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道生)
【정견망】
6. 생명이 있는 한자
한자(漢字)에는 생명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비유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이번 장에서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 신기(神奇)한 사실을 직접 체험해 보자.
문언문(文言文)을 학습하는 방법
고인(古人)이 문언문(文言文)을 처음 배울 때는 매 글자의 뜻을 아예 외우게 하지 않았다. 고인은 어려서 서당에서 책을 읽을 때부터 서당 선생님은 단지 글자(字)를 알아보고 글자를 쓰는 것만 가르쳤다. 나중에 죽어라 책을 읽고 외우게 했으며 매 글자나 단어 문장구절의 뜻은 아예 설명하지 않았다. 이렇게 몇 년간 책을 읽으면 대부분의 고문 경전(經典)을 익숙하게 외울 수 있는데 그러다 문득 저절로 뜻이 다 통하면서 완전히 명백해진다.
그러나 현대인이 고문을 배우는 것은 억지로 매 글자마다 몇 가지 고정적인 뜻을 억지로 외게 한다. 이는 중화문자의 기전과 이치를 몰라서 생긴 잘못된 학습방법이다. 이렇게 배워낼 수 있는 것은 그저 죽은 고문(古文)일 뿐이며, 배운 글자도 죽은 것으로 숨결이 없다. 왜냐하면 매 하나의 글자는 하나의 상(象)이라 이면(裏面)은 살아 있는 것으로 수많은 것을 포함하기에 그야말로 원하는 바에 따라 사용하고 임의로 변화・확장시킬 수 있으며 영성(靈性)과 숨결이 가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문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살아 있는 것으로 진정으로 고문에 통달한 사람은 매 글자가 그의 손에서 모두 살아 있다. 그는 글자(字)가 아닌 상(象)을 사용하는데 이는 포함하는 내함(內涵)이 아주 거대하며 써낸 것의 의경(意境)과 내함이 넓고 커서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고정적인 뜻을 외우면 이는 단지 전인(前人)이 총괄해낸 죽은 것에 불과하다. 마치 주 문왕이 《주역》에 괘사와 효사를 단 것처럼 그저 경험의 총결에 불과하며 도리어 상(象)을 봉폐시켜 죽여 버린 것과 같다. 또 지금의 중의(中醫)가 병을 치료하면서 그저 고인이 정리해 낸 고정된 처방만 기억할 뿐 의학의 이치나 약의 이치를 전혀 모르고 변증시치(辯證施治)를 몰라 영활하게 운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런 중의는 지금 죽어가고 있거나 또는 이미 죽어버렸다.
고인은 학습할 때 억지로 뜻을 외우지 않았으며 대량으로 암송했다. 즉 사상 속에 글자의 상[字象]에 대한 감각을 만든 것으로 사상 깊은 곳에서 글자의 상과 대응을 형성해 공명에 도달하게 한다.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전부 통(通)하고 살려낼 수 있었다. 인체와 우주는 홀로그램 식(全息)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외면에 무엇이 있으면 내면에도 무엇이 있다.
학습 초기에 내상(內象 내부의 상)은 마치 혼돈(混沌)과 같아서 여전히 상을 구별해내지 못하는데 외상(外象 외부의 상)과 끊임없이 서로 감응하는 상황하에서 내상 역시 서서히 상응・공명할 수 있게 되며 서서히 외상에 대응해 상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일정한 시간을 거쳐 내상과 외상이 완벽하게 서로 감응하고 상응해서 내외가 상통(相通)・공진(共振)하며 조화롭게 공명할 때에 도달하면 내외가 상합(上合)해 혼연일체로 되며 이때 상(象)을 세우는 것 역시 완성된다.
여기서는 단지 기전과 이치를 말할 뿐 구체적인 방법은 말하지 않는데 문자의 기전과 이치를 장악하게 되면 매 사람마다 스스로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고문의 상(象)
《상서(尙書)》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상고 문헌의 하나로, 요순부터 춘추시기까지 상고(上古) 문장을 수록하고 있는데 또한 중국 고서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당조(唐朝)의 대문호이자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한유(韓愈)조차 “《상서》는 문장이 난삽해서 읽기 어렵다”[1]고 한탄한 바 있다.
왜냐하면 《상서》는 상고문자(가령 갑골문 등)를 사용해 표현한 것으로 문자가 더 오래될수록 그 상(象)이 더욱 크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글자를 풀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 이 글자를 그것의 가장 오래전 판본과 비교해 해석하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가장 원시적인 의상(意象)에 접근해 내함이 가장 클 수 있다.
