를 누르는 뇌봉탑(雷峰塔)인 것 같아요. 우리 중에 분명 누군가 이 법해였을 겁니다.”

(역주: 여기에 등장하는 허선과 법해는 모두 ‘백사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내가 웃으며 미소를 짓자 동수도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법해는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승려다. 허선을 구하고 백사(白蛇) 요괴를 눌러 정사대전(正邪大戰) 중에 불가(佛家)의 요지를 분명히 밝혔다. 즉 인간과 요괴는 같이 살 수 없고 수련인은 우주 중의 바른 생명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인간세상의 바른 이치와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법해는 누명을 썼고 심하게 먹칠을 당했으며 변이관념 속에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스님이자 “아름다운 혼인의 인연”을 갈라놓는 악인으로 그려졌다. 오늘 나는 이 역사 인물의 진실을 환원시키고자 한다.

법해는 당나라 사람이다. 츨가 전에 명문 가문의 귀한 자제였고 과거에도 장원 급제했다. 불문에 들어간 후 고생스럽게 수련하여 업채(業債)를 갚고 정좌(靜坐)하며 공력이 자라고 마침내 개오했다. 산굴에서 가부좌하는 중에 백사(白蛇) 한 마리를 만났는데 출가인은 살생하지 않으므로 백사에게 타이르고 법력으로 물리쳤다. 이 선념이 나중에 유감으로 남았다.

뱀은 마성을 고치지 못하고 사람의 정혈을 빨아들여 마침내 사람의 모습이 되었고 미남을 홀려 정수를 빨아들였는데 그러다 마침 허선에게 접근했다. 허선은 원래 하늘의 별이 내려온 사람으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법해는 마침내 항주에 이르러 백사를 잡았고 뇌봉탑을 세워 백사를 눌러놓았으며 게를 남겨 말했다.

“서호의 물이 마르고
강호가 일어나지 않고
뇌봉탑이 무너지면
백사가 세상에 나올 것이다.

西湖水幹,江湖不起
雷峰塔倒,白蛇出世”

이 일이 서기 859년에 일어났다. 하늘에서 이런 극본을 배치한 것은 숨은 뜻이 있다. 극본 중의 인물의 이름은 다 우의(寓意)가 있다.

법해에 담긴 뜻은 법력이 강해서 허선을 부처님 앞으로 이끌어 서약하게 하고 그를 도와 속세의 겁운을 피하도록 하여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남겨놓는 것이다.

허선에 담긴 뜻은 신선의 배치로 명령을 수행하다 겁난을 당하지만 법해의 공력을 떨쳐 백사와의 얽힘에 벗어난다. 또 사람과 뱀은 가는 길이 다르니 고승이 보호로 운을 바꾸어 색욕심을 버려 스님을 따라 수행한다는 뜻이다.

백사白蛇와 청어青魚 두 글자를 합하며 “사어蛇魚-뱀장어 따위”라고 부른다. 법해가 철저히 악을 멸할 수 없기 때문에 뱀과 물고기의 재난을 남겨둔다(잔당을 남긴다는 뜻)는 것이다.

예부터 줄곧 법해와 백사가 도술을 부려 싸우고 어떠어떠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이것은 잘못된 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법해가 악을 멸한 것이다. 백사와 청어는 법해 앞에서 요술을 전혀 펼칠 수 없었다. 법해의 법력하에서 그것들은 원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사악은 바른 것을 침범하지 못하며 마가 한 척이면 도는 한 길이라는 것은 우주의 진리다

이 이야기는 당나라 때 유행했는데 법해라는 법호는 끝없는 불법佛法이 인간세상에 체현된 것이며 불법이 세인들에게 남겨놓은 악을 제거하는 제악(除惡)의 상징이자 증거다. 법해의 역할은 절대로 불법을 보호하는 것을 준칙으로 삼았다. 불법은 동물이 인체에 오르거나 인체의 정화를 빨아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법해는 백사와 청어가 미녀로 변환하여 고귀한 정화지기를 가지려고 허선을 유혹하는 것을 보았다. 법해는 손을 써서 허선을 구하고 두 요괴를 정리하여 뇌봉탑 아래에 눌러 놓았다. 그때 당나라 시기에 사람들이 신불을 믿는 기점은 매우 높았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 법해가 허선을 구한데 감사하고 역대의 고승과 대당의 스님들이 세인들에게 수련문화를 남겨놓는데 이익이 되게 했다.

그러다 명대(明代)에 이르러 풍몽룡(馮夢龍)이 《백낭자영진뇌봉탑(白娘子永鎮雷峰塔)》을 쓴 것은 본래 세상을 경고하는 우화이며 법해를 널리 알리려 한 것이다.

그러다 이야기가 청나라에 흘러와서 여러 내용이 첨가되었다. 무슨 선초(仙草)를 훔친다거나 물이 금산에 넘치고, 백사가 아이를 낳는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원래 극본의 순정한 내포를 잃게 되었고 인류 도덕이 회귀하는 작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이야기 중의 배역의 성격도 바뀌었다. 백사는 사람의 정화를 훔친 것은 아이를 낳는데 쓴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백사의 해로움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미녀로 여긴 것이다. 허선이 미색을 탐하자 백사가 미녀로 화하여 그의 품에 들어가서 사람의 정화를 빨아들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애정물로 변한 것이다.

