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李覺)
【정견망】
개상(介象)은 자가 원칙(元則)으로 삼국시대 회계(会稽) 사람이다. 학문은 유가의 오경(五經)에 통달했고 널리 책을 읽었으며 문장에도 능했다. 나중에 도(道)를 배워 동산(東山)에 들어갔는데 도세금기(度世禁氣 세상을 구하고 귀신을 제압하는 것)의 술법에 능했다.
가령 띠 풀 위에 불을 피우고 닭을 삶아도 풀이 타지 않게 한다든가, 1리 내의 인가(人家)에서 밥을 짓는데 밥이 익지 않게 한다든가, 3일 동안 닭이나 개가 울거나 짖지 못하게 한다거나, 시장 사람들이 모두 앉은 채로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거나, 몸을 감추고 초목이나 조수(鳥獸)로 변화하는 등등이다.
그러다 《오단경(五丹經)》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천하를 주유하며 찾았으나 적당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이에 산속에 들어가 수도(修道)하면서 오로지 신선을 만나길 기원했다. 한번은 몹시 지쳐서 돌 위에 누워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의 이마를 핥았다.
개상이 깨어나 호랑이에게 말했다.
“하늘이 너를 보내 나를 호위하게 한 거라면 잠시 머물러도 좋지만 만약 산신(山神)이 나를 시험하기 위해 보냈다면 즉시 돌아가거라.”
그러자 호랑이가 떠났다.
개상이 산속으로 들어가자 골짜기 사이에 둥근 돌이 있었다. 돌은 보라색에 푸른 광택이 났는데 매우 아름다웠고 크기는 계란만했다. 이런 것이 수없이 많았다. 개상은 그중에서 두 개를 집었다. 골짜기가 깊어서 앞으로 더 갈 수 없어서 돌아 나왔다.
산속에서 15, 6세가량의 아름다운 오색 옷을 입은 미녀를 만났다. 개상은 속으로 신선임을 알고 황망히 엎드려 절을 하며 장생의 비법을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대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본래 장소에 갖다 놓고 오라. 그대는 아직 그 물건을 가질 수 없다. 내 일부러 그대에게 권하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소.”
개상이 그 돌을 원래대로 갖다놓고 오자 그녀가 여전히 그 장소에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개상에게 말했다.
“그대는 아직 육식 냄새가 없어지지 않았으니 3년 동안 벽곡한 후 다시 오시오. 내가 그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것이오.”
개상이 집에 돌아가 3년 동안 곡식을 끊은 후 다시 그 산 속으로 가서 보니 같은 곳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환단경(還丹經)》 1권을 개상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얻었으니 신선이 될 것이다. 더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개상이 이에 인사를 올리고 집에 돌아갔다.
한편 개상은 제자 낙정아(駱廷雅)의 집에서 휘장을 내린 침상 위에 있었다. 어느 날 몇몇 서생이 《좌전(左傳)》에 대해 토론하는데 서로 의견이 맞서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개상이 듣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러자 서생들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오왕(吳王 역주: 삼국시대 동오의 손권을 말한다)에게 천거했다.
개상이 이를 알고는 떠나려 하며 말했다.
“관직을 맡게 되면 얽매일까 염려된다.”
낙정아가 억지로 만류했다. 오왕이 무창(武昌)으로 그를 불러 몹시 존경하며 개군(介君)이라 불렀다. 또 조서를 내려 저택을 지어 주었다. 하사한 장막은 모두 수놓은 비단이었고 황금 천 일(鎰 1일은 20냥이다)을 주었다. 오왕은 그에게 모습을 숨기는 은형술(隱形術)을 배웠다. 시험 삼아 후궁에 들어가 보니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각종 변화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나중에 개상이 병들었다고 알리자 오왕이 좌우의 시첩을 시켜 좋은 배 한 상자를 개상에게 보냈다. 개상이 이것을 먹고는 곧 죽자 오왕이 그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정오에 죽었는데 저녁에 벌써 건업(建業 지금의 남경)에 가서 하사받은 배를 관리에게 주고 그 씨를 심게 했다.
나중에 이 관리가 오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오왕이 개상의 관을 열어보니 다만 한 장의 부적만 보였다. 오왕이 그를 추모해 사당을 세워주고 때로 직접 가서 제사를 올렸다. 그때 늘 흰 학이 자리위에 날아와서 천천히 맴돌다 가곤 했다. 나중에 개상의 제자가 개죽산(蓋竹山)에서 그를 만났는데 전보다 더 젊어보였다고 한다.
한번은 개상이 오왕과 대화를 나누던 중 오왕이 물었다.
“생선회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훌륭합니까?”
“치어(鯔魚 숭어)가 최곱니다.”
이 말에 오왕이 말했다.
“이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인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개상이 말했다.
“가능합니다.”
이에 사람을 시켜 궁궐 뜰에 네모난 구덩이를 파고 물을 가득 채우게 했다. 그리고는 낚시와 미끼를 가져다 낚시를 시작했다. 한 식경(食頃)도 되지 않아 개상이 숭어를 낚아 올렸고 주방에 보내 회로 만들게 했다.
자료출처: 《신선전》
【평가】
1. 오성과 수련
개상은 《오단경》을 구하기 위해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이에 산속에 들어가 신선을 만나고자 했다. 피곤해서 바위 위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자 그는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기에 2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
즉 하늘이 자신을 호위하라고 내려 보냈거나 아니면 산신(山神)이 나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호위라면 나를 번거롭게 하지 않을 것이고 시험이라면 필요 없다고 하자 호랑이가 곧 떠났다. 이는 그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반증한다.
