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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처장이 한구에서 신선을 만난 이야기

소월(小月)

【정견망】

조문석(曹文錫)은 별호가 무위거사(無爲居士)다. 청조(淸朝) 광서(光緖) 17년(1891년) 호북(湖北) 양신(陽新)현 조가대만(曹家大灣)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홍콩 구룡(九龍)에 정착했으며 2000년 향년 109세를 일기로 홍콩에서 별세했다. 그의 부친은 동맹회 원로인 조아백(曹亞伯)으로 일찍이 손중산 선생이 중화민국을 개창하는데 함께 협력한 바 있다.

조문석은 중화민국 호북성 정부에서 공정처장(工程處長)을 역임했다. 한구(漢口)에서 재직 할 때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하구(老河口)에 ‘용왕 아가씨’가 있는데 진씨(陳氏) 모자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그 집의 가사를 돌보고 생계를 도와주는데 오고 가는 행방이 묘연하고 위험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신통했다. 그렇게 한 지 이미 3년이 되었고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조문석 등 사람들의 미래 벼슬길과 운명을 예언했는데 모두 다 들어맞았다. 1986년 조문석은 이 경험을 대만에서 발행되는 《종교세계》 잡지에 〈우선기(遇仙記–신선을 만난 기록)〉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중화민국 20년(1931년) 장악군(張嶽軍, 또는 장군張群, 조문석 부친의 친구)이 호북성 정부 주석으로 취임했을 때 성(省)정부 공정처장이 사정으로 물러나 조문석이 후임에 임명되었다. 조 처장이 광화현(光化縣)을 시찰할 때 경계쇠(耿季釗 현재 대만대학 교수) 현장(縣長)이 노하구진(老河口鎮) 상공회의소 회장 진화산(陳華山)이 겪은 신기한 이야기를 보고했다.

이 진(鎭)에 진(陳) 씨 모자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인이 그 아들을 따라 들어와서는 자신의 성은 용(龍)으로 세간의 여인은 아니지만 진 씨 가문의 은혜를 갚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금을 땅에 내려놓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 후 자주 진 씨에 가서 장사를 이끌어 여러 차례 이익을 얻게 했고, 마침내 가세가 날로 부유해졌다.

조문석은 진화산 회장의 추천을 받아 그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스스로 사천 아미산에서 수도하고 있으며 지금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지만, 충후(忠厚)한 마음을 지키고 자신의 분수를 편안히 지키면 겁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또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은 세상 사람이 해내기 아주 어려우니 널리 보시를 배풀어 중생을 구제하라고 권고했다. 말을 마치더니 “팍”하는 소리가 나더니 자취를 감췄다.

나중에 악공환(鄂贛皖) 3성 공비토벌 사령부 소장(少將)의 시찰담당관 원숭곡(苑崇穀), 경계쇠 현장(縣長)의 부인 및 조문석 등 세 사람이 진화산을 통해 ‘용왕 아가씨’를 만났다. 몸길이가 약 6척인 것만 보였는데 일반인보다 훨씬 컸다. 머리에는 흰 망사를 썼고 소매가 좁은 검은 옷을 입었으며 가슴 아래까지 오는 흰색 긴 치마를 입었는데 하단이 두 발을 덮었다. 이마 앞에는 머리띠가 있었고 가운데와 좌우에 흰 꽃이 달려 있었으며 꽃에는 작은 거울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왼손에는 목검 오른손에는 쇠칼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세 사람 각각에 대해 과거 일이나 질문에 대해 각각 답변했는데 모두 설득력이 있었고 미래의 일을 언급한 것도 나중에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알려주었다.

“인간세상에서 하는 일과 어떻게 마음을 쓰는 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도 암암리에 모두 기록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문석에게 칼 등으로 열류(熱流)를 전하니 다음날 온몸이 가볍고 상쾌함을 느꼈다. 호북성 정부 주석 장군(張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용왕 아가씨’를 만나보려 했지만 인연이 없었다. 대신 석 달 후 행정원 외교부장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조문석은 문장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 이야기는 수십 년 전에 내가 직접 겪은 일로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이런 일은 비록 사람들이 믿기 어렵지만, 당시 그 일을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 장군 선생, 경계쇠 현장 부부, 원숭곡 참의, 노하구 상공회의소 회장 진화산 등이 있다. 현재 장군 선생은 90이 넘었고, 경계쇠는 대만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원충곡은 여전히 홍콩 옛집에 살고 있다. 진화산은 멀리 대륙에 있어 근황이 불분명하다.

특히 장군 선생은 문장에서 나오는 ‘아주 영험한 예언’의 당사자로, 국민당과 민국 원로이자 우리 부친의 친구다. 만약 이 일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어찌 함부로 이런 말을 해서 사실을 조작할 수 있겠는가? 단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본인이 전에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이런 기이한 일을 신문에 싣는 게 적절하지 않았고 또 글을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은퇴한 지 이미 오래되어 이 기이한 일이 잊힐까 걱정되어 이를 기록으로 남겨 여러 사회 인사들이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중간에 있는 사람이 조문석이다.

조문석 선생의 부친 조아백은 성품이 강직해서 일찍이 조강직(曹剛直)으로 불렸고, 조문석 역시 소강직(小剛直 작은 강직이란 뜻)으로 불렸다. 그는 중화민국 및 홍콩 사회에서 명망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말한 신선을 만난 일은 시간과 장소가 분명하고 오류가 없으며 글을 쓸 당시 증인들이 모두 건재했으니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중공사당(中共邪黨)이 선전하는 무신론과 유물론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다. 이 글이 대만에서 발표된 후 인터넷을 통해 중국 본토에 전해졌으니 이 또한 신불(神佛)에 불경하고 신앙을 박해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다.

성자(聖者)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인류에게 오늘날 발생했고, 발명되었으며, 발견된 그러한 것들은 우리 오늘날의 교과서를 고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전통 관념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전법륜》)

성자께서는 또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문장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선념(善念)을 유지할 수 있고, 현대 관념의 충격에 직면하여 사람이 전통 관념을 견지할 수 있고, 무신론・진화론의 충격 속에서 신을 여전히 믿을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구도되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분명히 알려주셨다.

말후(末後)는 이미 도래했고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사당(邪黨 사악한 공산당)의 선전에 독해되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사당을 추종하며 파룬따파(法輪大法)와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고 비방한 사람들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용왕 아가씨’는 이렇게 점화한다.

“인간이 하는 일과 마음을 어떻게 쓰는 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도 암암리에 모두 기록되고 있습니다.”

정법(正法)과 불법(佛法)에 대한 박해는 그 죄가 하늘에 사무칠 정도로 커서 겁난(劫難)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신(神)은 중생에 대해 자비롭기에 세인들에게 다시 한 번 명확히 알려주셨다. 빨리 사당(邪黨)을 탈퇴해, 사당과 같은 편에 서지 말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선량함을 유지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공경해야만 겁난을 지날 수 있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