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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마음에서 생기니 생각이 올바르면 절로 사라져

원형(源馨)

【정견망】

《장자·잡편·경상초》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남영주(南榮趃)가 말했다. 병이 난 마을 사람에게 이웃이 문병을 갔을 때 병이 난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을 정도면 그럼 아직 중병(重病)에 걸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병이 난 진정한 인과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개선하거나 치유될 가망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왜 병이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위험한 것이다.

한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삼국시대 위나라에 양탕(楊宕, 220~280)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조의 신하로 군수물자를 관리했지만 늘 군수품을 몰래 빼돌려 자기 주머니를 채우곤 했다.

그런데 든든한 뒷배였던 숙부 양수(楊修)가 조조에게 처형당한 후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을까 봐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조조가 군령을 어긴 죄로 양수를 처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군량미 수송을 틈타 다시 크게 한 몫 챙길 계책을 세워놓고 나이가 많다는 것을 핑계로 사직한 후 귀향하려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직후 가슴이 팽창하고 답답한 괴질이 걸려 침대에 눕고 말았다. 그는 여러 의원을 청해 치료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 양탕은 명의 화타(華佗)가 인근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화타에게 왕진을 청했다. 하지만 양탕의 비리에 대해 알고 있었던 화타는 여러 가지 구실을 대며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양탕은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보내 화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게 했다. 화타는 아들의 간절함을 보고 함께 왕진하러 갔다. 화타는 양탕에게 처방전 두 장을 주면서 순서대로 복용하라고 했다.

화타가 떠난 후 양탕이 첫 번째 처방전을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오(二烏 역주: 오두와 초오를 말함), 과로황(過路黃), 향부자(香附子), 연교(連翹), 왕불류행(王不留行), 법하(法夏 법제한 반하), 필발(畢拔), 주사(硃砂).”

한문 문장에 정통한 양탕은 이 8가지 약재의 첫 글자를 연결해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이과향련, 왕법필주”[二過香(相)連,王法畢朱(必誅)]였기 때문이다. 즉,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왕법으로 반드시 주살될 것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양탕은 마음속의 속셈을 화타에게 들키자 이마에서 식은땀이 솟았지만 가슴은 상당히 편해졌다. 양탕은 이에 군량미를 크게 한탕 착복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이어서 그는 다시 두 번째 처방전을 꺼내 읽다가 갑자기 “악!”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피를 토하며 혼절했다. 가족들이 이 모습을 보고는 당황해서 모두 크게 울기 시작했다.

처방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상산(常山), 유향(乳香), 관계(官桂), 목향(木香), 익모초(益母草), 부괴(附塊)”

이 여섯 가지 약재의 첫 글자를 연결하면 ‘상유관목익부[常(賞)乳(汝)官(棺)木益(一)附(副)]가 된다. 즉, “당신에게 관을 만드는 나무 한 벌을 상으로 주겠다”는 뜻이다. 양탕이 이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심장으로 치밀며 가슴이 덜컹하면서 기절했던 것이다.

한참 후 가족들의 곡소리에 놀란 양탕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눈을 뜬 후 가슴이 편하고 몸이 상쾌해진 것을 느꼈다. 병이 완전히 좋아진 것이다.

이때 화타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와서는 양탕에게 말했다.

“당신의 가슴이 답답한 것은 뱃속에 어혈이 뭉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탐욕으로 기가 뭉쳐서 생긴 것입니다. 지금 기는 땀과 함께 배출되었고 어혈도 모두 토해냈으니 뭉친 덩어리가 이미 제거되었소. 나쁜 병은 이미 제거되었으니 조금만 조리하면 병이 나을 겁니다.”

이때부터 양탕은 더는 군수품을 빼돌리려 하지 않았다.

신의(神醫) 화타는 양탕에게 아무런 약도 쓰지 않고 근본적으로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는 전통문화 속에서 중의(中醫)가 사람을 치료하는 절묘한 지점이다. 질병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표상(表象)에 불과하며 사람의 마음이 나쁘게 변한 것이야말로 근본이다. 그러므로 하의(下醫 실력이 떨어지는 의사)가 병을 치료함에 겉만 다스리고 근본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통 중의는 사실 도가(道家) 수련문화에서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의 하나로 진짜 정수(精髓)는 안으로 찾아 마음을 닦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마음이 바로잡히면 자연히 우주대도(宇宙大道) 표준의 운행법칙에 동화하게 되어 인체에 이상한 병변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안으로 찾아 마음을 관찰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겉으로 드러난 질병이 촉발된 진정한 원인을 똑똑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심에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때면 자연히 변이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때 병변(病變)이란 표상은 독근(毒根)이 존재하지 않으니 자연히 소실된다. 만약 표상만을 중시하고 사욕(私慾)을 탐한다면 반드시 내심을 지키지 못하고 오염되어 변질될 것이다. 미혹에 빠져도 깨닫지 못하고 외부의 평범한 사람이 어찌 자신의 내심을 보다 깊이 아는 우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전통문화의 근본을 잃으면 사람들은 수련의 내함(內涵)을 이해할 수 없고 반본귀진(返本歸真)해서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게 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덕(德)을 중시하고 마음을 닦는 수련문화만이 인류를 진정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겁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