주 문왕이 《주역》에 쓴 괘사와 효사는 아주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후인(後人)들은 그의 동일한 구절에 대해 수십 가지 해석을 달았는데 사람마다 해석이 다 달랐다. 그래서 예부터 《주역》을 해설한 책이 소 털처럼 많았음에도 그것을 진정으로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 문왕이 상 주왕(紂王)에게 감금된 시기에 괘효사(卦爻辭)를 썼기 때문에 형세에 의해 압박을 당해 일부러 은어(隱語)의 방식으로 썼다고 한다. 사실 전혀 이런 것이 아니다. 이는 《주역》의 내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잘못된 인식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중에 공자가 《주역》에 상사(象辭)와 단사(彖辭)를 달 때는 왜 마찬가지로 난삽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했는가?
주 문왕이 《주역》에 괘효사를 지을 때는 상(象)을 아주 크게 사용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고 내함이 대단히 컸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주역의 상을 완전히 봉폐시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 문왕은 일부러 이렇게 한 것으로 가장 큰 상(象)을 사용해 가급적 후인들에게 잘못된 것을 남기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언문(文言文)과 현대문
우리가 때로 고문(古文)을 읽을 때면 마음속으로 어느 한 구절의 뜻이 분명한 것 같지만 막상 백화문으로 이를 번역하려면 똑똑히 번역할 수 없다. 설령 나중에 온갖 고심을 다해 백화문으로 번역했다 해도 원래의 그런 맛은 아무리 해도 느낄 수 없다. 이는 바로 고정되고 죽어버린 현대 중국어로는 고문의 상(象)을 표현하는데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마음속에 일종의 느낌이 있어서 이를 표현하고자 하지만 언어로는 도저히 똑똑히 표현할 수 없고 도무지 그런 맛이 나지 않는다. 사실은 이 마음속 느낌이 상(象)의 형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이런 도식적인 언어로는 상을 똑똑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분명히 표현할 수 없다. 이때 만약 순정(純正)한 고문(古文)으로 표현한다면 그럼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문이 사용하는 상(象)이 아주 커서 아주 큰 의경(意境)을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어는 고문자(古文字)를 고정시켜 단어로 만들었으며 고문자의 상(象)을 고정시켜 버렸다. 즉 몇 가지 판에 박은 뜻으로 고정시켜 점차 중화문자의 에너지와 숨결을 잃게 했고 그런 후 다시 번잡하고 경직된 어법(語法)으로 그것을 속박해 현대의 소위 백화문을 만들었다.
고문의 기본 단위는 글자(字)로 무슨 문법이랄 게 거의 없었고 아주 영활(靈活)하고 간단했다. 고문을 분석해보면 바로 한 글자씩 조성된 것이다[전고(典故)나 고유명사는 제외]. 고문의 매 한 글자는 다 상(象)을 사용한 것이라 고문이 실을 수 있는 내함은 대단히 박대하고 의경(意境)이 심원하다.
반면, 현대 중국어의 기본단위는 단어(詞)로 현대 백화문을 분해해보면 단어로 조성된 것으로 문법이 아주 번쇄하고 경직되어 있다. 이 역시 상(象)이 저층으로 갈수록 더욱 번쇄하고 지혜와 내함이 더욱 작아지는 이유이다.
이것은 마치 원자와 분자와 같다. 원자는 에너지가 아주 커서 그 에너지를 방출하면 곧 원자폭탄이 폭발한 것과 같아서 하나의 도시를 파괴할 수 있다. 원자가 표층(表層)으로 조합되어 분자가 되면 에너지가 봉쇄되는데 분자 안에 갇혀서 표현해 낼 수 없다. 때문에 분자는 에너지가 아주 작아서 마치 수류탄처럼 작은 곳에서만 작용할 수 있다.
‘역(易)’이 우주를 낳다
‘역(易)’이란 자연우주의 탄생・발전・변화 전체 과정의 전개이자 또한 우주 만물 생명력의 체현이다. 중화문자는 완전히 ‘역(易)’의 이치를 따르기 때문에 자연우주와 일체가 되고 우주 만물과 함께 자연스레 생장・발전・변화한다.
여기서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중화 언어문자를 우리 이 우주의 물질구조와 한번 비교해보겠다.
