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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팔괘와 신전문화 해독 9: 설문해자

도생(道生)

【정견망】

9. 설문해자(說文解字)

이 장에서 우리는 ‘역(易)’의 이치를 거슬러 올라가 중화문자 배후의 ‘상(象)’을 전개해 중화문자의 내함(內涵)을 한번 해독해보고자 한다. 중화문자는 신(神)이 사람에게 전한 천기(天機)로 배후의 상은 신(神)과 통하는 것으로 강대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단지 인류가 갈수록 타락함에 따라 지혜가 갈수록 작아짐에 따라 서서히 똑똑히 읽어내지 못하게 되었고 중화문자의 에너지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봉인되게 했다.

인류의 타락과 지혜가 쇠퇴함에 따라 중화문자의 자상(字象)도 갈수록 작아져 최후에는 글자에 정의를 내려 그 뜻을 고정시켜 버렸다.

《중용(中庸)》에서는 말한다.

“사람마다 날마다 먹고 마시지만 진정으로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1]

이 장에서 필자는 내 층차에서 시험 삼아 몇몇 글자를 풀이해 그 내함을 석방시켜 내고자 한다. 중화문자는 신(神)과 통하는 것으로 상(象)을 통해 우주 고층과 층층으로 대응하는데 내함이 거대하고 무극하다. 누구에게 얼마나 큰 지혜가 있다면 그럼 그만큼 큰 상(象)으로 아주 거대한 내함을 포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여기서 한 글자 해독은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하며 문자의 최종적인 내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주역팔괘에서 매 한 괘(卦)의 상(象)이 비할 바 없이 거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깨달아낼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최종적인 내함이 아니며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역주: 원문은 溺水三千取其一瓢로 약수(弱水)가 삼천리일지라도 단지 한 바가지 물만 취할 뿐이란 뜻이다. 이 문장은 《홍루몽》 제91회에서 보옥이 대옥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의 저자는 여기서 약수삼천리를 괘상의 최종적인 내함으로 보고 자신은 그중 한 바가지 물만을 취했을 뿐이라며 겸사로 사용했다.]

그런데 문자는 역사발전 중에 몇 차례 큰 변화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글자를 풀이할 때는 일반적으로 문자를 모두 갑골문(갑골문이 없는 경우는 전서)으로 전환해서 해석한다. 갑골문은 상조(商朝)의 문자로 비록 창힐(倉頡)과는 1천여 년의 시차가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남겨진 중화문자 중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에 해당한다. 현대 문자를 모두 갑골문으로 바꿔서 풀면 에너지가 가장 크고 문자의 원시 자상(字象)에 가장 가깝다.

1) 『자(自)』:

갑골문에서는 “0920”인데 사람 코의 형상이다. 즉 자(自)의 본래 뜻은 바로 코다.

자상(字象):  일반인이 자신을 가리킬 때면 늘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는데 코가 얼굴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自)’에는 또 ‘자신(自己)’이란 뜻이 있고 이외에도 “직접, 기원, 말미암다, ~부터, 본래, 자신” 등의 뜻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자(自)’의 자상(字象)이다.

해석: 도가에서는 대뇌를 9개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을 하나의 궁(宮)이라 부르는데 모두 구궁(九宮)이 있다. 매 궁마다 모두 주재하는 신(神)이 있다. 가장 중심 구역이 바로 니환궁(泥丸宮)인데 바로 송과체가 있는 위치다. 니환궁은 구궁의 중심으로 구궁을 총괄한다고 여겨지는데 인체를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중심이다. 니환궁은 인류 원신(元神 영혼)의 거처로 사람의 원신이 이곳에서 육체를 주재한다.

