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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수필: ‘자아’란 무엇인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신우주의 특성은 무사무아(無私無我)하지만 구우주는 위사위아(爲私爲我)하다. 대법제자는 신우주로 들어갈 생명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사(私)를 닦아 없애야 하고 완전히 위타(爲他)한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위사가 대법제자의 공간장(空間場)에 체현되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최근 발생한 몇 가지 일에서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다.

한 생명으로서 당신이 제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여기든, 사실 아주 보잘것없는 것으로 대법제자의 모든 능력은 대법에서 내원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심으로 자신이 어떻게 대단하다고 여길 때면 당신은 이미 자아(自我)가 팽창하기 시작한 것으로 강렬한 자아가 당신의 허영심, 과시심, 남을 무시하는 마음을 이끌어 끊임없이 가상(假象)을 만들어내 당신으로 하여금 일련의 환상(幻象)들을 보게 한다.

사실 이런 환상들은 모두 당신 마음에서 반영되어 나온 것이다. 오직 당신이 법에 대조해 안으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면, 환화(幻化)되어 나온 이런 가상들은 마치 팽창한 풍선처럼 대법의 위력에 의해 단번에 터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대법으로 가늠하지 않고 자신의 틀 속에 함몰되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당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당신이 어떻게 법의 신기(神奇)를 볼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당신의 심성표준이 바로 속인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속인의 프로그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아가 자신을 교란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주의식(主意識)에 경각심이 생겼고, 뛰쳐나와 발생한 일을 살펴 보았다. 이때 나는 두 개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법에 동화된 진아(真我)였고, 다른 하나는 관념과 업력으로 구성된 변이된 사람이었다. 진아와 가아(假我)가 가는 길은 전혀 다른데 모순과 교란 속에서 당신의 사상이 늘 자아를 중심으로 할 때면 이는 바로 가아의 소행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상 속에서 자아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슨 자아 감수요, 자신이 남을 위해 얼마나 많이 했고 얼마나 대가를 치렀다고 하거나, 잠재의식 속에서 자신이 한 일을 자본으로 삼고 남을 위협하는 조건으로 삼아 흥정하는데 또 구하려는 마음이 그 속에 끼어들어 다른 사람의 동정과 연민을 구한다. 이는 어떤 마음인가? 이는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법은 불가능이 없고 비할 바 없는 위력이 있음을 믿지 않기에 여전히 도움을 구하고 의지하며 사람들 속에서 소위 이해와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도달하지 못하고 효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된다.

최근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나는 제고를 방해하는 것이 ‘자아(自我)’이고 구우주의 사(私)임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상 중에서 이 ‘자아’를 배척하고 그런 변이된 사(私)는 필요하지 않다고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소위 무슨 감수(感受)란 아무것도 아니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서 하고 대법에 따라 가늠해야 하는데 이 일념을 지키며 다른 것들이 나를 교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바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동시에 타인의 장점을 생각해야 하며 사념(邪念)을 사용해 남을 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염두를 다스리며 표면을 잘 원융(圓融)하면 이때 그 자아는 점차 나를 떠나고 갈수록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진아(真我)가 끊임없이 강대해져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되면 이때 법속에 녹아들어간 생명의 상태를 감수할 수 있다. 그 상태는 마음이 착실하고 든든하며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데 일종의 따스한 에너지가 감싸인다. 이때 한 생명이 우주대법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느낄 수 있다. 우리를 만든 것은 대법이고 우리의 일체는 대법에서 내원한 것인데 어찌 자아의 감수에 집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당신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할 때면 당신은 곧 자아의 감수를 중시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한 사람이 밧줄에 얽매인 것과 같다. 이 사람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는 여전히 빠져나가지 못하는데, 다른 공간의 부면(負面)요소 역시 교란한다. 마음속으로 까닭모를 짜증과 비관적인 생각이 들면서 의기소침해진다.

