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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명작 시해(試解) 3

곡우(穀雨)

【정견망】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선악(善惡)은 동시에 존재한다. 《수호전》이 인성(人性)이 지닌 선악(善惡) 양면을 한 무리 ‘호걸’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선한 일면을 긍정하고 강조하며 반대로 악한 일면을 규범 지은 것으로 즉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다[盜亦有道]”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특히 소위 ‘난세(亂世)’가 되면 사람의 선행(善行)한 선과(仙果)가 악행(惡行)으로 인한 악과(惡果)를 반드시 상쇄시킬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늘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천리(天理)의 제약을 벗어날 순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자신의 마성(魔性)을 억제할 수 있는가? 그러자면 수련(修煉)이란 이런 한 갈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세 번째 명작 《서유기(西遊記)》는 바로 완전히 수련 이야기를 말한다.

《서유기》는 남녀노소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거작이다. 사람들은 《서유기》 보길 좋아하는데 대개 그 속에 담긴 것, 즉 작가가 특별히 표현하려고 하는 실질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유기》가 세상에 나온 이래, 작품의 주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고 그저 한 부의 낭만적인 신화소설(神話小說)로만 취급되어 왔다.

그렇다고 오승은(吳承恩 작가)이 뭔가를 숨기려고 일부러 은밀하게 쓴 것은 아니다. 《서유기》가 표현하는 주제는 아주 분명하지만, 단지 사람들이 수련의 각도에서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온갖 기괴한 요마귀괴(妖魔鬼怪)와 변화무쌍한 줄거리를 즐기는 데만 몰두해, 한 걸음 깊이 들어가 “대체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줄거리는 당승(唐僧)의 서천취경(西天取經)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사실 이미 사람들에게 수련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려준 것이다. 당승이 불경을 얻으러 떠나기 전에 겪은 처지와 경력 역시 수련에 속하며 동시에 또 그가 ‘취경(取經)’할 수 있도록 전면적이고 완전한 포석을 깔아주었다. 손오공이 펼쳐내는 수많은 신통은 수련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헛소리가 아니다. 단지 천기(天機)는 함부로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오승은이 아주 함축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손오공이 당승을 처음 수행할 때 때려죽인 여섯 강도의 이름을 보면, 안간희(眼看喜),이청노(耳聽怒),비취애(鼻嗅愛),설상사(舌嘗思),의견욕(意見欲),신본우(身本憂)다. 또 이 내용이 나오는 14회의 제목이 《심원(心猿 손오공)이 바르게 돌아가니 육적(六賊)이 흔적을 감추다》이다.

여기서 육적이란 바로 승려들이 육근(六根)이 청정해야 한다고 말할 때의 육근인데 다시 말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말한다. 이 일보까지 도달하려면 오직 마음을 바로 잡은 후에야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수련은 상당히 고생스러운 것으로, 금강부동(金剛不動)한 굳센 마음이 없으면 원만할 수 없다. 많은 승려들이 하루 종일 거기에 앉아 가부좌를 하고, 경(經)을 읽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내심 경계의 승화를 전혀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수련하고 있다. 그가 가부좌하고, 경을 읽으며, 심성을 닦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바로잡는 것인데 즉, ‘육적(六賊)’을 청리하는 것이다.

표현하자면 겉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법리다. 그러나 이 일보에 도달하려면 끊임없이 수련에 대한 신념(信念)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육근의 교란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런데 오승은이 세인들에게 표현한 것은 바로 손오공이 여섯 강도를 때려죽인 것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 했다. 물론 가부좌와 경전 읽기는 수련의 일부일 뿐이며 수련자는 또 여러 가지 고험(考驗)을 거쳐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할 수 있다.

당승은 취경(取經) 과정에 구구(九九) 81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겉으로 보면 기기묘묘하고 변화무쌍하다. 사실, 모든 어려움은 다 고험이고, 모든 어려움은 다 수련자의 사람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만약 여인국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색욕심(色慾心)을 없앨 수 있겠는가? 육이미후(六耳獼猴)가 없었다면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취경의 길에서 만난 사람이든 요괴든 그 어느 한 가지 일이든 모두 우연한 것은 없고 전부 여래불(如來佛)이 특별히 배치한 것이다. 다시 말해 수련자가 오직 마음을 굳게 먹고 의지가 강하기만 하면 넘지 못할 화염산(火焰山)이란 없으며 반드시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불교 수련에 입문하는 시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율(戒律)을 지키는 것이다. 왜 계율을 지켜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以戒爲師)”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수련자의 행동을 단속하고 수련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수련자에 대해 말하자면 계율이란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속인사회의 모든 것들이 다 죽어라고 수련자를 얽어매고 탐욕, 게으름, 명리(名利), 질투, 각종 사람마음의 집착이 모두 수련자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있다. 때로는 매우 정진하지만 때로는 또 배불리 먹고 푹 자면서 안일을 추구한다. 저팔계는 또 바로 이 방면에서 수련자의 한 가지 형상을 대표하는 것이다.

한 수련자로서 정진하는지 여부로 종종 한 사람의 심성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 사람의 평상시 행동과 수련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한데 의식주행(衣食住行 입고 먹고 자고 행동하는 것)이 항상 수련인 답게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꺼이 무거운 짐을 지고 부지런해야 하며 그 어떤 노고도 마다하지 않는 사오정의 형상은 바로 수련인의 이런 방면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 당승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능하지만 오직 반석(磐石)과 같은 굳은 마음을 지니고 확고하고 청성한데, 사악의 교란을 받지 않는 진각(真覺) 의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서쪽으로 반걸음을 걸어가다 죽을지언정 동쪽으로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이런 확고한 신념(信念)은 수련자의 원만을 필연으로 만들어 준다.

물론 책속에는 개성이 뚜렷한 네 명의 수련자의 모습이 전개된다. 당승 사도 4명은, 백룡마(白龍馬)를 포함해서, 모두 각자의 과위(果位)를 성취했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한 가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승은 원래 여래의 둘째 제자였던 금선자(金蟬子)가 전세(轉世)한 것인데 불법(佛法)을 소홀히 하다 동토(東土)로 쫓겨나 간고한 수련을 통해 정과(正果)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아주 큰 문제를 설명해주는데 사람의 내원은 모두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또 다른 한 가지 도리는 사람으로 전생(轉生)하는 이유는 아마 ‘천법(天法)’을 어겼기 때문이겠지만, 또한 특수한 사명을 지니고 왔을 수도 있다.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온 것은 바로 수련을 통해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만약 수련을 잘한다면 금선자럼 “직책이 올라가고 정과”를 얻어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이 될 수도 있다. 동시에 또 수련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불법(佛法)을 경시하거나 또는 함부로 모욕해선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데, “불법을 비방하면”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3/8/9/2777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