만약 손가락으로 자신의 산근(山根 코뿌리) 위치를 가리킬 때 가리키는 구역이 바로 대뇌 니환궁 위치에 해당한다. 즉 원신이 존재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킬 때면 바로 자신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이 진정한 자신이다. 그러므로 손가락으로 사람의 코를 가리키면 남을 화나게 하거나 자극하거나 불경(不敬)하기 쉬운데 그곳이 바로 사람의 본존(本尊 영혼)이자 진정한 자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련계에서는 인류의 원신은 모두 고층(高層) 공간에서 왔다고 말하는데 즉, 아름답고 순정(純淨)한 신의 세계에서 인간세상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 후에 인류의 육체에 속박당하고 인류의 시공 속에 갇혀 세간의 칠정육욕 및 각종 세속의 관념과 집착에 오염되어 자아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망각했다.

그러므로 ‘자(自)’에는 보다 깊은 층의 내함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천의 그런 순진하고 무사(無邪)한 자기다. 즉 세간의 칠정육욕이나 각종 세속 관념과 각종 사심(私心)의 집착에 오염되지 않은 그런 선천자아(先天自我)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진정한 내원이다.

우리 현대 인류가 말하는 자기는 사실 진정한 자기가 아니며 본인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일체 관념・욕망 및 각종 집착・사람마음 등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기는 순정하지 않으며 후천적으로 형성된 수많은 것들이 달라붙은 길을 잃어버린 후의 자아(自我)이며 선천자연의 자아가 아니다. 오직 수행을 통해 반본귀진(返本歸真)해서 후천적으로 형성한 일체 욕망・집착을 제거하고 가장 원시적이고 순진한 본성으로 되돌아가서, 마치 생명의 처음처럼 순진무사(純真無私) 해야만 진정한 자기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자(自)’의 고층 내함은 바로 도가에서 말하는 ‘진인(真人)’이라 할 수 있다.

2) 『혜(慧)』:

① 혜(彗): 전서(篆書) “0920”는 0920[풍(豐), 무성한 풀] + 0920[풍(豐),무성한 풀) +0920(又,손으로 잡다)다. 즉 ‘혜(彗)’의 본뜻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풀을 잘라서 만든 빗자루를 말한다. 중국어로 빗자루별(掃帚星)을 ‘혜성(彗星)’이라 한다.

② 심(心): 전서 “0920

③ 사(蛇): 전서 “0920 ”, 또한 탐욕과 욕망을 대표한다.

②와 ③에서 볼 수 있다시피 ‘심(心)’과 ‘사(蛇)’는 모양이 아주 비슷하다. ‘심(心)’ 꼭대기에 구멍이 하나 열려 있는데 이를 ‘규(窺)’라 한다. 이 구멍이 바로 ‘심규(心竅)’다. 만약 심규를 잃어버리고 욕망 등에 의해 심규가 막히면 바로 ‘사’(蛇 욕망・탐욕)가 된다.

혜(慧): 전서로는 “0920”= “0920 ”(彗,掃帚)+ “0920”(心)이다.

해석: 빗자루는 더러운 것을 쓸어 깨끗하게 만드는데 사용한다. 마음 위에 빗자루가 있으니 의상(意象)은 마음을 쓸어 마음속 욕망・집착・사심(私心)・사념(邪念) 등을 깨끗이 제거해 심령(心靈)을 순진(純真)하고 깨끗(幹淨)하게 지키는 것을 뜻한다.

