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치국대도(治國大道) 1: 황도무위(皇道無為)

이도진(李道真)

【정견망】

1. 황도무위(皇道無為)

필자는 중화 역사 속에서 치국의 도[治國之道] 발전과정을 정리하고 아울러 각가(各家)의 치국사상(治國思想) 모형을 제련하면서 현재 인류에게 하나의 경고이자 귀감작용을 하는 동시에 가장 관건적인 역사시각에 정확하고 지혜로운 선택으로 마귀(魔鬼)와 한패가 되지 말며, 자신을 위해 광명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길 바란다. 시간은 이미 그리 많지 않으니 일단 주저하다 기회를 놓치면 장차 영원히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해, 중화 군주치세(君主治世)의 역사과정 속에서 치국의 도는 황도(皇道), 제도(帝道), 왕도(王道), 패도(覇道) 4개의 과정을 거쳐 왔다. 우리는 우선 중화 역사의 맥락을 따라 황・제・왕・패(皇・帝・王・霸) 사이의 구별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원고(遠古)시기에 남겨진 전설에 따르면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하고 여와(女媧) 및 뭇신들이 사람을 만든 이래 현재 우리가 아는 가장 이른 중화문명의 역사는 바로 삼황(三皇)의 역사다. 삼황이란 말이 가장 처음 등장한 것은 《주례(周禮)》에서 볼 수 있고 그 다음 《여씨춘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은 《사기》〈진시황본기〉에서 일찍이 이사(李斯)의 말을 인용해 “고대에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太皇)이 있었는데 태황이 가장 귀합니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천황, 지황과 태황[인황(人皇)]을 합해 삼황이라 하는데, 이 삼황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양한 설들이 존재한다. 또 어떤 이는 삼황을 전삼황(前三皇), 중삼황(中三皇), 후삼황(後三皇)으로 나눠 모두 구황(九皇)이 있었다고 한다. 총체적으로 삼황에 관한 설이 아주 많지만, 그것이 대표하는 것은 우리 이번 차례 오천년 문명 이전의 한 단락 아주 길고 신비한 사전문명(史前文明) 시기로 시간이 차이가 아득히 멀고 또 오래 되었다.

《춘추위(春秋緯)》의 기록에 따르면 원고(遠古) 태황씨(泰皇氏) 시기부터 시작해 노나라 애공(哀公) 14년(BC 481년)까지 모두 10기(紀)를 지났는데 326만7천 년을 지났다고 한다.

삼황시기의 구체적인 시간 간격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삼황시기는 아득히 멀며 단지 세 분의 ‘황(皇)’이 탄생한 것에 그치지 않으며 그것이 아주 만장(漫長)하고 신비한 사전문명시기를 대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유소씨(有巢氏), 수인씨(燧人氏), 복희씨(伏羲氏), 여와씨(女媧氏), 신농씨(神農氏)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삼황시기의 황(皇)에 속한다.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황(皇)’이란 우주 고층에서 온 신령(神靈)으로, 그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을 때 인간의 ‘황’이 되어, 인류에게 지혜와 문화를 전수했으며, 인류를 가호해 몽매(蒙昧)에서 걸어 나와 문명으로 진입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중화문화는 하늘에서 내원하고 신(神)에서 내원한 것으로, 절대 속인의 지혜로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신전문화(神傳文化)라 부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황(皇)’에 담긴 함의에 대해 살펴보자.

《관자•병법(兵法)》에서는 “일(一)을 밝히는 것이 황(明一者皇)”이라 했다.

선진(先秦 역주: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 시기에는 ‘도(道)’를 ‘태일(太一)’이라 했으며, 여기서 일(一)이란 대도(大道)를 말한다. 그러므로 대도를 환히 드러내 혼돈(混沌)과 미명(未明)의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이 바로 ‘황(皇)’이다.

또, 《춘추운두추(春秋運斗樞》에서는 “황(皇)은 하늘을 대표하는데 천도(天道 하늘의 도)는 말이 없지만 사계절이 순환하고 만물이 서로 생성되게 한다. 삼황(三皇)은 무위의 다스림[無爲之治]을 시행하고 말 없는 가르침[無言之敎]을 실행하는데 극히 높은 도덕을 갖췄기에 그들이 한 말을 백성들이 모두 위배할 수 없었다. 마치 황천(皇天)과 같기 때문에 황이라 부른다.”[1]라고 했다.

《백호통의(白虎通義)》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황(皇)이라 불리는 사람은 찬란한 빛이 나며 무위의 다스림을 행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실행해 대도(大道)로 만물을 화육(化育)하니 천하 백성이 모두 그를 위배할 수 없다. 만약 인위적인 수단으로 천하를 다스려 그중 어느 한 백성의 생활을 간섭하기만 해도 모두 ‘황(皇)’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시 천하에는 대도(大道)가 행해지고 황금을 산에 버려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고, 진주와 옥석(玉石)을 물속에 버려도 아무로 건지지 않으며, 백성들은 동굴에 살면서 가죽으로 옷을 입고 감로(甘露)를 마시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근심도 없고 걱정도 없으며 욕망이나 구하는 것이 없어 천지신령(天地神靈)과 서로 통했다.”[2]

기록에 따르면 사전(史前) 태고(太古) 시기에 인류의 초기 백성들은 순진(純真)하고 삿됨(邪)이 없었고 사욕(私慾)이 없어서, 자연히 서로 하나로 화합했으며 마치 한 장의 백지장처럼 단순했다. 그때 인류는 홍몽(鴻濛)의 시기에 처해 문명(文明)이 없었기에 마치 갓난아기처럼 자연과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신(神)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에서 ‘황(皇)’으로 변신해 하늘의 지혜를 인류에게 전수해 혼돈하고 미명(未明)한 세계를 환히 밝히셨으니, 마치 부모가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처럼 인류를 이끌고 만장한 역사시기로 걸어 들어가 문명에 진입하게 했다.

