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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용맥(中華龍脈) 3: 천상(天象)을 보다 (중)

종화인(鍾華人)

【정견망】

3. 성상의 대응

여기서는 다시 성상(星象)의 대응에 대해 다시 말해보자.

현대 과학에서는 모든 행성(行星)은 자신의 항성계(恒星系)에 존재하는 항성을 중심으로 운행한다고 본다. 가령 태양계에는 9대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운행한다. 태양계와 같은 이런 무수한 항성계가 은하계를 구성하는데 은하계에서 모든 항성은 또 은하 중심을 둘러싸고 운행한다. 이외에도 은하계는 다른 일부 은하와 함께 은하군을 이룬다. 가령 은하계에는 또 몇 개의 부속 은하가 있는데 은하계와 이들 부속 은하가 다른 은하들과 함께 국부은하군을 형성한다. 국부은하군은 안드로메다은하 및 M31 등 다른 여러 은하와 함께 은하단(銀河團)을 이루고 이들 은하단이 모여 초은하단을 구성한다.

우리 은하는 또 이 초은하단의 중심을 운행하는데 여기에 이르면 현대과학 이해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조사해 내려간다면 또 무궁무진해서 현대 과학기술의 지혜와 인식방법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우주에서 모든 별 사이에는 비할 바 없이 엄격하고 정밀한 연계가 있어서, 서로 맞물리며 긴밀하게 서로 연계되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 대응하며 조금의 혼란도 없다. 우주는 이렇게 정연한 질서를 지니고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우주의 도(道)다. 도(道)를 얻으면 살고 도를 잃으면 죽는다. 우주가 운행하는 대세와 변화는 바로 하늘의 뜻이며 하늘을 따르면 번창하고 하늘을 거스르며 망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별이 자신의 궤도를 따르지 않고 궤도를 벗어나 우주를 공간속으로 들어간다면 반드시 우주 국부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며 다른 별과 충돌하거나 유성이 되어 사망하거나 또는 다른 별에 집어삼켜져 훼멸될 것이다.

우주는 이렇게 거대하고 오묘하면서 무극(無極)한 것으로 질서정연하며, 무수한 성구(星球)와 성계(星系)로 아주 복잡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길(道)을 가고 있다.

근대 과학의 거장 뉴턴이 마지막에 과학의 정상에 선 후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고 질서정연한 우주는 오직 신(神)의 걸작으로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깊이 찬탄한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이것은 마치 손닿는 대로 함부로 기어를 던져 아주 정밀한 스위스 시계를 조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뉴턴은 60세 이후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과학계에서 은퇴해 신학 연구에 집중했으며 신학자가 되었다.

과학의 또 다른 정상에 섰던 아인슈타인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평생 하나님을 믿었다. 과학을 대표하는 인물이 왜 여전히 종교를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왜 신을 믿지 못합니까?”

기자가 “만약 당신이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럼 신을 믿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현재로서 나는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나도 당신처럼 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이 기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현재 인류 과학은 너무 저급(低級)해서 신(神)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하지 않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럼 왜 신의 존재를 감히 승인하지 못하는가? 무엇이 미신인가? 이렇게 편집증적으로 과학을 믿어 사상이 극단적으로 편협한 이것이 미신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신이 아닌가!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가자. 모든 별과 성계, 은하단, 초은하단 등은 모두 끊임없이 자전하면서 또 공전한다. 그것들이 공전하면서 운행하는 궤적을 현대 과학에서는 궤도(軌道)라 부른다. 그런데 중국 도가(道家)에서는 이를 주천(周天)이라 했다. 다시 말해 매 별마다 모두 그것이 운행하는 주천이 있다.

사실 이 궤도가 바로 한 갈래 맥락(脈絡)이다. 맥락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체에는 무수한 맥락이 있는데 아주 복잡하며 인체 역시 주천순환(周天循環)이 존해한다. 가령 임독(任督) 두 맥을 타통(打通 쳐서 통하게 함)하면 곧 소주천(小周天) 순환이 되는데 이는 중의(中醫)에서 인식한 것이다.

지구상에도 무수한 맥락이 이는데 가력 용맥(龍脈), 수맥(水脈) 등이며 또한 주천순환을 이룬다. 이는 풍수(風水)의 인식이다.