법해는 쓸데없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고 아름다운 혼인의 연연을 갈라놓은 나쁜 스님으로 묘사되었다. 세상을 경고하는 우화는 남녀 애정 소설이 되었으며 백사가 생명을 해치는 것은 더 이상 도덕상 비판을 불러오지 못했다. 대신에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 될 수 없는 것에 동정했고 전통 도덕에 반역 심리가 생기게 되어 이야기의 교훈적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그래서 경세우언은 점점 바뀌어서 항주 서호변에 일어난 낭만적 애정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문화 운동 시기가 되자 전통문화는 파괴당하고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백사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인간과 요괴를 구분 못하는 문인(文人)들은 사람들을 잘못 이끌었고, 또 사람들 관념의 변이와 도덕의 패괴를 반영했다. 사람들은 요괴를 미화하고 충성을 망령으로 여기며 백사를 찬미하고 법해를 비방했다. 대대로 이어서 사람들은 이렇게 고친 것을 좋아하고 그런 결말을 좋아하여 이야기의 맛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이야기가 원래 일으키려 한 교화작용을 상실했다.

현재 <법해 너는 사랑을 몰라> 라는 노래가 나타났는데 이 노래는 인문을 거역하는 일이다. 인간과 요괴가 어찌 사랑할 수 있는가? 동물이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정화로서 그것으로 사람이 되려고 할뿐이다. 동물은 높이 수련하면 마가 되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천상에서는 겁을 일으켜 벼락을 치는 등으로 그것들을 죽인다.

그렇다면 명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사이에 민간에서 유전된 이야기에 무엇 때문에 이런 변이가 나타났는가? 사람들은 왜 요정을 인정하는가? 궁극적 원인은 삼계의 생명이 변이되어 인류도덕이 수준이 떨어지게 되었고 이런 변화가 부지불식중에 생겨난 것이다.

사실 법해가 악을 멸할 때 일부 나쁜 신의 교란을 받아 진정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과거 경험을 회고하면서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진실한 일 막을 보았다.

법해의 본의는 백사를 소멸하려는 것이었지만 내보낸 공력이 다른 한 가닥 힘에 의해 저지되어 힘이 상쇄되었다. 나중에 법해는 한 무리 신선을 보았는데 그들은 법해가 백사를 죽이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법해는 백사가 도망치려는 것을 보고 얼른 바리때를 꺼내어 백사를 잡아넣었고 백사는 발버둥 쳤다. 법해는 얼른 뇌봉탑을 들어 백사를 눌렀다. 그러나 법해는 나중의 일을 보았다. 서호의 물이 마를 때 뇌봉탑이 무너질 것이며 백사가 다시 세상에 나와 화란을 일으킬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의 게송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서호의 물이 마르고
강호가 일어나지 않고
뇌봉탑이 무너지면
백사가 세상에 나올 것이다.”

법해는 악을 제거하는 중에 나타난 이 장면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가부좌 중에 원신이 몸을 떠나 사존에게 여쭈었다. 사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법해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하늘의 뜻이다.”

법해는 “악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올 것입니다” 라고 했다.

존자는 “네가 여러 세 윤회한 후에 법을 얻어 수련하면 여전히 사악을 추격하여 섬멸해야 할텐데, 잊지 말거라.”라고 했다.

그럼 무슨 힘이 백사를 보호했는가? 그것과 후세인의 법해에 대한 비방과 관계가 없지 않은가? 나는 관계가 있다고 본다. 백사를 보호한 힘은 바로 우주의 나쁜 신이었다. 이 신들이 세간 생명의 변이를 격화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 가닥 변이된 힘이 일체 일을 뒤집었다.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자면 삼계를 만들 때 신(神)은 삼계의 역사를 배치했다. 하지만 구세력의 신 그것들은 창세주(創世主)께서 배치하신 극본을 개편했고 많은 신의 계획과 사람의 계획을 파괴했다. 그래서 인류 사상에 변이가 일어나게 했고 인류를 위험의 길로 이끌었다. 최후 요마(妖魔)가 그 길로 크게 다니고 심지어 떳떳하게 인류의 전당에 오르기까지 한 것이다. 요괴가 설치한 계획을 선양하고 정통을 훼손하며 무신론, 진화론과 변이 현대관념을 고취하게 한 것이다.