그때 대지(大地) 위에는 도처가 다 기이한 꽃과 열매였고 감림(甘霖 단비)와 예천(醴泉 좋은 샘), 신기한 짐승과 새들이 있어서, 환경은 아름답고 화려했으며 만물이 조화로워서 서로 해치지 않았다. 그때 인류는 신통(神通)을 갖춰 신(神)과 아주 가까웠으며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풍족해서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었고 재난의 고통도 없었다. 생활도 간단하고 행복했다. 그때 인류는 정부(政府)가 없어도 도(道)에 따라 행동했으니 다스릴 필요가 없었다. 이는 마치 황제(黃帝)가 꿈에 놀러갔다고 했던 ‘화서신국(華胥神國)’과 같았다.

《제왕세기(帝王世紀)》 등 고서에는 삼황시기 화서국(華胥國)에 화서씨(華胥氏)란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화서씨가 화서국의 뇌택(雷澤) 근처에서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자신의 발을 거대한 발자국 위에 올려놓자 이로 인해 하늘의 감응(感應)을 받아 회임하여 복희씨를 낳았다. 복희씨는 다섯 천제의 하나인 동방(東方) 창제(蒼帝)가 인간에 감응해 태어난 삼황의 한분으로 인류에게 팔괘 등 천기(天機)와 대도(大道)를 남겨주었다.[3]

《열자•황제편》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황제(黃帝)가 낮에 잠을 자다가 꿈에 상고시대 신국(神國)인 화서국(華胥國)에 놀러갔다. 그 나라에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도 모든 것이 자연스레 합일했고 백성들은 사욕(私欲)이 없었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함도 없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등 일체 고통이 없었으며 삶에 연연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고 초자연적인 신력(神力)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수화(水火)와 자연만물 등 그 무엇도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하나의 기묘한 극락(極樂)국토였다. 황제는 꿈에서 깨어난 후 몸을 기르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깨달았고 도로 나라를 다스렸다. 이렇게 28년이 지나자 천하게 크게 다스려졌고 화서국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이상적인 나라가 되었다.”[4]

《회남자•본경훈(本經訓)》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옛날 용성씨(容成氏) 시대에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마치 기러기가 대열을 이룬 것처럼 장유(長幼)의 순서를 지켜 걸었고, 외출할 때면 아기를 아무 나무 위 집(巢屋)에 두어도 아무런 위험이 없었다. 먹다가 남은 양식은 아무데나 밭두둑 위에 놓아두어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길을 갈 때 호랑이나 표범의 꼬리를 잡아당기거나 살무사나 뱀을 밟아도 위험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자연스럽고 즐겁게 살았으며 무슨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없었다.”[5]

이상의 묘사를 통해 우리는 황도(皇道)로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의 사회 상태에 대해 일부를 알 수 있다. 즉, 아주 먼 옛날 인류는 심령(心靈)이 순진하고 그 어떤 사심이나 욕망이 없었으며 후천적인 오염도 없어서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자연히 몽매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때 고층의 신령(神靈)이 대지에 강생해 인간세상에서 ‘황(皇)’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황천(皇天)과 마찬가지로 만장(萬丈)의 빛을 뿌리며 천도(天道)・진기(真機)를 가져다 인류에게 문명과 지혜를 전수했으며, 말없는 가르침을 실행하고 무위의 다스림을 시행해 천하에 대도(大道)가 행하게 했다. 때문에 그 당시 인류는 천지신령(天地神靈)과 서로 통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 당시 지상의 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웠으며 사람이 자연과 하나로 합일해 아무런 고통이나 근심걱정이 없었고 생활이 아주 간단하고 즐거워서 욕망이나 구함도 없었다.

주:

1 《풍속통의•1권》에 인용된 《춘추운두추(春秋運斗樞)》:「皇者天,天不言,四時行焉,百物生焉。三皇垂拱無為,設言而民不違,道德玄泊,有似皇天,故稱曰皇。」

2 《백호통의》:「號之為皇者,煌煌人莫違也。煩一夫、擾一士以勞天下不為皇也,不擾匹夫匹婦故為皇。故黃金棄于山,珠玉捐於淵,岩居穴處,衣皮毛,飲泉液,吮露英,虛無寥廓,與天地通靈也。」

3 《제왕세기》:「太昊帝庖犧氏,風姓也。母曰華胥,燧人之世,有巨人跡,出於雷澤。華胥以足履之有娠,生伏犧。長於成紀。」

4 《열자•황제편》載:「黃帝晝寢,夢遊華胥國。華胥氏之國在弇州之西,台州之北,不知斯齊國幾千萬裡;蓋非舟車足力之所及,神遊而已。其國無帥長,自然而已。其民無嗜欲,自然而已。不知樂生, 不知惡死,故無夭殤;不知親己,不知疏物,故無愛憎;不知背逆,不知向順, 故無利害。都無所愛惜,都無所畏忌。入水不溺,入火不熱。斫撻無傷痛,指擿無癢。乘空如履實,寢虛若處床。雲霧不硋其視,雷霆不亂其聽,美惡不滑其心,山谷不躓其步,神行而已。」

5 《회남자•본경훈》:昔容成氏之時,道路雁行列處,托嬰兒於巢上,置餘糧於畮首,虎豹可尾,虺蛇可蹍,而不知其所由然。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42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