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설법에서 우리더러 처음처럼 수련하라고 하셨다. 막 법을 얻었을 때를 돌아보면 심정이 아주 격동되어 한 가닥 강대한 동력이 우리를 정진하도록 추동시켰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도 모르게 느슨해졌고 최초의 그런 동력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갈수록 저애력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많은 동수들이 나중에는 또 좀 마비되었다. 주변 동수들에게도 끊임없이 문제가 나타났는데 애초에 처음 수련할 때의 그런 심태를 되찾기란 아주 어렵다. 최근에 이 방면에서 약간의 깨달음이 있어 동수들과 자신의 심득을 한번 교류해보고자 한다.
우주에는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이에 대응해 그 어떤 사물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과정이 존재한다. 사람 역시 이러한데 새로운 사물을 보면 흥미를 느끼지만 오래된 사물은 익숙해져서 쳐다보지 않게 된다. 법을 얻은 초기 우리는 법에 대한 갈망으로 모든 게 다 신선해서 우리의 정진을 촉진했지만 이 단락 시간이 지나가면 착실히 수련해야만 한다.
법(法) 배후에는 무궁무진한 내함이 있음을 우리는 다 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수련을 처음처럼 해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평소 법 공부 중에서 법이 당신에게 배후의 내함을 드러내지 않아 당신 역시 법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세상에 올 때의 서약을 잘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이 방면에서 충분히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상 알림은 위타(爲他)하고 무사(無私)한 것으로 잘할수록 법 배후의 불도신(佛道神)과 공명을 일으기 쉽고, 법을 공부하는 과정 중에 갈수록 더 법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 중에서 갈수록 더 자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고 또 안정적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법이 앞에서 전진할 길을 인도해주니 중생을 구도하는 길 역시 갈수록 더 넓어지고 세간에서 일으킨 작용 역시 갈수록 더 커져서 자신도 유사(有私)에서 무사(無私)로 전변되며 최후에 수련 원만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전반 과정은 나날이 발전하는 과정이자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과정이다. 만약 반대로 하면 구우주의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현실속에 반영되는 것은 곧 갈수록 더 속인화 되고 중생구도가 제1위가 아니게 된다. 자신의 절실한 이익에 부합하는 상황 하에서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면 전체적으로 피동적으로 되고 정(情)에 이끌린다. 법 공부 과정에서도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게 되고 법(法) 역시 자연히 당신에게 배후의 내함을 펼쳐주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하나의 좋지 않은 순환이 생겨나는데 자신이 이 틀을 돌파하기란 아주 어렵다. 뛰쳐나와 처음처럼 수련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당신의 명리정(名利情)을 잘라버리고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뛰쳐나와야 한다. 이 과정 중에서 반드시 이지적이고 청성해야 한다. 그 후 다시 법을 공부할 때면 곧 소득이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을 볼 수 없기에 정진하기가 아주 어렵다.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지만 뭔가 어쩔 수 없다고 느낀다. 이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어떤 원인이 자신에게 이런 상태를 조성했을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좋아지고자 하는 바람과 위로 올라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착실하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이때 법을 공부할 때면 곧 법이 당신을 좀 점오(點悟)해 줄 것이다. 당신도 현재 상태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이 과정이 아주 중요한데 바로 마음을 중생구도에 놓아야만 법(法) 배후의 내함이 비로소 당신에게 전개된다. 당신이 속인 중에 있으면서 속인의 친정(親情)과 이익에 이끌린다면 법은 당신에게 사람 이 층차를 뛰어넘는 내함을 전개해주지 않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