우주에도 마찬가지로 무수한 맥락이 있는데 모든 별과 성계를 연결하며 복잡하면서도 아주 정밀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우주간의 별들 사이에는 일종의 내재적인 연계가 있다. 앞 편에서 언급했던 하도(河圖)는 마땅히 이런 우주 별들 사이의 연계를 그린 것으로 또한 지구 인류와의 대응관계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도에 근거해 팔괘와 주역을 창립했고 예측학을 창립한 것이다.

사실, 필자의 개인 인식에 따르면 진(陣)에는 해진(諧陣) 외에 또 방위진(方位陣)이란 한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 설치한 팔괘진(八卦陣)은 일찍이 동오(東吳)의 십만 정병(精兵)을 곤혹스럽게 만든 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방위진의 일종이다. 이런 방위진은 바로 성수(星宿)간의 내재적인 대응관계에 근거해 지상에 대응해 설치한 진으로 천상의 성신(星辰)성수(星宿)와 일대일로 대응한다. 그러므로 천상에 대응할 수 있으며 우주 간의 강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견고해서 깨뜨릴 수 없는 기이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고대에는 건축에서도 이를 아주 중시했는데 마치 황궁(皇宮)의 대원(大院)이나 또는 일부 촌락 등등 그것들은 모두 성상과 서로 대응하는 것이다. 국외의 수많은 고대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일부 서바의 신전(神殿) 등은 그것들 서방의 별자리 및 신령(神靈)과 서로 대응하기 때문에 일부 신비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혈위(穴位)란 맥락의 중요한 마디로 맥락 에너지의 출입구로 어느 단락 맥락의 기능과 에너지 운행을 주관한다.

고인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합일하며 일대일 대응함을 강조했다. 즉 천상의 운행은 지상의 운행과 대응하며 또한 인류의 변화에 대응해 영향을 끼친다.

인체에는 맥락이 있고 혈위가 있으며 오장육부가 있고 주천순환이 있으며 이는 땅에 대응한다.

지상에도 맥락이 있는데 용맥과 수맥 등이 있고 또 혈위가 있으니 즉 풍수보지(風水寶地)이며 주천순환이 있고 또 오장육부가 있는데 바로 오장산(五藏山) 등이다.

또 천상에 대응하는데 천맥(天脈)과 천혈(天穴)이 있다. 천혈이란 바로 중요한 성위(星位)로 이 부동한 성위는 부동한 신위(神位)를 대표하며 부동한 주천(周天) 등이 있다. 일대일로 대응해서 천인이 서로 합해 하나가 되게 만들고 우주가 조화롭고 완정한 일체가 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천상(天象)의 대응으로 고층으로 갈수록 부동한 천맥과 천혈이 있어서 부동한 성신(星辰)과 성수(星宿)와 대응하며 부동한 신령(神靈)신위(神位)와 대응하며 신의(神意 신의 뜻)와 천의(天意 하늘의 뜻)를 대표한다. 지상에서는 부동한 천맥과 천혈이 부동한 지혈(地穴) 용맥과 대응하며 부동한 인맥(人脈) 혈위와 대응한다.

과거 중의에서는 인체의 혈위에는 부동한 신령(神靈)이 진수(鎭守)하고 있어서 오직 사람마음이 올발라야만 정기(正氣)가 존재해 사기(邪氣)가 침입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함부로 병이 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대응관계이다. 인체의 부동한 혈위는 지혈과 대응하며 또한 천혈과 대응하는데 천혈이 바로 부동한 성위(星位)이고 부동한 신위(神位)를 대표하며 부동한 신령이 보호하고 있다. 이렇게 천상의 신령과 서로 대응해 인체를 보호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천인합일에 도달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점은 바로 이 사람이 반드시 도덕(道德)이 있어야 한다. 이는 제1편 중화인맥에서 언급한 것이다. 우선 이 사람이 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럼 그의 신체 혈위에 에너지가 모일 수 있으며 비로소 이 덕(德)의 에너지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지혈(地穴) 등과 서로 소통하고 대응해 진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동한 혈위(穴位)는 부동한 주파수의 진동을 만들어내며 부동한 지혈과 천혈 역시 부동한 주파수의 진동을 만들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 아울러 삼자(三者)의 진동 주파수는 공명하고 공진(共振)할 수 있는 것으로 이렇게 하나의 조화로운 공진 마당을 형성해 대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우주 고층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연과 인체에 유통시켜 인체를 정화하고 인체에 에너지가 충만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마음을 기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함부로 병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사람에게 준 정상적인 생활이며 이것이 바로 자연의 도(道)다.

