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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심련(心蓮)

【정견망】

북송(北宋)의 역학자 소옹(邵雍 소강절)은 《매화시(梅花詩)》 첫 편에서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사람이나 돌아가고 몇이나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라고 노래했다. 즉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고층공간에서 왔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누가 떠났고 누가 돌아갔는가? 바로 한 쌍의 고사성어가 이 문제를 점화해준다.

먼저 ‘종선여류(從善如流)’란 《좌전(左傳)-성공8년》에서 유래한 성어로 진(晉)나라 대장 난서(欒書)가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하던 중 전공을 세우는데 급급하지 않고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선(善)을 선택했다. 세인들이 그를 칭찬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의미는 “선량하고 정확한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시원시원하고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종선여류는 바로 마음을 닦아 본성을 기르고 일마다 안으로 찾아 천도(天道)를 선택해 몸을 편안히 하고 명을 세우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덕행(德行)이다.

두 번째 성어는 ‘수파축류(隨波逐流)’로 출전은 《사기-굴원가생열전》이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어찌 그 흐름을 따라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가?” 나중에 이 성어는 원칙이나 주견이 없이 세상흐름에 따라 부침하는 것을 비유했다.

굴원은 혼탁한 속세란 현실 앞에서 선한 말을 따르지 않고 탐욕으로 하늘의 이치를 저버리고 수파축류하는 사람들을 내심으로 불쌍하게 여기며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이 거짓말에 속아서 흐름에 휩쓸리는 데 습관이 되면 장차 사람의 내면을 타락시키고 독립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상실해 하늘로 되돌아갈 희망이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두 고사성어 모두 ‘류(流)’자를 포함하고 있으나, 표현된 함의는 완전히 상반된다.

자신의 사욕(私慾)을 버리고 진정으로 본성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할 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볼 수 있고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판단을 내린 후 즉각 이 생각을 지켜내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종선여류다. 그러나 “물 흐르듯 시원시원하고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전제는 바로 자신의 사욕을 버려야 한다. 사심(私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종선여류’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종선여류’의 ‘류’는 쉽사리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파축류’의 원인 역시 바로 사람의 사욕에 의해 생겨난다. 그러므로 사물의 본질을 더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원칙 없고, 주견 없게” 되는데 이 ‘수파축류’의 ‘류’는 확실히 아주 쉬워서, 자신의 덕행에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욕망을 방종해서 곧 이렇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흐름은 완전히 달라서 하나는 하늘로 돌아가지만 하나는 땅으로 내려간다. “생명은 본래 천상의 신선(仙)”이라고 한다.

종선여류하는 사람은 천도를 존중하고 따르며, 본성의 선을 따르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갖 고생을 겪으며 후천적으로 형성한 사욕을 버리고, 결국에는 천상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반면 ‘수파축류’하는 사람은 자신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사욕을 내려놓지 못하고 점차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어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언제나 반본귀원(返本歸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옛사람들이 도(道)와 덕(德)을 중시했던 원인이다. 그것은 단순히 일종의 행동규범인 것만이 아니고 또 단지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만이 아니다. 도(道)는 만물을 낳고, 덕(德)은 만물을 기르니, 생명의 진정한 흐름은 물결치는 대로 도(道)에서 점차 멀어져가는 방향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퇴보다. 생명의 진정한 진보는 되돌아가는 것으로 자신이 온 곳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본성을 각성한 것으로, 자신의 천상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매번 ‘션윈(神韵)’을 볼 때마다, 큰 막이 열리면 천국세계의 아름답고 수승(殊勝)한 장면이 펼쳐지는데, 신선들이 잇달아 천상의 집을 떠나 인간세상까지 층층 아래로 내려온다. 이는 우리 생명의 내원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생각이 나오게 한다. 감동한 사람들은 눈물을 금치 못하지만, 사실 생명은 모두 생명의 본원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다만 어떤 사람은 아직 깨어나지 못해 여전히 속세에서 미혹되어 있을 뿐이다. ‘션윈(神韵)’은 바로 인간 세상에서 예술의 형식으로 세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놓치지 말라고 일깨워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