고인은 “고요해야 지혜가 생긴다[靜能生慧]”고 했다. 여기서 고요함(靜)은 그 어떤 잡념・욕망도 없어, 마치 고요한 물처럼 세상과 다툼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마음이 잔잔한 물처럼 그 어떤 잡념도 없을 수 있는가? 그러자면 우선 후천적으로 형성된 일체 사심(私心)과 욕망 등을 전부 깨끗이 청리해야만 고요해질 수 있다. 이 목표에 도달하면 그럼 곧 생명의 경계(境界)가 승화된 것으로 곧 큰 지혜가 나올 수 있는데 다시 말해 ‘개혜(開慧)’하고 ‘개오(開悟)’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속의 일체 사심(私心)과 욕망을 제거하는 과정이 바로 생명이 반본귀진하는 과정으로 다시 말해 수련 과정이다. 이 ‘개혜(開慧)’의 목적에 도달하면 그럼 생명이 가장 선천적이고 순진한 본성으로 돌아간 것으로 ‘자연’ ‘진아(真我)’로 돌아간 것이다. 도가의 말로 하자면 바로 ‘진인(真人)’이 된 것이며 불가의 말로 하자면 바로 ‘부처(佛)’로 수련 성취된 것이다. [부처란 각자 또는 깨달은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진인’・‘각자(覺者)’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신통(神通)이 광대하고 능력이 끝없는 것으로 세간 일체 생명의 과거・현재・미래를 알 수 있으며 지혜가 끝이 없다. 그 무엇도 그들을 속일 수 없고 그들은 모르는 것이 없으며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 일체를 통찰하고 환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혜(慧)의 자상(字象) 속에는 또 마음이 밝은 거울과 같아서 진위(真偽 참과 거짓)를 통찰하고 세간의 일체를 환히 알고 간파해 사물의 표상(表相)에 미혹되지 않으며 사물의 근본을 통찰할 수 있다는 등의 뜻을 포함한다.

3) 『사(思)』:

전서 “0920”= “0920”(신囟: 정수리, 천창)+ “0920”(心).

해설: 영아(嬰兒)가 출생할 때 정수리 두개골 2곳에 아직 결합하지 않은 곳이 있는데 백회(百會) 앞뒤로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이곳은 오직 한 층의 두피만이 덮고 있는데 이 두 곳을 각각 ‘전신(前囟)’과 ‘후신(後囟)’이라고 한다. 이중 고인(古人)이 말하는 ‘신문(囟門 정수리 문)’은 ‘전신’을 가리키며 또는 ‘천창(天窓 하늘 창문)’이라고 한다.

고인은 ‘신문’은 원신의 천창(天窓)으로 영혼이 육체를 출입하거나 육체를 이탈하는 통로라 여겼다. 일반적으로 원신이 규(窺)를 나갈 때 이곳으로 나간다고 보았다.

이외 수련계에 ‘개정(開頂)’이라는 한 가지 상태가 있는데 수련이 어느 정도 층차에 도달하면 곧 이런 상태가 나타난다. 개정이란 바로 다른 시공[時空 인류 표면시공의 육체가 아니라 중의에서 인식하는 다른 시공에 존재하는 인체의 기제(機制)다]에서 정수리가 열리는 것으로 대뇌와 원신이 직접 우주와 연계되어 소통하며 우주 고층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개지개혜(開智開慧)라 한다.

‘신(囟)’의 형상은 마치 인류 원신이 우주정보를 받아들이는 ‘안테나(天線)’과 같고 ‘개정(開頂)’의 뜻도 포함한다. 정수리가 열리면 사상이 직접 우주와 소통해 우주 고층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신이 육체를 드나드는 천창이다.

‘사(思)’는 원래 ‘신(囟)’ + ‘심(心)’이다. 즉 ‘심(心)’은 우주와 상통하며 우주 고층의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혜는 우주에서 내원한 것으로 자신의 내심의 ‘사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준다.

4) 『화(化)』:

갑골문 “0923”=“0920” + “0920”(원시 태극도).

해독: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순환하면서 왕복하면 변화가 무궁해 하나의 원시 태극도(太極圖)를 형성한다. 현대과학은 우주는 서로 다른 입자로 구성되었다고 말하는데 즉 물질이란 서로 다른 입자로 층층 구성된 것이다. 가령 분자가 인류 공간의 일체를 구성한다면 분자는 또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또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며 원자핵은 또 중성자와 양자로 구성되어 있고 중성자는 또 쿼크로 구성되는 등등이다. 입자를 층층으로 분해해 나가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며 현대과학은 영원히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원소를 찾을 수 없는데 다시 말해 영원히 최소 입자를 찾지 못한다. 이는 과학 층차의 극한이다.