만약 이 사람에게 덕(德)이 없고 온몸이 악업(惡業)으로 가득 찼다면 그럼 그의 혈위는 에너지로 보호받지 못하며 오히려 악업(惡業)으로 뒤덮일 것이다. 이 어두운 물질은 인체가 천지신령과 대응하는 것을 차단하고 신령의 비호(庇護)를 받지 못하게 한다. 마치 음습한 곳에서 독물(毒物)이 자라나는 것처럼 음암(陰暗 음침하고 어두움)한 저령(低靈)악귀(惡鬼)를 불러들여 온몸에 달라붙게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사기(邪氣)가 침입해 맥락을 가로막고 몸을 허하게 만들어 갑자기 병이 생기게 한다.

이 역시 인류 스스로 조성한 것으로 사람 자신이 도(道)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도가 없으면 그럼 궤도에서 이탈한 별과 마찬가지로 우주 중에서 함부로 떠돌아다니게 되는데 비록 잠시 방종의 기쁨을 얻을지라도 결국에는 훼멸을 가속화할 뿐이다.

모든 것은 다 도(道) 속에 있으며 도(道)를 잃으면 대단히 두려운 것으로 훼멸되는데 단순히 도움이 많은가 적은가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현재를 보면 지구상에서 거의 진정으로 깨끗한 수원(水源)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토지를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독(毒)이 든 음식을 먹고, 또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해치며, 서로 싸우고, 서로 속이는데, 도처에서 고통과 생명의 절망뿐이며, 사람들은 마치 기쁨이 어떤 느낌인지 잊어 버린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고, 심지어 폭력・공포와 사악하고 음란한 욕망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다. 거의 모든 현대인들이 피로와 공허를 느끼며 기쁨과 평화가 부족하며 도처에서 번뇌와 절망이다. 그러므로 각종 정신병이 날로 증가하며 자살과 극단적인 폭력 각종 사회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를 사회 발전이 가져온 상태로 간주하면서 모두 다 같다고 여기며 일종의 착각을 하면서 이를 사회진보라 여기며 그 이유에 대해 반성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이는 바로 사람에게 도(道)가 없어서 천지신령(天地神靈)과의 대응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응이 차단되었고 맥(脈)이 통하지 않게 되었으며 도(道)가 통하지 않아 천인(天人)이 더는 합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우주 고층의 에너지가 더는 대량으로 자연과 인체순환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으며 인체는 더는 우주 고층 에너지의 정화(淨化)를 얻을 수 없게 되었고 심령(心靈) 역시 더는 신령에너지의 위로를 얻지 못해 고갈되었고 최종적으로 고갈되어 훼멸될 것이다.

요즘 지위(地位)라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이것은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말한다. 제1편 중화인맥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인맥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해진(諧陣)을 형성하고 하나의 공생체(共生體)를 형성하는데 다시 말해 지금 말하는 사회이다.

사회에도 맥락(脈絡)이 있는 것으로, 인연(緣) 역시 이런 맥의 일종이며 이를 인맥(人脈)이라 통칭한다. 매 사람은 이 사회, 이 복잡한 인맥 중의 한 점이자 한 분자이고 하나의 세포로 볼 수 있다. 중요한 인물,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그런 큰 인물은 바로 이 인맥에서 하나의 혈이 된다. 이 사람이 사회속에서의 위치가 바로 그의 이 인맥 속 위치다. 인맥은 바로 지상의 용맥(龍脈)과 대응하며 인맥상의 혈위는 또한 지상의 풍수보지와 서로 대응한다.

풍수보지(風水寶地)에도 품급(品級)을 구분하는데 과거 풍수에서는 부동한 품급의 풍수보지를 얻으면 부동한 품급의 관리가 될 수 있다거나 또는 부동한 품급의 재산을 가질 수 있으며 부동한 사회영향을 낳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부동한 품급은 사실 용맥(龍脈)상의 부동한 위치이며 이 때문에 또 지위(地位)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응해 오는 것은 다시 말해 이 사람이 사회에서 부동한 위치에 있는 것을 지위라 칭한다.