나중에 사악한 공산당이 영화를 찍어 농촌에 널리 방영했다. 내가 어릴 때 백사전을 보았는데 영화 마지막에 정사의 인물이 함께 신선의 반열에 오르며 다 기뻐한다. 이것은 사악 요소가 하늘의 기강을 뒤집은 것이다. 사당은 이렇게 하고도 부족하다고 느껴 또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극 중에서 백사는 허선과 결혼하는데 백사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에 가득 찬 법안法眼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으니 나는 분골쇄신하여 애정과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나는 하늘과 항쟁할 것이며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사당은 이렇게 전력을 기울여 백사를 고취하고 요마를 고취했다. 요마를 위해 전기를 만들고 요마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사당 자신이 바르지 않고 서방에서 온 유령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선언>에서 공산당은 스스로 “유령”임을 세인들에게 알렸다. 공산당 조직에 가입한 사람들은 주먹을 쥐고 유령 부체의 당기에 생명을 바치겠다고 독한 맹세를 하였다. 이것은 위험한 맹세이며 다른 공간에서 유령은 선서한 사람에게 이마에 짐승의 기호를 친다. 인간을 요마로 만드는데, 신과 부처를 거역하는 것은 사당이 하기 좋아하는 일이다.

법해가 악을 멸하는 것은 본래 하늘이 세인들에게 남겨준 완전한 극본이었다. 법해는 상계의 어느 한 층에서 법계의 수호자였으며 형상은 위엄이 용맹한 금강이었다. 백색의 금강조로 변하여 궁중에 날아다니거나 혹은 선기仙氣가 감도는 산간에 머물기를 즐겨했다. 산 속에는 봉황, 공작, 선학 등이 있었는데 어떤 선학은 그와 형제로 칭하며 그를 ‘금강형金剛兄’이라고 불렀다.

선학은 혼잣말을 하며 금강조의 뒤에 따라다니기를 좋아했다. 또 금강조가 나무 아래 떨어뜨린 과일을 먹기 좋아한다고 했다. 금강조는 그 과일은 선인이 먹는 것이며 선학이 땅에 떨어진 것을 먹으면 영성이 비범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금강조는 말이 적었지만 그는 선학을 ‘학제鶴弟’라 불렀다.

금강조가 호위하는 본래 형체로 돌아오면 선익자禪翼子라 불렀다. 나중에 부처님 앞에서 인간 세상에 들어와 불법을 널리 알리고 선량한 생명을 호위하는 사자가 되기로 약속했다. 법해란 이름은 하늘에서 정해준 호칭이었다. 그 선학의 본래 생명은 매우 높은 층에서 온 신선이며 층층 천계를 끊임없이 내려와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형상으로 나타났다. 금강형이 그에게 인간세상에 가서 법을 전하고 선량한 생명을 호위해야 한다고 말하자 선학은 좀 섭섭했다.

금강형이 떠난 후 선학은 나뭇가지에 기대어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슬펐다. 금강형이 호위하는 사람이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뒤에 있던 나무가 말했다.

“너 좀 빨리 내려가 봐. 그래서 그러면 금강형을 따라잡을 수 있어.”

선학이 어리둥절하다가 내려가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인간세상에 들어와서 허선이 되었다.

법해와 허선은 생명이 법으로 인연을 맺어 하나의 극본에서 다른 역할을 맡았다. 하늘에서 이런 극본을 남겨놓은 것은 세인을 일깨우려는 것이고 본성이 미혹되어 있지 말라는 것이며 색마에 유혹되어 인간의 정화를 상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극본은 전해지는 중에 전부 다 고쳐졌고 그것이 말세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정말 슬픈 일이다.

법해가 백사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여 후세에 번거로움을 남겨주었다. 이 한 세의 수련 중에 나는 백사의 교란을 한두 번 받은 것이 아니다. 백사는 또한 ‘소청(小靑)’을 포함한 한무리 사악한 동물들을 규합하였다. 여기서 말할 것은 처음에 소청은 청어(푸른 물고기)였는데 나중에 일부 난신이 이런 소청은 독성이 부족하다고 느껴 청사青蛇로 바꾸었다.

내가 악을 멸하는 중에 소청이란 이름을 걸고 출현한 사악한 동물이 어떤 때는 청어, 어떤 때는 청사였다. 이런 것은 필히 제거해야 할 우주의 쓰레기다. 반복적으로 출현하여 교란하는 백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들은 하나의 이어지는 사악 체계이다. 그래서 사악을 분명 없앴는데도 얼마 후 또 출현했다. 나는 이런 것 역시 구세력이 만들어낸 한 세트의 것이 부동한 공간에 분포되어 있음을 알았다. 발정념 할 때 간절히 사존의 가지를 부탁하여 이런 릴레이식의 체계중의 패괴생명을 배후에 이런 기제를 지지하고 배치한 구세력의 나쁜 신을 포함하여 철저히 없앴다.

게다가 이 기제를 지탱하는 생명 그것들을 철저히 소멸했다.

나는 우주 중에서 한 가지 바른 사건을 배치할 때 정(正)의 요소가 움직일 때면 부면(負面)적인 생명도 따라옴을 깨달았다. 구세력의 신은 상생상극의 이치를 극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면적인 생명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나쁘고 더 사악하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커다란 연극의 변이는 창생(蒼生)의 도덕표준이 미끄러진 정도를 볼 수 있다. 현재의 말세(末世)는 요괴마귀가 아직 세간을 화란(禍亂)시키고 있으며 인간세상에 어느 때에 바른 길로 돌아갈지는 정의인사(正義人士)가 대가를 치르고 악을 멸하는 정도를 보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7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