음양 이상(二象)은 우주에서 아주 높은 층차에 있는데 즉 입자의 극히 깊은 층에서 정련해 낸 양대(兩大) 요소다. 그것들은 입자의 극미시 상태에 있으며 양자나 쿼크 등보다 수억 배나 더 미시적인 것이라 현대과학으로는 이렇게 미시적인 층면을 영원히 건드릴 수 없다. 그것들은 물질의 바닥 층(底層)에서 운행하며 서로 결합해 태극(太極)이 되는데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높은 층에서부터 표층 우주 만물을 주재하고 통제한다.

그러므로 태극의 운행, 음양의 변화는 우주 만물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이며 가장 바닥 층 가장 미시적인 변화로 그것은 안에서부터 밖까지, 가장 심층에서부터 표층 세계까지 대응하며, 일체 물질의 운동변화를 통제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표층 세계의 거시적인 변화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무궁하고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으며 미시에서 거시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물건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화(化)의 자상(字象)이다.

현대과학에 이런 기술이 있는데 일부 물질의 분자 배열 순서를 바꿔 물질을 바꿀 수 있다. 가령 흑연을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탄소분자의 배열 순서를 바꾸면 다이아몬드로 바꿀 수 있다. 흑연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신화(神話)이다. 마찬가지로 돌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 존재했던 과학실험이다.

이것은 여전히 입자의 가장 바닥 층 분자 층면의 변화에 불과할 뿐이며 보다 깊은 원자 급의 변화로 들어가면 인류의 기술은 무능하다. 신불(神佛)은 인류를 훨씬 뛰어넘는 극히 높은 층차의 고급생명으로 층차가 더 높을수록 에너지가 더욱 크며 지혜가 더욱 크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신불(神佛)은 신통(神通)이 크게 드러나는데 그들은 인류 분자세계를 멀리 초월한 보다 고층 보다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고에너지 세계, 고차원의 시공에 있다. 그곳이 신불의 세계인데 마치 천국세계, 극락세계, 연화세계 등과 마찬가지다. 신불(神佛)이 있는 고에너지 세계는 인류의 분자세계와 차이가 십 만 팔천 리나 나며 서로 무수한 층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류의 과학으로는 영원히 관찰할 수 없으며 건드릴 수도 없다.

신불(神佛)이 한 물체를 개변하는 것은 물체의 가장 미시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구성 입자에서부터 가장 본질상에서 개변한다. 그런 후 한 층 한 층 표면으로 펼쳐낸다. 그러므로 신불에게 불가능이란 없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며 변화가 무궁하다.

인류 과학의 물리기술은 분자구조를 바꿀 수 있는데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바꿀 수 있다. 신불은 우주 고층의 법(法)과 대도(大道)를 장악했기에 우주 만물의 가장 미시적인 층에서 가장 표층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개변시켜 만물을 생성할 수 있으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고 우주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 변화가 무궁하며 대단히 현묘하다. 인류는 분자 더미 속에서 방향을 잃고 진흙 속에서 기어 다니는데 이는 마치 작은 애벌레가 곤붕(鯤鵬)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불의 발아래 있으면서 신불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이 어찌 가소롭지 않겠는가?

[역주: 곤붕은 《장자》〈소요유〉 편에 등장하는 거대한 물고기와 새를 말한다. 북극 바다에 사는 곤이 새로 변하면 붕이 되는데, 그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고 태풍이 불면 9만 리를 날아 올라 6개월 만에 남극 바다로 간다고 한다.]

5) 『정(情)』:

① 단(丹): 갑골문은 “0920”다. 마치 하나의 연단로(煉丹爐)처럼 중심에 점(點)이 하나 있어 연단로 속에서 단련하는 물질을 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단(丹)’이다.

② 청(青): 금문(金文)으로 “0920”=“0920”(生: 자연히 자라남)+ “0920”(丹)이다.