일부 중요 인물은 인맥상의 부동한 혈위(穴位)이기 때문에 부동한 지혈(地穴)과 대응하며 부동한 품급의 풍수보지와 대응한다. 동시에 하늘과도 대응하기 때문에 부동한 천혈과 대응하는데 즉 부동한 성위(星位)다. 그러므로 과거에 고인은 늘 이 사람은 천상에서 무슨 무슨 별에서 세상에 내려왔다고 하는데 천봉성(天蓬星)이 속세에 내려왔다거나 문곡성(文曲星)이 세상에 내려왔다고 하는 등등이다. 내 생각에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천상이 자연과 인류사회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천상을 관측하면 사회발전을 예측할 수 있고 수백 년 수천 년 후의 인류변화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보다 큰 지혜이다. 이는 현대 자연과학의 인식을 훨씬 초월한 것이다. 고인이 미신한 게 아니라 사실은 현대인들보다 더욱 지혜로웠다.

4. 신비한 은요(隱曜)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이 천상을 관측할 때는 전적으로 육안에 의존하는데 성반(星盤)위에서 성신(星辰)의 운행 궤적과 위치에 근거해 성상(星象)이 대표하는 의미와 내함에 대응해 추측했다. 때문에 오직 국부적인 일부 일들만 볼 수 있고, 당시 또는 몇 년 안에 발생할 일을 볼 수 있었을 뿐이며 아울러 편차가 있어서 오차 없이 정확할 수 없다.

마치 현대의 범인(凡人)이 풍수를 볼 때 오직 산세와 지세(地勢)의 방향과 위치에 근거하고 또 풍수원리에 따라 풍수보지가 있는 곳을 추단할 수 있을 뿐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면 몇몇 품급이 낮은 작은 혈(穴)을 우연히 찾아낼 수는 있지만 절대로 진룡혈(真龍穴)을 찾아낼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이는 그들이 모두 범태육안(凡胎肉眼)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아주 많은 것들과 진정한 것은 범태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인체의 맥락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과거에는 범의(凡醫 평범한 의사)가 병을 보면서 오직 혈관 박동에 근거해 맥락의 운행상황을 대조해 추측하고 이를 통해 의학 이치에 따라 변증시치(辯證施治 증을 변별해 치료를 시행함)할 수 있었을 뿐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부 병은 정확히 볼 수 있었지만 일부는 정확히 볼 수 없었고 일부는 치료할 수 있었지만 일부는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우주 중에 대량의 암흑 물질과 반물질이 존재함을 인식하는데 이런 거대한 물질요소들은 모두 인류가 관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이미 과학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고대 성상(星象) 중에서는 또 ‘은요(隱曜)’라는 한 가지 설이 있는데 바로 일부 눈으로 볼 수 없는 별을 가리킨다. 현대 과학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별이다. 하지만 존재하고 하지 않고는 인류가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아주 많은 것들이 인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영원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마치 블랙홀은 빛마저도 그것을 빠져나갈 수 없어서 인류가 관측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 과학에서 그것의 존재를 부인한 것과 같다. 하지만 현대과학이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고 아울러 명확히 그것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존재와 비존재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고인이 말하는 라후(羅睺), 계도(計都), 자기(紫氣), 월패(月孛)라는 이 4가지 별과 또 북두구성(北斗九星)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 눈에는 칠성(七星)만 보인다. 하지만 고인은 또 두 개의 별이 더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구성(九星)이라 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요’라 불린다.

고인은 이 은요에 대해 “하늘에는 오직 기(氣)만 있고 형태(形)는 없는 것이 있어서” 관측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일부 특이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볼 수 있다. 역조역대(歷朝歷代)로 일부 고인(高人), 신인(神人), 세외의 기인(奇人)이 있었다. 그들의 감지(感知) 영역은 범인(凡人)을 훨씬 초과한다. 단순히 범인이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세계뿐 아니라 다른 보다 넓은 감지영역이 있었다.