우리 이 우주의 물질구성도 마찬가지로 ‘역’의 이치를 따른다. 가령 우리 인류 시공(時空)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은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으로 이는 우리 인류 시공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다. 우리가 이 세계의 일체 물질을 해체한다면 최종적으로는 모두 하나하나의 분자로 해체할 수 있다. 그런데 분자는 가장 작은 입자가 아니며 분자를 계속 해체하면 분자는 또 하나하나의 원자로 구성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원자는 또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 것으로 원자핵은 또 중성자와 양자로 구성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무궁무진하며 그 누구도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저층의 입자가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이런 부동한 층면의 입자는 ‘역’의 이치 하에 관통된 것으로 층층(層層) 상생상합(相生相合)하며 전체 물질세계를 생성한다.
분자의 종류는 아주 많아서 우리 인류 세계의 분자 종류는 많기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와 비교하자면 원자의 종류는 훨씬 적은데 현재 인류가 이미 발견한 원자 종류는 겨우 몇 백 종류(동위원소를 포함)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이 몇 백 종류의 원자가 상생상합해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분자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분자는 또 계속 상합해서 이 세계의 만사만물을 구성한다.
이는 마치 바로 문자(文字)가 상생상합해서 단어와 단어조합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 문자의 수량은 유한하지만 불과 몇 천 개의 통용 한자로 구성된 단어와 단어조합은 오히려 무궁하다. 단어와 단어조합이 더 합해지면 구절과 문장을 만든다. 이는 마치 분자로 우리 표면세계를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동시적이며 ‘역’의 이치 속에서 저절로 생성된 것으로 스스로 자라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중화문자는 자연만물의 생장에 따라 생장하며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세계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동시적으로 자연우주의 일체를 표현해 낼 수 있으며 빠뜨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역’의 이치에 따르면 물질이 저층으로 갈수록 함축된 에너지는 더욱 크다. 가령 분자의 에너지는 아주 작지만 원자가 지닌 에너지는 아주 크다. 분자 층면의 수류탄이 터지면 겨우 작은 일부만 터뜨릴 뿐이지만 같은 질량의 원자탄이 폭발하면 거의 한 도시를 훼멸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 이치로 문자로 구성된 단어 및 단어조합은 상(象)이 봉쇄되고 축소된 것이라 마치 원자로 구성된 분자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내함이 축소되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역’의 이치가 부동한 층면에서 전개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물(事物)의 내함(內涵)을 깨달으려면 우리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역’의 이치에 순응해 되돌아가야 하며 층층(層層) 근원으로 되돌아가 배후의 상(象)과 에너지를 한 층 한 층 석방시켜야 한다.
한자와 영어
한자(漢字)는 음(音)·형(形)·의(意) 삼위일체의 특징을 지니며, ‘형(形)’으로 ‘상(象)’을 표현하고, ‘상’으로 ‘음(音)’을 표현하는데, 매 글자마다 독립적인 일체(一體)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의 이치가 관통해 자연우주와 하나로 상합(相合)한다.
한자는 ‘역’의 이치에 따라 창조된 것이라 한자는 하나의 완벽한 자체 순환과 생장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만물과 일체가 되어 자연만물과 함께 생장하기 때문에 현재 이미 존재하는 한자로 인류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표현할 수 있고 심지어 인류가 표현할 수 없는 고층의 내함 및 일체 미래에 새로 생길 사물까지 표현해 낼 수 있다.
다른 어떤 인류의 언어도 이 점에 도달할 수 없다. 신속하게 발전 변화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대량의 새로운 사물 방면에서 인류의 다른 언어문자는 극히 큰 한계와 부적응성이 있어서 그저 기계적으로 새로 생긴 사물에 새로운 음(音)을 부여해 단어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렇게 하면 단어의 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며 점차 인류의 정상적인 기억능력을 초과하고 아울러 서로 다른 전문영역 사이에 심각한 소통의 장애가 생긴다. 때문에 지금 영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각기 다른 종류의 전문영어가 파생되어 나와 자연계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새로운 사물과 개념에 대응하고 있다.
가령 현재 다음과 같은 것들이 이미 존재한다.
