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북송 말기에 법명이 ‘묘응(妙應)’이란 스님이 있었다. 신통력이 있어서 미래를 예언하는 것으로 세상에 유명했다.
당시 오민(吳敏)이라는 이름의 고관이 있었는데 자는 ‘원중(元中)’이었다.
어느 날 묘응 스님이 오민을 찾아오더니 세 가지 놀라온 예언을 했다.
첫째, 천하에 장차 난리가 나는데 난세(亂世) 중에 당신이 재상이 될 것이다.
둘째, 나는 지금 남방으로 가려 하는데 미래에 당신을 영남(嶺南)에서 만날 것이다.
셋째, 내가 원적(圓寂)한 후 당신의 수명도 얼마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작별을 고했다.
얼마 후 금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송 휘종(徽宗)은 황위를 아들인 흠종(欽宗)에게 선양하는데 그 조서의 초안을 오민에게 작성하게 했다. 때문에 흠종은 오민을 매우 중시했고 그를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와 ‘소재(小宰)’를 겸하게 했다. “소재”란 바로 부재상이며 추밀원은 송나라 최고 군사 지휘 기구였다.
즉, “지추밀원사”란 말은 추밀원의 주요 장관으로 오늘날로 치면 국방부 장관에 해당한다. 오민은 갑자기 조야를 휘두르는 권력이 생겼지만 1년이 못되어 바로 ‘재상(太宰)’과 불화가 생겨 남방으로 귀양 갔다. 오민은 전화위복이 되어 수도인 개봉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북송이 멸망하는 ‘정강의 변’을 피할 수 있었다.
남송 시기에 고종(高宗)이 재차 오민을 불러 광서호남선무사(廣西湖南宣撫使)를 맡겼다. 그가 부임한 후 어느 날 유주(柳州 지금의 광서 유주시)에서 뜻밖에도 묘응을 만났다. 스님을 만난 후 오민은 당시 그가 했던 예언을 상기했다.
이에 매우 감격하며 말했다.
“당시 두 가지 예언이 모두 영험하게 되었습니다. 금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난세 속에 나는 재상이 되었고 금방 귀양을 가서 남방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당신을 또 영남지방에서 만났군요.”
그는 묘응이 득도한 고승으로 정말로 미래를 예견하는 신통이 있음을 알고 극진히 대했다. 두 사람은 바둑을 두었다. 다음날 오민은 묘응이 거주하는 사원에 가서 그를 찾았으나 절의 승려가 묘응 스님이 어제 돌아온 후 원적해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오민은 그 말을 듣고 금생에 자기 목숨도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고 후사를 잘 안배했다.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묘응의 세 가지 예언이 다 영험한 것을 알았다.
자료출처: 《투할록(投轄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0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