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西茗)
【정견망】
편작이 괵(虢)나라를 지나가는데, 마침 괵나라[원주: 괵나라는 나중에 곽(郭)나라로 이름을 바꿨는데 춘추시기에 곽공(郭公)이 있었다. 여기서는 곽나라 태자를 가리킨다] 태자가 병에 걸려 막 세상을 떠났다.
편작은 괵나라 궁궐 문 앞에 가서 방술(方術)을 좋아하던 중서자(中庶子)를 만나 물었다.
“태자께서 무슨 병에 걸리셨습니까? 온 나라 안에서 태자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소란합니다.”
중서자가 대답했다.
“태자의 병은 혈기(血氣)가 제대로 돌지 않고 뒤엉켜 꽉 막혀서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몸속으로는 내장을 해쳐서 생긴 것입니다. 정기(精氣)가 사기(邪氣)를 누르지 못해 그 사기가 체내에 쌓여 발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陽)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음(陰)의 움직임이 급해져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편작이 물었다.
“언제쯤 돌아가셨습니까?”
중서자가 말했다.
“오늘 새벽 첫 닭이 울 때였습니다.”
편작이 또 물었다.
“입관(入棺)은 하셨는지요?”
중서자는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지 아직 반나절도 안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편작이 말했다.
“저는 제(齊)나라 발해(渤海)의 진월인(秦越人)이라고 합니다. 발해의 정읍(鄭邑)에 사는데 지금까지 태자를 존경해왔지만,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태자께서 불행히 돌아가셨다고 하나, 제가 태자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에 중서자가 말했다.
“선생은 허황된 말씀을 하시면 안됩니다. 어떻게 죽은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듣자니 옛날 유부(兪跗)라는 의원이 있었는데, 그는 병을 고치는 데 탕액(湯液), 예쇄(醴灑), 참석(鑱石), 교인(撟引), 안올(案扤), 독위(毒熨)를 사용하지 않고 잠시 옷을 풀어헤쳐 한 번 진찰해보는 것으로 병의 징후를 살폈으며, 오장(五臟) 수혈(輸穴)에 따라, 피부를 가르고 살을 열어 막힌 맥(脈)을 통하게 하고 끊어진 힘줄을 잇고 척수(脊髓)와 뇌수(腦髓)를 누르고 고황(膏肓)과 횡격막(橫膈膜)을 바로 하고, 장(腸)과 위(胃)를 씻어 내고 오장을 씻어 정기(精氣)를 다스리고 신체를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면 태자께서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태자를 다시 살려내려 한다면, 어린 아이라도 믿지 않을 겁니다.”
중서자의 말을 들은 편작이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탄식했다.
“대부께서 말하는 의술은 ‘가느다란 관을 통해서 하늘을 보고 좁은 틈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저, 진월인(秦越人)의 의술은 환자의 맥을 짚나 기색을 살펴보고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병이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병증이 양(陽)에 있으면 그 음(陰)을 미루어 알 수 있고, 음에 있으면 양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병의 징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굳이 천리 먼 곳까지 가서 진찰하지 않아도 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구태여 한쪽만 쳐다 볼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께서 저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시험 삼아 저로 하여금 태자를 한번 살펴보게 하시지요. 마땅히 태자의 귀 속에서는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을 겁니다. 태자의 두 다리를 더듬어 올라가 음부(陰部)에 이르면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을 겁니다.”
중서자는 편작의 말을 듣자 멍해져 눈 한번 깜박이지 못하고, 혀는 오그라져 붙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는 궁궐 안으로 들어가 편작의 말을 괵나라 군주에게 이 말을 전했다.
괵나라 군주는 몹시 놀라워하며 궁정의 중문(中門)까지 달려 나와서 편작을 보고 말했다.
“평소 선생의 인술(仁術)에 대한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 존안을 뵐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선생이 우리 이 괵과 같은 작은 나라까지 왕림해 태자의 병에 관한 소견을 말씀해 주셨으니 변방의 작은 나라 군주와 신하들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선생이 오셨으니, 죽은 태자가 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선생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제 아들은 버려져 계곡에 묻혀 영원히 죽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괵나라 군주는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통한 표정을 지었는데, 가슴이 막히고 정신이 혼미한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의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얼굴 모습도 일그러져 있었다.
편작이 말했다.
“태자의 병을 ‘시궐(尸蹶)’이라 합니다. 그것은 양기(陽氣)가 음기(陰氣) 속으로 들어가 위(胃)를 움직이고 경맥(經脈)나 낙맥(絡脈)을 막히게 하고 한편으로는 또 삼초(三焦)와 방광(膀胱)까지 내려가는데 이렇게 양맥(陽脈)은 아래로 내려가고 음맥(陰脈)은 위로 치달아 양기와 음기가 만나는 곳이 막혀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음맥은 위를 향해 올라가고 양맥은 안을 향해 내려갑니다. 그래서 양맥은 안으로 내려가 고동(鼓動)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음맥은 밖을 향해 올라가 끊어져서 음기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위에는 양기가 끊어진 낙맥(絡脈)이 있고 아래에는 음기가 끊어진 적맥(赤脈)이 있습니다. 음기가 파괴되고 양기가 단절되어 혈색이 없어지고 맥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몸이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태자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무릇 양기가 음기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살고, 음기가 양기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죽습니다. 대체로 이러한 것은 모두 오장의 기가 몸속에서 거꾸로 올라갈 때 갑자기 일어납니다. 명의(名醫)는 이러한 증세를 잡아내지만 평범한 의원은 의심하고 위태롭게 생각합니다.”
이에 편작은 제자인 자양(子陽)에게 침을 숫돌에 갈게 한 후에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얼마 후 태자가 소생했다. 그러자 다른 제자 자표(子豹)에게 오분(五分)의 고약을 바르게 하고, 팔감(八減)의 약제(藥劑)를 섞어 달여 이것을 양 겨드랑이에 번갈아 붙이게 했다. 그러자 마침내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음기와 양기를 조절하면서 탕약을 20날 동안 마시게 하자 태자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일로 인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편작은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편작은 자기가 태자를 살린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겠는가? 이는 다만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나게 해준 것뿐이다.”
자료출처: 《사기・편작창공열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6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