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劉曉) 정리
【정견망】
절강성 의오(義烏)에 양성사(兩姓祠 두 성의 사당)가 있는데 다시 말해 왕(王)씨와 오(鄔)씨 두 성의 사당이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먼저 왕 씨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왕모(王某)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매일 일찍 일어나 두부를 만들어 생활했다. 게다가 그는 마음씨가 착하고, 사람됨이 당당하고, 남을 돕기를 즐겨 약간의 돈이 있으면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 연로한 부모, 어진 아내, 어린 아들까지 있어 가난하지만 화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왕모는 두부를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탁발하는 스님을 만났다. 승려는 불법(佛法)은 끝이 없다고 찬양하면서 시주를 하면 공덕이 있을 거라 했다. 왕모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져 두부를 판 은전을 8전이나 주었다. 집에 돌아와 남은 은전을 살펴보니 세 푼밖에 없어 걱정이 앞섰다. 두부를 만들 밑천이 부족하고 밑천이 없으면 두부를 만들어 팔 수 없고, 두부를 팔지 않으면 집안의 생계가 어렵다.
사실을 알리면 부모니께 꾸지람을 듣게 마련이었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맺힌 마음이 풀리지 않아 남은 돈 3전을 문틈에 쑤셔 넣고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죽은 후 명부(冥府)에 온 왕모는 염라대왕에게 하소연했다.
“갑자기 선념(善念)이 일어나 생계에 쓸 돈을 희사했고 그 바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 양친을 그리워하며 후회하고 있는데 누가 먹여 살릴지 걱정이 됩니다. 염라대왕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염왕(閻王)은 이 일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장부를 확인하게 하고는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왕모는 여러 세(世) 동안 청빈하고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의 효심을 기쁘게 생각하여 그를 이승으로 돌려보내도록 하라.”
하지만 그의 원신(元神)이 저승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육신이 이미 부패해 이승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염라왕은 이에 그가 남의 시신을 빌려서 소생할 수 있도록 사건을 담당한 관리에게 악행으로 죽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그 시신을 빌려 왕모의 혼이 돌아가게 하라고 명령했다.
관리는 명부를 확인한 후, 오(鄔)씨 성을 가진 한 여유 있는 집에서 아들이 막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염라왕은 왕모의 원신을 오 씨 아들의 몸에 들어가게 하라고 명령했다. 오 씨 가족이 울고 있을 때 갑자기 아들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울음을 그치고 기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들은 깨어나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온 가족이 당황하여 함께 그를 막았다. 원신이 바뀐 오 씨 아들은 “나는 당신들의 아들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은 그가 상한(傷寒)에 걸렸다 호전된 후 정신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 그를 엄중하게 관리했다. 왕 씨는 어떻게 해도 나갈 수 없자 침대에 누워 자는 척하다가 오씨 가족의 감독이 약간 느슨해진 후 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부모님과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낯선 사람을 보고 매우 놀라서는 그를 내쫓았다. 이에 왕 씨가 땅에 무릎을 꿇고 전체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이 사실임을 확신시키기 위해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내가 문틈에 동전 세 개를 넣었는데 동전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가 며느리에게 확인해보게 하니 확실히 은전이 든 작은 가방이 있었고 숫자도 맞았다. 그러나 모습이 변해서 부모님과 아내는 여전히 그를 의심했다. 이때 오 씨 일가가 이곳을 찾아 그를 강제로 데려가려 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때서야 왕씨 가족들은 비로소 시신을 빌려 혼이 돌아온 것이 맞음을 믿고 함께 오 씨 일가와 말다툼을 벌였다.
이에 오 씨 집 사람이 말했다.
“네 원신이 비록 왕 씨 집안의 것이라 해도 육신은 우리 오 씨 집안 아들인데 어찌 왕 씨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양측은 오랫동안 결과 없이 논쟁을 벌였고, 이에 오 씨 가족이 관아에 소송을 제기했다. 현령은 결국 시신을 빌려 살아난 왕(王)씨를 두 가족의 아들로 인정하고 한달 중 보름은 왕씨 집에서 살고 보름은 오 씨 집에 살게 했다. 또 왕 씨 집에서 낳은 아들은 왕 씨 성을 따르고, 오 씨 집에서 낳은 아들은 오 씨 성을 따르게 했다.
이후 왕씨는 두 집을 번갈아 가며 살았고 왕 씨 가족은 오 씨 가족의 도움을 받아 점차 사는데 근심걱정이 없어졌다. 두 가문은 후손이 계속 번창하고 인구가 점차 증가해 대가족이 되었다. 이후 두 가문이 함께 조상을 제사지내는 사당을 짓고 ‘양성사(兩姓祠)’라 이름 지었다. 이 사당에서 양가가 함께 제사를 지냈다.
대천세계(大千世界)에는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윤회전세(輪回轉世)와 시신을 빌려 혼이 돌아오는 것은 결코 허황한 일이 아니다.
참고자료: 《지문록(咫聞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0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