컴퓨터 전공영어, 전기 전공영어, 통신공학 전공영어, 자동차 전공영어, 수학 전공영어, 물류 전공영어, 회계 전공영어, 금형 전공영어, 농업 전공영어, 대학 전공영어, 제약 전공영어, 체육 전공영어, 염색 전공영어, 생물 전공영어, CNC전공영어, 화학 전공영어, 의류 전공영어, 광고 전공영어, 관광 전공영어 등등 현재 이미 100가지에 가까운 전문영어가 나왔고 이런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중화문자 체계에서 수천 년간 중국인들은 겨우 수천 개의 통용 한자에 의존해 거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지 않고 인류의 모든 발전 및 변화에 대처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또 여유가 있었다. 중화문자는 ‘역(易)’의 이치에 따라 자연우주와 함께 자라며 자연 만물의 발전에 따라 각종 새로운 단어와 단어조합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냈다. 아울러 생성된 단어와 단어조합 내함(內涵)도 자연 만물과 서로 일체가 되어 문장을 척 보기만 해도 뜻을 알 수 있고 자연스레 그것의 함의를 분명히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영역 사이에서도 아무런 간격 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가령, 말(horse), 닭(chicken), 작은(small/little), 수컷(male), 암컷(female)…. 중문은 ‘역(易)’의 이치에 따라 우주 만물과 일체가 되어 생장하기에 우주 만물의 일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다’와 ‘말’ 또는 ‘닭’을 서로 결합하면 한자는 ‘작은 말(小馬)’, ‘병아리(小雞)’ 등이 생성되어 만물과 대응하는데 의미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나 영어로는 이렇게 할 수 없고 새로운 사물을 위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령 작은 말을 영어로 표현할 때 small+horse로 할 수 없고, 수컷 작은 말은 small+male+horse로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단어의 길이가 무한히 길어져 결국 이 언어의 정보 함량이 점점 낮아져서 더 이상 인류의 표현에 적합하게 사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새로운 사물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야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작은 말(foal), 수컷 말(stallion), 작은 수컷 말 (colt), 암컷 말(mare), 작은 암말(filly), 병아리(chick), 수탉(cock), 어린 수탉(cockerel), 암탉(hen), 어린 암탉(chicken) 등인데 무슨 규칙이라고 할 게 전혀 없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한자로는 電腦 즉 전자 두뇌)와 로봇(한자로는 機器人 기계인간)은 현대에 생겨난 새로운 사물이다. 중국어는 자연히 새로운 사물의 탄생과 함께 상응하는 새로운 명사가 생겨났는데, 이런 개념이 없었던 고인(古人)들도 이 새로운 명사를 보면 글자만 봐도 대략 뜻을 알 수 있고 마음속에 상응하는 사물의 개념을 세울 수 있다.
가령 컴퓨터를 뜻하는 전뢰(電腦)를 보면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사람의 두뇌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상응하는 사물의 개념이 마음속에 생긴다. 또 로봇을 뜻하는 기기인(機器人)을 보면 곧 기계로 만들어진 사람과 같은 사물이란 개념이 생긴다.
그러나 영어는 반드시 새로 생긴 사물마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컴퓨터(computer)·로봇(robot) 등인데 모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고대 영국인들이 이 단어를 본다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고 무슨 물건인지 아예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다른 언어문자는 ‘역(易)’의 이치를 관통시켜 우주 만물과 하나로 상합(相合)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력을 갖출 수 없어서 저절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우주 만물의 생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오직 끊임없이 인위적으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영어 단어는 무한히 증가해 이 언어는 갈수록 더 비대하고 혼란스러워졌으며 점차 인류의 기억과 사용 능력을 초과할 것이다. 때문에 필자가 추측하기에 미래 신인류(新人類)의 공통 언어문자는 한자(漢字)가 될 것이고, 다른 언어문자는 역사 속에서 서서히 도태될 것이다.
“연못에게 ‘어찌 이리 맑은가’라 물으니 아득한 샘에서 싱싱한 물이 솟아 오기 때문이지[問渠哪得清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했다.
중국어는 생기와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그 이면의 내함이 층층 첩첩이라 매 한 층마다 신령(神靈) 및 무궁무진한 우주 고층과 통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온다.
중문(中文)은 역의 이치를 따르기 때문에 분해하면 할수록 에너지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영어는 단지 단어로밖에 분해할 수 없고, 개별 단어를 다시 분해하면 그저 알파벳 자모로 되어 흩어지고 죽어버리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 때문에 영문은 그저 근원과 생명이 없는 부호에 불과할 뿐이다.[1]
주:
[1] 韓愈《進學解》:“ 周誥殷盤,佶屈聱牙。”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9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