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정견망】
《서유기》를 본 사람들은 당승(唐僧)이 한 부의 경서(經書)를 얻기 위해 16년의 시간을 보낸 것을 알 것이다. 이들 당승 사도(師徒)들은 구구 81난(難)을 겪으면서 서로 의지하며 줄곧 각종 마난(魔難)을 돌파하고 여러 차례 위험한 관(關)을 넘겼다. 이 과정에 무수한 신기한 변화를 겪었으며 수없이 많은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는 경험을 했고 마침내 진경(真經)을 얻었다.
되돌아 역대 종교 수련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한 사찰에 한 세대의 방장(方丈)이 있다. 역시 수십 년 또는 몇 백 년을 거쳐서야 비로소 한 사람이 진정한 것을 얻도록 전할 수 있었다. 다른 승려나 도사들은 모두 진정한 것을 얻은 이를 위한 조연이었다.
오늘날 우리 대법도(大法徒)를 보면 우리가 법을 얻기란 쉬웠다. 오직 우리가 배우려고만 한다면 곧 진경(真經)이 있다. 하지만 얻기 쉽다고 해도 수련하려면 어려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이런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지 지금까지 이미 30년이 넘었지만, 우리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의 수련이 표준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이 마난 중에 곤두박질치고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고, 또 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 속에서 대법을 떠났으며, 또 많은 대법제자들이 지금까지도 배회하면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당승은 경을 얻기 위해 81난을 겪었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의 길이 아닌가? 만약 도(道)를 닦으려는 진심(真心)이 없다면 어찌 진경(真經)을 얻을 수 있는가? 만약 부처님께 경앙(敬仰)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당승이 고난에 처했을 때 어찌 “차라리 서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다 죽을지언정 동쪽으로 반걸음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또 그의 도제들은, 사부가 마난에 봉착했을 때, 각기 신통을 발휘해 사부를 고해(苦海)에서 구해낸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세 도제(徒弟)의 표현은 바로 오늘날 우리 대법도들에게 자신의 정각(正覺)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닌가? 손오공은 비록 공력(功力)이 뛰어났지만 사부가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보잘것없게 되었고, 사오정은 16년간 아무런 원망이나 힘들다는 말도 없이 짐을 메어 마침내 정과(正果)를 얻을 수 있었으며, 저팔계는 색심(色心)과 식탐을 없애지 못해 최후에는 정과를 성취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이 한번 깊이 생각해보기에 충분한 것이 아닌가?
어릴 때 《서유기》를 보면서, 늘 의문이 있었는데, 당승 사도 넷이 서천(西天)에 가서 경전을 가져오는데, 손오공은 왜 그렇게 큰 능력을 지녔음에도 당승을 업고 단번에 대뢰음사(大雷音寺)에 도착하지 못하는가? 왜 하필 그렇게 많은 고난과 위험을 겪으며 16년 동안 고생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했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정말 이렇게 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가 무엇 하러 《서유기》를 보겠는가? 자세한 스토리도 없고,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도 없는데 그럼 뭘 본단 말인가? 즉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이고 싫증내지 않고 여러 번 볼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수련의 관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사람의 수련은 마난 속에서 그 마음을 견정하게 하고, 업의 빚을 갚아야 하며, 일체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매 하나의 난(難)과 관(關)은 각종 사람마음을 겨냥한 고험으로, 그것은 정말 구구 81난이다. 단 하나의 난(難)이 부족해도 안 되는데, 그럼 모두 보충해야 한다.
《서유기》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는 바로 수련의 엄숙성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으로 오늘날 대법도(大法徒)들이 설마 한 평범한 수련인만도 못하단 말인가? 정법(正法)이 지금에 이르러 우리는 이미 진경(真經)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수련의 길은 진경인 《전법륜》에 따라 수련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진경에 따라 자신을 요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수련 성취한 후에는 반드시 큰 과위를 지닌 불도신(佛道神)이 될 것이다!
정법이 오늘에 이르러, 나는 반드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고 나태해서는 안되며, 더욱 정진해야 한다. 대법제자 수련의 길은 이미 아주 좁아져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련의 길은 피라미드와 같기 때문인데, 더욱 높아질수록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더욱 바르게 걸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두 하루아침에 훼멸되기 때문이다.
수련의 길에서 나는 자신이 사부님의 요구와 여전히 차이가 아주 큰 것을 안다. 특히 개인수련 분야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마음의 집착이 있다. 하지만, 나는 신(神)의 길 위에서 분발하며 바짝 따라갈 것이다. 나는 반드시 자신이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의 집착을 전부 닦아버리고, 은사(恩師)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최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을 잘 닦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서약을 실현할 것이다.
《서유기》에서는 “무릇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中土)에서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正法)을 만나기란 어려우니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면 정말 큰 행운이다!”라고 했다.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은 이 만고(萬古)에도 다시 만나기 힘든 기연을 절대적으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역주: 본문의 필자는 저팔계가 정과를 얻지 못했다고 보았지만 서유기 원문 마지막회를 보면 당승은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이 되고 손오공은 투전승불(鬥戰勝佛)이 되며 저팔계는 정단사자보살(淨壇使者菩薩)이 된다. 사오정은 금신나한(金身羅漢)이 된다. 또 여기에 나열된 순서가 수련 성취한 과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면 당승-손오공-저팔계-사오정의 순서로 층차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저팔계가 비록 많은 집착이 있었지만 서천취경(西天取經) 과정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공이 과실을 넘어서 정과를 얻었다고 보아야 한다. 심지어 당승을 태우고 다닌 백마도 천룡광력보살이 된다. 서천취경에 참가한 다섯 모두 정과를 얻어 성인이 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3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