알다시피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데 왜 개상은 먹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흔히 호랑이가 개상을 잡아먹지 않은 것에 대해 배가 고프지 않았거나 또는 맛이 없어서 먹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또는 이 호랑이가 온순하거나 병약했을 거라거나 또는 호랑이는 본래 사람을 두려워하기에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등 억지로 소위 ‘과학’적인 이유를 견강부회한다.
오늘날 우리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여러 차례 “호랑이를 만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수련 중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압제자들을 만나는데 바로 사람을 잡아먹는 사나운 호랑이다. 호랑이의 특성은 마치 사람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하지 않는 일이 없는 것처럼 손에 들어온 사냥감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큰 입을 벌려 위협하고 족쇄를 채워 두렵게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 마음을 단련시킨다.
불법(佛法)에 의지한 우리는 깨달음 속에서 점차 사람마음이 신념(神念)으로 변화해왔다. 처음에는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며 순종하거나 원망하며 저항하다가 나중에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정시(正視)하게 되었고 아예 보지 못한 것처럼 평화롭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병들거나 다친 호랑이를 보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마음의 변화는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함”에서 “사람을 제도함”으로 전변하게 했다.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는가 여부야말로 수련자와 세인(世人)의 차이점이다. 사람과 신(神)의 차이는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곧 부동한 층차 공간의 경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거나 경찰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 이 층 공간의 이치다. 이 경지 속에서 “흉악하고 잔인함”은 바로 한 층 높은 공간의 생명이 그것의 업력을 이용해 그것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한 것이다. 사람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또 스스로 이렇게 하려 했으며 자신이 주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단히 슬픈 일이다.
2. 실(失)과 득(得)
개상이 신선을 찾으려 해도 만나지 못했는데 자수정(紫水晶)을 발견한 후에야 선녀(仙女)를 만났다. 선녀는 그에게 수정을 반환한 후 다시 보자고 말한다. 개상은 즉시 그 말에 따랐다.
만약 지금의 사람이라면 번거로움이 아주 컸을 것이다.
첫째, 탐욕이 끝이 없다. 수정 광맥을 발견했는데 겨우 2개만 취하겠는가?
둘째, 내가 주운 것인데 왜 반납하는가?
셋째, 당신이 뭔데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말하는가?
넷째, 심산의 미녀라면 신선인가 요괴인가 아니면 색(色)인가? 일으킨 마음이 많고도 많다.
다섯째, 신선을 만났다고 믿는다 해도 내가 돌아오면 당신이 이곳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릴 것인가? 등등이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은 제도하기가 아주 어렵다.
일념 사이에 17~18개의 ‘횡향(橫向)사유’가 나오는데 또 ‘종향(縱向) 사유’가 있어 전진하지 못하고 원래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데 바로 시야가 좁다.
하지만 개상은 지금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는 본래 보물을 가지려는 마음이 없었고 또 수많은 것들 중 겨우 2개만을 취했을 뿐이다. 신선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안목이 아주 원대했다.
또 골짜기에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없자 그제야 돌아왔다. 산속에서 미녀를 만나자 속으로 신선임을 알고 의심하지 않았다. 두 마디 말도 필요 없이 바로 주제로 들어가 장생(張生)의 비법을 구했다. 여선(女仙) 역시 솔직하게 “아직 이 물건을 취해선 안 되니 중단하도록 권하러 왔다”고 했다. 곳곳마다 음미할 대목이 아주 많다.
개상은 복이 있어서 수정 광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이후 신선을 만났다. 일에는 마땅히 분수가 있고 사람에게는 화복(禍福)이 있게 마련이다. 개상은 수정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에 도(道)와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또 이익에 담담했기에 수정을 돌려놓은 후 다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일반 세인이라면 이익에 미혹되어 오직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있단 말인가?”라고 했을 것이다. 또 얻음이 꼭 ‘복(福)’이 아니고 잃음이 꼭 ‘화(禍)’가 아님을 모른다. 먼저 얻었으면 나중에 잃어야 하는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는다.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이 아닌 것을 얻으면 반드시 얻고 나서 잃게 되며 억지로 얻어도 역시 억지로 잃게 마련이다.
3. 사람은 ‘신통’에 미혹되나 득도자는 번거롭다
개상은 또 띠 풀 위에 닭을 구워도 닭만 익고 풀은 타지 않게 할 수 있었고 마당에서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었다. 또 사람이나 가축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었고 변화하고 은신할 수 있었으며 신족통(神足通)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기고 종종 부러워한다. 하지만 득도(得道)한 사람에게는 번거롭기 그지없다. 이런 얽매임을 피하기 위해 종종 ‘시해(尸解)’하는 것이다.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남겨놓기 위해 여러 가지로 화현(化現)하는데 가령 “낮에 무창에서 죽었지만 저녁에 이미 건업(建業)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神)의 본의는 신통(神通)을 펼쳐 보이려는 게 아니라 인류가 저열(低劣)한 것을 보고 승화할 마음이 생기게 하려는 것이다. 또 신통을 통해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수련의 길로 걸어가도록 이끌 수 있었다.
한 수련자로서 만약 사람의 사유를 벗어나지 못하면 여전히 사람인데 어디에 공능과 신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신통(神通)이란 신계(神界)의 이치에 통달했다는 뜻이니 사람더러 그렇게 많은 것을 알게 할 수는 없다.
역대로 도를 얻은 이들은 매번 한 단락의 역사를 지나왔고 또한 일부 도리를 깨달아 여러 차례 “더욱 젊어졌다.” 하지만 진수(真修)하지 않는 사람은 대도(大道)를 버리고 소술(小術)을 추구하느라 바쁘니 이는 수련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15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