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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瑤池)의 전설

자소(紫霄)

【정견망】

시사(詩詞)나 가부(歌賦)에서 수많은 문인들이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에 서왕모의 ‘요지(瑤池)’가 있다. 그렇다면 이 정토(淨土)는 천계(天界)의 어디에 있는 걸까?

《산해경교주(山海經校注)》에 따르면, “서왕모는 곤륜(崑崙)을 궁궐(宮)로 삼지만, 또 궁을 떠나 별개의 굴(窟)을 가지고 있어 쉴 곳이 있어 하나의 산에만 머물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사기・대완열전론》에 따르면 “곤륜산은 높이가 2천5백여 리나 되며, 해와 달이 서로 피해 숨어서 빛을 비추는 곳이다. 그 위에 예천(禮泉), 요지(瑤池)가 있다.” 이를 통해 본다면 요지란 바로 곤륜산 정상에 있고 바로 서왕모가 머무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곤륜산맥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푸른 못이 있어서 요지라 불린다. 이곳이 고서에서 묘사한 그 곤륜선산(崑崙仙山)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래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그곳에 갔지만 전설의 신선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선산(仙山)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공간의 사물만 보이고 다른 공간의 사물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요지의 선경(仙境)은 이 공간에 있지 않다.

천 년 동안 곤륜산을 둘러싸고 줄곧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주목왕(周穆王)의 선연(仙緣)

서진(西晉) 때 한 도굴범이 위(魏)나라 왕의 묘를 도굴하다 관청의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이 무덤에서 《죽서기년竹書紀年》과 《목천자전穆天子傳》이란 고서 두 권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목천자전》은 서주(西周) 시기 목왕의 전설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주나라 목왕(周穆王, 기원전 약 1026년~약 922년)은 성이 희(姬), 이름은 만(滿)인데 ‘목천자(穆天子)’라고도 한다. 서주(西周)의 다섯 번째 왕이다. 55년간 재위해서, 서주에서 가장 오랫동안 천자로 있었다.

《목천자전》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길일인 갑자(甲子)일에, 천자가 서왕모를 방문했다. 흰색 규(圭)와 검은색 옥을 들고 서왕모를 뵙고 좋은 비단 삼백필을 바쳤다. 서왕모는 두 번 절하고 받았다. 을축일에 천자가 서왕모의 요지에서 술을 마셨다. 서왕모가 천자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흰 구름은 하늘에 떠 있고,
산봉우리 드높이 솟았는데.
그대 가시는 길은 아득하고,
산과 내가 우리 사이를 떼어놓았네.
바라건대 그대 오래 사시어,
다시 오실 수 있기를.”

이에 왕이 이렇게 화답했다.

’동쪽의 내 땅으로 돌아가,
나라를 잘 다스리리.
만백성이 잘 살게 되면
그대를 볼 수 있으리.
삼년이 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

기원전 963년경, 주목왕은 서쪽으로 천하를 순시하면서 키가 크고 살찐 준마 8필을 타고 호탕한 수행원들과 함께 천산(天山)을 지나고 곤륜에 올라 서왕모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서왕모에게 백규(白圭) 현벽(玄璧)과 채색 띠 등을 바쳤다.

서왕모는 요지에서 연회를 열어 주목왕을 대접하고,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생황과 피리를 불며, 연회에서 양측은 노래로 서로 대답하고, 3년 후에 요지에 모이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목왕은 약속을 어겼다.

서왕모는 주목왕과 인연을 맺어 그를 신선이 되게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주목왕은 강산과 사직을 내려놓지 못해 마음에 집착이 있었고, 동쪽으로 돌아갈 일을 걱정했다. 그는 내심 다른 일면은 신선에 대한 추구를 놓지 않을 수 없었으니, 서왕모에게 3년만 기다리면 자기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들이 안정된 생활을 한 후에 다시 곤륜으로 돌아가 선인의 인연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瑤池阿母綺窗開  요지의 서왕모가 비단 창문을 여니
黃竹歌聲動地哀  황죽가 노래 소리 슬프게 땅을 울리네
八駿日行三萬裏  여덟 필 준마는 하루에 삼만 리를 간다는데
穆王何事不重來  목왕은 무슨 일로 다시 오지 않는가?

요지의 서왕모는 3년을 기다렸지만, 주 목왕은 끝내 약속을 어기고 돌아오지 않았다. 자비로운 왕모는 주 목왕이 신선이 될 인연이 스쳐 지나간 것을 슬퍼했고, 〈황죽가〉를 슬피 불렀다.

주목왕은 지혜가 넘치고 사방을 다스리며 위세를 떨친 군왕이었지만 일념의 차이로 신선이 될 인연을 잃었다. 이 때문에 탄식하니 기연이란 일단 한번 지나가면 후회해도 늦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