본래 뜻은 생단(生丹)으로 정기(精氣)를 모아 단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정기가 응축되고 정화(精華)가 존재하는 곳이란 뜻도 포함한다. 연단할 때 불꽃의 색이 청색이기 때문에 ‘청(靑)’이란 자상(字象)에 청색(靑色) 등의 뜻이 포함된다.

③ 정(靜): 금문 “0920”=“0920”(青: 生丹)+ “0920”(爭: 다투다)。

④ 정(情): 금문 “0920”= “0920”[心: 심규가 막힌 심이고 심(心) 속에 점이 있어서 ‘정(情)’이 마음에서 생겨나면 심령을 오염시키고 심규를 막아버린다]+ “0920”[青: 生丹 또는 수련]

해독: 먼저 ①에서 단을 보자. 과거 수련계에서는 어느 한 가의 수련방법이나 종교를 막론하고 모두 단(丹) 연마를 강조했다. 도가에서 단을 연마할 때 외단(外丹)과 내단(內丹)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연단로에서 단련해낸 것이 외단이며 인체를 연단로로 삼아 인체 단전 안에서 닦아낸 단이 바로 내단이다.

불교 등의 다른 종교에서는 비록 연단(煉丹)을 말하진 않지만 역시 단을 연마하는데 이때 연마하는 것은 내단이다. 수련에 성취가 있는 일부 화상이 열반해서 화장할 때면 사리가 나오는데 이 사리는 바로 내단이 폭발하면서 에너지를 석방시킨 후 체내에 남은 잔존물이다.

서방에는 연금술(鍊金術)이 존재해 고대부터 적지 않은 연금술사들이 있었다. 유명한 물리학자 뉴턴도 사실 연금술사였으며 평생 연금술에 공력을 들였다. 그의 물리학적 성취는 단지 연금 일생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뉴턴이 사망한 후 남긴 검은 상자에는 연금술에 관한 심득(心得)이 많았다고 한다. 서방의 연금술은 사실 동방의 연단술(煉丹術)이며 즉 수련으로 금단(金丹)을 연마한 것이다. 단지 동방과 서방의 명사 표현이 다를 뿐이다.

도가에서는 늘 금단대도(金丹大道)를 말하는데 의미는 바로 금단을 수련 성취한다는 것으로 천지의 현기(玄機)를 알고 대도(大道)를 깨닫는 것이다. 금단을 수련성취하면 곧 속세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삼계(三界)를 벗어나고 정(情)에서 뛰쳐나와 신선(神仙)・진인(真人)이 된다.

그러므로 과거 수련 중에서 연단 과정과 수련 과정은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말하자면 범인(凡人)이 인간세상에서 뛰쳐나와 고급생명이 되는 과정이다. 금단 연마에 성공하면 곧 수련이 결속되며 인간세상에서 뛰쳐나올 수 있다.

다시 ②에서 ‘청(靑)’을 보자. 청(靑)은 단(丹 아래)+ 생(生 위)이니 의미는 단을 만든다는 뜻이다. 정기와 에너지가 체내에 응집되는 과정이 바로 단을 만드는 과정이다. 단은 바로 체내에서 응결된 정화다. 그러므로 ‘청(靑)’의 의상(意象)에는 정화(精華), 정기의 모임이란 뜻이 있다.

