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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수련이야기: 장도릉의 신기한 경력

육진(陸真)

【정견망】

동한(東漢) 시기 장도릉(張道陵)은 도교의 창시인으로 흔히 장천사(張天師)로 불린다. 중국에서 장천사라고 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하다.

장도릉은 원래 패국(沛國) 풍현(豐縣 지금의 강소성 풍현) 사람이다. 일찍이 태학(太學)에서 공부하던 유생이었고 학식이 넓고 깊어 멀리까지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오월(吳越) 출신의 학생이 천명이 넘었지만 벼슬길에서 뜻을 이룬 경우는 거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반백이 넘자 늘 몸이 불편한 증상이 나타났다.

이에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내 평생 많은 공부를 했지만 뜻밖에도 내 몸과 수명연장에는 조금의 도움도 못되는구나. 내 차라리 연년익수(延年益壽)의 본령(本領)을 배우느니만 못하리라.”

이에 장생(長生)의 도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서 멀리 떠났다. 떠나기에 앞서 여러 제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유독 왕장(王長)이란 제자만이 스승을 따라가고자 했다. 이에 다른 학생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왕장만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사도 두 사람은 명산대천을 두루 유람했다. 먼저 낙양 북망산, 강서의 운금산(雲錦山) 등을 찾아다니며 도를 닦았다. 두 사람이 운금산에 있을 때 산에서 한 권의 기이한 책을 발견했는데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며 용호신단(龍虎神丹)을 수련했다.

1년을 연마하자 붉은 빛이 방안에 가득했다.

2년째가 되자 오색의 구름이 생겨 집을 뒤덮었고

3년이 되자 신단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한 마리 청룡과 한 마리 백호가 나타나더니 공중에서 그를 호위했고 장도릉은 이때부터 신선(神仙)진인(真人)이 되었다.

나중에 장도릉의 후대에 운금산의 이름을 용호산(龍虎山 지금의 강서성 용호산)으로 바꿨다. 이 산속에는 아직도 당시 경전이 들어있던 바위인 장경암(藏經岩)과 그가 단을 연마하던 연단대(煉丹臺) 등 유적이 남아 있다.

단을 완성한 후 사도 두 사람은 또 하남 숭산(崇山)을 찾아가 도인을 방문했는데 머물다 보니 몇 년이 지났다. 이때 흰옷을 입은 백의사자(白衣使者)가 하늘에서 내려와 장도릉에게 알려주었다.

“숭산 중봉에 석실(石室)이 하나 있는데 삼황내문(三皇內文)과 황제구정단경(黃帝九鼎丹經)이 보관되어 있으니 그 법(法)에 따라 수련하면 즉시 신선이 될 수 있다.”

장도릉이 이에 석실에 들어가 보니 발아래 돌로 된 벽돌에서 텅 빈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가 소리를 따라 벽돌을 열어보니 과연 단서(丹書)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 장도릉의 도법(道法)은 갈수록 더 정밀해졌고 또 각종 신기한 공능들도 생겼다. 도술이 높아진 그는 이때 도(道)로 백성들을 교화(敎化)하려는 원대한 이상을 품었다.

그는 사천에 명산이 있는데 자고로 신선과 진인이 모이는 장소이고 또 그곳 백성들의 풍속이 순박해서 교화하기 좋다는 말을 듣고 촉(蜀) 땅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장도릉이 어느 산자락에 도착했다. 보니 이 산은 삼면에 물이 흐르고 두 계곡이 합류할 뿐만 아니라 산세의 기복이 마치 선학(仙鶴)이 구름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알아보니 과연 이 산의 이름이 학명산(鶴鳴山)으로 천년 선학이 변화한 것임을 알았다. 또 산 위에 돌로 된 석학(石鶴)이 한 마리 있는데 매번 선인(仙人)이 입산할 때마다 길게 울곤 했다.

장도릉은 이곳이 영산보지(靈山寶地)임을 알고 이곳에서 오래 머물기로 결정했다. 바로 그가 머물기로 한 날 저녁 석학이 긴 울음소리를 냈는데 유유하고 신묘한 것이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백리까지 전해졌다.

장도릉은 이곳에서 도법을 연구하는 한편 촉 땅 백성들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학명산에 온 지 3년째 되는 해 신단(神丹)이 완성되었다. 눈부시게 찬란한 신단을 바라보면서 장도릉은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신단을 먹고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선(仙)을 닦는 사람은 마땅히 백성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해악을 없애야 한다.’

이에 계속해서 사천에 남아 민중을 교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던 정월 보름 저녁 장도릉은 평소처럼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뭇 신선(衆仙)들을 이끌고 학명산에 강림했다. 노군은 장도릉이 한창 달게 자는 모습을 보고는 뭇 신선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부전(符篆)과 몸을 다스리는 도(道)를 전수해 그가 촉 지역의 고통 받는 백성들을 널리 구하게 하고자 한다.”

이때 노란 갑옷을 입고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쓴 한 선인이 장도릉의 꿈속에 나타나서는 말했다.

“도릉, 빨리 일어나시오, 노군께서 지금 뭇 신선들을 이끌고 강림해 당신께 무량한 신공(神功)을 전수하시려 합니다.”

장도릉이 놀라서 일어나 보니 온통 향기로운 꽃들로 가득한 가운데 선악(仙樂)이 울려퍼졌다.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절을 올렸다. 태상노군이 수종하는 선인을 시켜 삼동(三洞)의 경서(經書)와 금단비결(金丹秘訣), 자웅(雌雄) 두 검과 도공인(都功印 역주: 천사를 상징하는 인장) 하나를 주고 정식으로 천사(天師)로 임명해 고난에 빠진 백성들을 구도하게 했다. 

노군의 법을 얻은 후 장도릉의 도법(道法)은 크게 진보했다. 그는 몸을 다스리는 도를 배웠고 약을 채집해 백성들에게 병을 치료해줄 수 있었다. 이들 약재는 촉 지역 산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알려주기에 편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를 찾아와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전수받는 사람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만 명에 달했다.

나중에 사명을 완수한 장도릉은 제자 왕장과 조승(趙升)을 데리고 사천 청성산(青城山)에서 승천했다.

자료: 《후한서》 및 관련 방지(方誌) 등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59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