가령 현대인들의 제3의 눈 또는 음양안(陰陽眼), 혜안(慧眼) 또는 천안(天眼) 등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감지영역이 열린 후 곧 볼 수 있는데 범인이 감지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감지할 수 있고 진실한 우주를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지혜가 더욱 커서 범인이 알 수 없는 많은 천기를 알았다.

때문에 신의(神醫)가 병을 치료할 때는 진맥할 필요도 없이 직접 인체 주변의 맥락(脈絡)운행을 보고 혈위(穴位)가 투과하는 상황을 볼 수 있었으며 환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척 보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고 손만 대면 바로 병이 나을 수 있었다.

고인(高人)이 풍수를 볼 때도 마찬가지로 산세(山勢)를 보거나 무슨 나반(羅盤 풍수가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나침반으로 간지와 주천 도수가 새겨져 있다)을 사용해서 용맥을 찾을 필요가 없으며 직접 그곳에 가서 앉으면 자연히 서로 통하는데 어디에 용맥이 있고 어디에 지혈이 있으며 어디에 오장이 있는지 또 어떤 품급인지 마음속으로 훤히 알 수 있다.

때문에 과거에 고인(高人)이 천상을 보면 직접 천맥(天脈)의 운행과 성위(星位)를 볼 수 있었고, 범인은 전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때문에 하늘의 뜻이 변화하는 것을 알았고, 본 것이 아주 정확했으며 아울러 전반 인류 사회의 동향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몇 백 년 몇 천 년 후의 일까지 볼 수 있었다.

이는 신의(神醫)가 병을 봄에, 직접 인체 맥락의 운행과 혈위가 통하는 상황을 보고 이런 것들에 근거해 이 사람의 신체상황을 알 수 있고 이 사람의 어디에 병이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이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질병이 생길지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즉 고인(高人)이 성상(星象)을 관찰하면 천맥(天脈)이 운행하는 정황과 성위(星位)에 근거해 인류 사회의 동향을 미리 알 수 있었다. 가령 역조역대로 모두 일부 예언이 남겨졌는데 몇 천 년 후 인류 변화를 예언할 수 있었다. 어떤 예언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완전히 영험했다. 가령 고대 십대예언과 같은 것이다. 즉 《건곤만년가乾坤萬年歌》, 《마전과馬前課》, 《장두시藏頭詩》, 《추배도推背圖》, 《황벽선사시黃櫱禪師詩》, 《매화시梅花詩》, 《소병가燒餅歌》, 《금릉탑비문金陵塔碑文》, 《보허대사예언步虛大師預言》, 《무후백년계武侯百年乩》를 가리킨다. 여기에 흥미가 있는 독자들은 직접 조사해서 대조해보기 바란다. 여기서는 편폭의 제한으로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고인(古人)은 어떻게 몇 천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는가? 이는 바로 천상(天象)의 변화가 지상(地象)의 변화에 대응하고 또한 인상(人象)의 변화와 대응하기 때문이다. 고인은 천상의 변화를 보고 아울러 천도(天道) 법칙에 근거해 일정한 시기 천상(天象)의 변화 상태를 볼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천의(天意)의 향방을 알 수 있었고 이를 지구와 인류에 대응하면 곧 인류 사회의 몇 백 년 몇 천 년 간 발전변화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중국 뿐 아니라 서방에서도 고대에 점성술(占星術)이란 성상학(星象學)이 있었다. 그들 역시 성공(星空 별이 빛나는 하늘)을 여러 개의 성좌와 성관으로 나눴다. 예를 들어 황도 12관(官)은 비로 우리의 12성차(星次)와 비슷하지만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성신(星辰)이 각기 다른 신(神)과 대응하는 것을 이용해 예측했지만 그것은 서방의 신령이었다. 왜냐하면 인종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면 문화체계와 물질 요소 등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대응하는 성공(星空)도 다르고 고층의 대응관계 역시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응한 것은 그들 서방 신의 세계이고 서방 체계의 신으로 우리 동방과는 관련이 없다.

성상의 관측은 관측자가 존재하는 지역과 관련이 있어서 서방에서 보는 것과 중국에서 보는 것은 관측한 성공(星空)이 완전히 같지 않았다. 가령 남극 부근의 성공을 우리 중국인들은 영원히 관측할 수 없지만 남반구 사람들은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그런 성상은 우리와는 무관하며 서로 다른 체계에 속한다.

(계속)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123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