다시 ③에서 ‘정(靜)’을 보자. 앞에서 ‘혜(慧)’를 풀이할 때 말했던 것처럼 고요해야 지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지혜가 생기는 과정은 바로 수련 과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요해질 수 있는가? ‘정(靜)’이란 글자를 만들 때 신(神)은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靜= 靑+爭이니 좌측 청(靑)의 의미는 연단, 수련이고 우측 쟁(爭)은 싸운다는 뜻이다. 즉 마음속의 일체 사심(私心)・잡념, 일체 집착과 욕망에 저항해 서서히 그것들을 담담히 보고 그것들을 내려놓으며 그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사심・잡념・집착・욕망이 더욱 담담해질 때면 사람의 마음은 곧 더 고요해지고 지혜는 더 커진다. 사람의 마음이 더 고요할수록 사람의 정기(精氣)・에너지는 단전에서 끊임없이 쌓여 곧 단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④에서 ‘정(情)’을 풀어보자. 情= 心 + 靑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좌측은 봉폐된 ‘마음(心)’으로 마음속에 점이 하나 있다. 의미는 정(情)이 마음속에서 생겨나오면 심령(心靈)이 오염되고 마음이 불순(不純)해져서 심규(心竅)를 가로막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좌측의 이 봉폐된 ‘심’에서 情의 본질을 점으로 드러냈다.

우측은 바로 청(靑)인데 즉 단을 만들고 수련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인간 세상에서 뛰쳐나오는 것으로 ‘정(情)’에서 뛰쳐나오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측에서는 ‘정(情)’에서 뛰쳐나올 방법을 점화해준다.

이는 신(神)이 ‘정(情)’이란 이 글자를 만들 때 무명(無明)속의 인류에게 한 갈래 하늘로 통하는 대도를 알려준 것으로 사람에게 ‘정(情)’이란 무엇이며 사람이 된 목적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만 ‘정’에서 뛰쳐나갈 수 있는지 알려준 것인데, 즉 정에 갇히지 말아야 하며 정에서 뛰쳐나가야 고급 생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수련방법이 반드시 단을 연마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확실히 이러했는데 그 어떤 수련법문이나 그 어떤 종교든 막론하고 모두 반드시 단을 연마하는 방식으로 원만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주 국한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서 우주는 유사(有史) 이래 가장 특수하고 가장 관건적인 역시시각에 처해 있다. 우주대법이 인간세상에서 전해져 단도(丹道)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세속을 떠나지 않고도 인간세상에서 신불(神佛)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

고대 인도의 《베다본집》과 불교 역사 속에 모두 이런 예언이 존재한다.

“우주 만왕(萬王)의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장차 인간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전륜성왕의 특징은 집에서 출가하지 않고 성불(成佛)하며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 수련하는 것이다.”

《법화문구(法華文句)》에는 “우담바라 꽃은 신령하고 상서롭다는 말이며 삼천년에 한번 나타난다(優曇花者,此言靈瑞,三千年一現).”[2]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혜림음의(慧琳音義)》에는 “우담바라 꽃은 상서롭고 신령한 느낌을 주는데 하늘의 꽃이며 인간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만약 여래가 세상에 나오고 금륜왕이 세간에 나타나면 큰 복덕과 힘으로 비로소 이 꽃이 나타난다.(優曇婆羅花爲祥瑞靈異之所感,乃天花,爲世間所無,若如來下生、金輪王出現世間,以大福德力故,感得此花現)”[3]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담바라 꽃은 1997년 한국 청계사(淸溪寺)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세계 도처에서 활짝 피었다. 사실 필자의 집에도 여러 번 피어났는데 흙이나 물도 필요 없고 세상의 그 어떤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아도 수정처럼 맑으며 또 맑은 향이 있다.

지금 이런 특수한 역사 시각에 모든 생명이 청성(淸醒 맑게 깨어 있음)을 유지해 정(正)과 사(邪)를 간파해 ‘지혜’로 구별하고 ‘진아(真我)’로 ‘사고(思考)’해 절대 중공의 거짓과 기만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자신을 위해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주:
[1] 《中庸》:子曰,人莫不飲食也,鮮能知味也。

[2] 《法華文句》四上:“優曇花者,此言靈瑞。三千年一現,現則金輪王出。”

[3] 《慧琳音義》卷八:“優曇花,梵語古譯訛略也,梵語正雲烏曇跋羅花。此雲祥瑞靈異,天花也。世間無此花。若如來下世,金輪王出現世間,以大福德力故,感得此花出現。”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