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수련생
【정견망】
속인사회에서 나는 늘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롭고 세상과 다툼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나도 속으로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오만한 마음이 있었는데 내가 주변의 일반인들보다 사람으로서 더 높다고 여겼다. 비록 20년 넘게 수련을 해왔지만 내심의 자신에 대한 이런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가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완고하고 후천적인 관념이 충격을 받았다.
‘전민(全民) 백신접종’ 기간 사구(社區 주민 센터) 직원이 우리 가족을 찾아와 백신접종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내 성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오랫동안 귀에 가득 찬 것은 모두들 내가 상냥하고 성격이 온화하다는 말뿐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성격이 나쁘다’는 말이 나온 것일까?
나는 마침내 생각이 떠올랐다. 역병에 대한 통제가 매우 엄격했던 어느 날 나는 급히 차를 타고 동수 집에 가려고 했다. 당시 운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었고 운행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데 차를 타려면 사구에서 발급한 백신접종 증명서를 소지해야만 했다. 내가 사구에 증명서를 발급하러 갔을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는데, 담당 직원이 마침 부재중이었다.
서류가 더 늦어지면 차를 놓치는 상황인데 직원들은 나더러 좀 더 기다리라고만 했다. 가뜩이나 초조했던 마음이 이때 확 불타올랐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이 듣기 거북한 비난을 당당하게 말했다. 직원이 이 상황을 보고는 마침내 나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나 역시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오늘 사구 직원이 와서 나에 대해 그런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 일의 출현은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했고, 나는 엄숙하고 또 내심에서 우러나와서 대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속인의 이치에 따르면 방역을 위해 사람들이 외출할 때 관련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며, 이 일을 맡은 직원들은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내가 그들 업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잘못이 없으며 내가 취한 방법 역시 비난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련인의 심성 표준에 따른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내용과 대조해 보고 나는 수련인이 속인과 모순이 생기면 100% 수련인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 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1]
수련자의 각도에서 자신을 찾아보고 나는 마침내 자신의 심성문제를 찾아냈다.
1. 쟁투심
사람의 이치로 속인을 대하고 자신을 가늠하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싸우는 말투가 강해서 아주 강렬한 쟁투심이 있는 이런 것은 당문화(黨文化)에서 ‘투쟁(鬥)’의 표현이다. 전통문화에서 사람이 되는 표준과는 크게 다르며 대법 수련인의 표준에는 더욱 맞지 않는다. 내가 지킨 것은 뼛속까지 ‘나’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위사(爲私)’의 체현이었다.
2. 원망
온화하지 못하고 ‘성난 젊은이’와 같은 당 문화 말투로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아마도 내 일을 그르칠까 염려한 것으로 이는 자신의 마성(魔性)을 방임한 것이자 강렬한 ‘원망’의 표출이다. 원망은 쟁투의 원인이 되는데 원망이란 원인 때문에 쟁투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사부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2]
나는 비록 증오는 없고 원망만 있었지만 원망이 강렬해지면 증오가 된다. 쟁투를 했다는 것은 참지 못한 것으로 원망이 있고 증오가 있으면 곧 선(善)이 없는 것이다.
‘원망’이든 ‘쟁투’든 모두 구우주의 위사(爲私)한 이치에서 내원한 것이다. 속인의 이치를 이용해 속인의 것을 지키려는 것은, 사실 자신을 이미 속인의 경지에 둔 것이다. 수련이란 바로 속인의 마음을 닦아 없애는 것으로 사람 속에서 뛰쳐나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자신이 다년간 가정과 사회업무 등 여러 방면에서 유사한 경험을 했으며 속인의 각도에 서서 속인의 이치, 속인의 사유로 타인과 자신을 대했고, 줄곧 속인의 경지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타난 모순과 문제에 대해 속인이 문제를 보는 기점에서 진정하게 이성적으로 수련인이 문제를 보는 기점으로 변할 수 있었다.
속인이 모순에 직면할 때면 가장 먼저 밖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질책한다. 사람의 상식적인 이치에 따라 행동하는데 수호하는 것은 바로 구우주 삼계 내에서 가장 낮은 층차의 구(舊) 이치다.
수련인은 모순의 출현에 직면해서 책임을 벗어나거나 밖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안으로 찾으며, 모순이 나타난 것을 계기로 삼아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사람마음과 집착을 폭로함으로써 이를 통해 법속에서 경지와 수련을 승화시킨다. 차이점은 바로 사부님께서 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속(俗)과 성(聖)은 한 갈래 냇물 사이이고
진(進)과 퇴(退)는 두 하늘이라”[3]
내가 느낀 것은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4]하는 것이야말로 착실한 수련 과정에서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는 기본기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서 《홍음 3》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경지〉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홍음 3》〈일념〉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홍음》〈착실한 수련〉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