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劉曉)
【정견망】
한(漢) 무제(武帝)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로, 문치(文治), 무공(武功), 과학기술,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겨 후대의 찬탄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간언을 잘 받아들였고 도(道)를 좋아했으며 신령한 일을 믿었다. 남송[南宋 역주: 남북조 시기 유유가 세운 남조 송나라를 말함. 중국에서는 후대 송조(宋朝)와 구별하기 위해 흔히 유송(劉宋)이라 부른다]의 종실인 유의경(劉義慶)이 쓴 《유명록(幽明錄)》에 한 무제가 겪은 기이한 이야기들이 기술되어 있다.
어느 날 한 무제가 미앙전(未央殿)에서 군신들과 연회를 열고 있었는데,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노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를 올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한 무제가 고개를 들어 아래를 바라보았으나 말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보니 대들보 위에 늙은이가 한 명이 있었는데 키가 겨우 8, 9 촌이며 온 주름투성이에 백발에 목발까지 짚고 있어 무척 나이가 들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방식으로 나타난 이 노인을 보고 한 무제는 짐짓 그리 놀라지 않은 듯이 물었다.
“노인의 성은 무엇이며? 어디에 사는가? 무슨 병고(病苦)가 있기에 짐에게 하소연하는가?”
그러자 노옹은 대꾸 없이 기둥을 따라 내려와서 지팡이를 내려놓고 무제에게 고개 숙여 절을 올렸지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지붕을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무제의 발을 가리키고, 그 후 갑자기 사라졌다.
한 무제는 매우 놀랐고 노옹이 누구인지를 몰라 동방삭(東方朔)을 불러 자문을 구했다. 《한서》에 따르면 동방삭은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형수가 키웠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을 익혔으며, 22세에 상소를 올려 한무제(漢武帝)에게 자천(自荐)하여 궁에 불려가 황제를 모셨다. 동방삭은 기회를 잘 잡고 자신의 성격이 익살스럽고 언사가 민첩하며 많은 지식을 이용하여 직언을 하곤 하였다.
또 《태평광기》에 따르면 동방삭은 천상의 목성(木星)이 인간세계로 내려온 사람으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일찍이 한 무제에게 신선의 존재를 알렸지만, 신선을 만날 수 있는 전제는 ‘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백도 “세상 사람들은 동방삭을 알지 못하니 금문에 깊이 숨은 사람은 떨어져 온 신선이다”라는 시를 썼다.
동방삭은 한 무제에게 이 노인이 물속의 정령(精靈)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름은 ‘조(藻)’라 하며 여름에는 밀림 속에 살고 겨울에는 깊은 강물에 숨어 산다고 했다. 동방삭은 그가 한 무제를 찾아온 이유는 최근 무제가 자주 나무를 베어 궁실을 만들어 그의 거주지를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고개를 들어 대들보를 바라보다가 다시 무제의 발을 가리켰는데, ‘발’은 다른 말로 ‘족(足)’이라고 하는데, 무제가 궁궐을 짓는데 여기서 만족(足)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 무제는 그제야 문득 크게 깨닫고 궁궐 공사를 중지했다.
그 후 한 무제가 배를 타고 호자하(瓠子河 주: 오늘날 산동성 하택)로 놀러갔다가 물밑에서 현악기 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대들보 위의 그 노옹과 여러 소년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몸길이가 8~9촌에 하얀 띠가 달린 진홍색 옷을 입고 있었고, 옷에는 화려한 패물이 달려 있었다. 그중 키가 한척이 좀 넘는 소년이 사뿐사뿐 걸어 나왔는데 옷이 물에 젖지 않았고 또 몇 사람은 악기를 들고 있었다.
막 식사를 하려던 무제는 식사를 중단하고 노옹 등에게 자신의 책상 앞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무제가 말했다.
“짐이 물밑에서 주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는데 어르신이었군요!”
그러자 노옹이 대답했다.
“노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하소연했는데, 다행히 폐하께서 천지의 은혜를 베풀어 궁실을 짓지 않으셨기 때문에 노신의 저택을 보전할 수 있게 되어 기뻐서 주악으로 경축하고 있사옵니다.”
한 무제도 기뻐하며 “짐을 위해 연주할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노옹이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러자 키가 한 자 남짓한 소년은 금슬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했다.
“천지가 덕이 있으니 인자함이 내려오네,
민심을 걱정하여 도끼를 멈추고,
굴을 보호하여 미천한 몸을 보호하니,
천자의 장수를 기원하노라.”
노랫소리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은데 맑고 깨끗하게 메아리쳐 돌았으며 현악과 노랫소리가 모두 듣기 좋았다.
한 무제가 듣고는 기분이 매우 유쾌해져서 잔을 들어 이 아름다운 선물에 감사하며 술을 내렸다. 노옹 등은 일어서서 사례하고 잔을 받아 각자 마셨다. 그 후 노옹은 무제에게 보라색 소라를 바쳤는데, 안에는 소기름 같은 것이 있었다. 무제는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노옹이 말했다.
“동방 선생은 분명히 아실 겁니다. 게다가 더 진귀한 보물을 폐하께 바칩니다.”
노옹이 사람을 시켜 동굴의 보물을 가져오게 하자, 한 사람이 명령을 받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돌아왔는데, 손에 몇 치의 크기의 진주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밝고 빛났으며 이름을 ‘동혈주(洞穴珠)’라 했다. 한 무제가 손에 들고 매우 좋아했다. 노옹 등은 보물을 바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한나라 무제는 그들이 신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동방삭에게 보라색 소라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고, 동방삭은 교룡(蛟龍)의 골수라고 알려주면서 얼굴에 바르면 아름답게 할 수 있고 임신한 여자가 쓰면 출산이 잘 된다고 했다. 마침 얼마 후 무제의 비빈이 난산으로 고생할 때 교룡 골수를 사용했는데 과연 순산했다. 무제는 이것으로 얼굴에 발라 얼굴색이 매끄럽고 부드럽게 되었다. 무제는 자신이 보물을 얻어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동방삭의 박식함에도 감탄했다.
분명한 것은 한 무제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두 가지 귀한 보물을 얻은 것은 그가 간언에 따라 궁궐 공사를 중단해 복을 받은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