상태가 좋을 때면 즉시 그것을 배척할 수 있지만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이것이 잘못된 상태임을 아예 발견하지 못하며 여전히 이 변이된 사상을 따라간다. 대법제자가 정진하는 상태는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으로 사상이든 행동이든 모두 정면(正面)적이고 적극적으로 빛이 위로 향한다. 이런 상반된 정서는 진정한 자신이 전혀 아니지만, 그러나 나는 늘 이 가상에 속아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했다. 사실 이 역시 구세력이 무형의 변이요소를 이용해 대법제자의 누락을 틈탄 일종의 변칙적인 박해와 교란이다. 일부 교란요소는 대법제자가 감당하도록 억지로 더해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 게다가 사부 주위에는 또 많은 호법(護法)이 있고 많은 불(佛), 도(道), 신(神)이 있으며 또한 더욱 큰 생명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참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승인 받지 못하고 강제로 박해하는 것은 법을 범하는 것으로 우주의 구 이치 역시 허용하지 않으며 무리한 박해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력도 감히 하지 못한다. 가능한 한 여러분들이 올바르게 걷도록 하라.”[1]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구세력의 배치를 명백히 승인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가는 것임을 알려주셨다. 누구도 대법제자를 고험할 자격이 없으며 오직 대법제자가 구세력의 변이된 배치를 승인하지 않기만 하면 그럼 곧 우주 이치에 부합하는데 그 누구도 감히 하늘의 이치를 위배해 행동할 수 없다. 구우주의 생명은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것으로 당신의 기점이 자아의 기초 위에 서 있을 때면 곧 구우주의 이치에 부합해 구우주의 변이된 요소가 당신을 교란한다.

만약 당신이 사(私)에서 뛰쳐나오지 못한다면 구우주의 틀 속에서 그것을 부정하기란 불가능한데 적어도 당신의 기점이 마땅히 법(法)위에 서 있고 위타(爲他)의 기점 위에 서야 한다. 당신이 신우주의 표준에 부합하면 대법은 곧 신적(神迹)을 드러내고 대법은 곧 구우주의 변이 요소를 해체할 것이다. 근본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사람 이쪽 표면은 곧 평온해지고 그 어떤 구세력의 배치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아와 무아(無我)는 시시각각 겨루는데, 오직 법 공부를 많이 해야만 자신의 정념이 충족해질 수 있고 자신의 혜안(慧眼)으로 어느 것이 진아(真我)이고, 어느 것이 가아(假我)인지 간파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을 용기(容器 그릇)에 비유하는데 이 용기가 가급적 좋지 않은 것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법을 많이 담을수록 용기의 본성은 더욱 순정해지며 구우주의 변이된 요소가 줄어든다. 오직 사람만이 인간세상의 득실(得失)을 중시할 뿐 신(神)은 인간세상의 그 어떤 것도 중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의 득실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 당신이 사람속의 물건을 내려놓지 못할 때, 당신의 득실이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 못할 때, 이때의 당신은 바로 한 속인이며 사람 속에 매몰된 속인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주 많은 구실을 대면서 당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겠지만 그러나 당신 마음의 순정한 정도가 당신의 상태를 설명해준다. 당신이 표면적으로 내려놓았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내려놓았는지는 오직 사부님만이 아시는데 하늘의 이치가 가늠할 것이다.

최근 아들이 직장을 구하면서 겪은 일부 일들이 내게 많은 계시를 주었다. 비록 취업난이 심해서 취업 기회가 적다고는 하지만 이는 사람속의 상태로 우리 대법제자는 그 안에 없다. 우리의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다. 때문에 사상적으로 마땅히 이런 속인의 생각이 없어야 한다. 아이가 회사에 지원했을 때 어떤 회사는 면접 기회를 주지 않았고 어떤 회사는 면접을 허락했지만 어떤 조건은 아이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았고 나도 중간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아이가 면접을 보러 갈 때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했고, 결과를 기다릴 때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겉으로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합격 소식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겉보기에는 잘 될 것 같았고 회사에서도 아들을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았지만 결국은 안 되었다. 아들이 지원할 수 있는 곳에는 다 원서를 넣었지만 지금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입으로는 아들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며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데 사부님 배치가 가장 좋단다”라고 말은 했지만 정말로 표리가 일치했는가?

나는 아직 마음이 고요한 물처럼 되는데 도달하지 못했고 또 아직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함을 느낀다. 때로는 생활에 목표가 없다고 여겨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내심으로 아주 소극적으로 되는데 때로는 또 아무런 이유 없이 초조함을 느낀다. 사실 인간세상의 득실을 너무 중하게 본 것이다. 인류사회의 일체는 다 환화되어 나온 것으로 자신이 인위적으로 무엇을 중하게 여기면 곧 집착이 너무 무거워져서 내려놓을 수 없게 된다.

왜 내 마음은 아들의 일에 따라 들뜨는가? 자신을 법속에 두지 않으면 자신의 관념, 집착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법에 입각해서 보자면 아이가 회사에 지원하는 것은 사람의 이치에 부합하는 동시에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고 또한 대법을 원융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수련 중에 제거하지 못한 집착이 있고,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있지만, 현 단계에서 우리가 일자리를 찾는 기점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동시에 구세력의 일체 변이된 배치와 구세력이 강요한 교란을 승인하지 않고 일체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르는 것이다. 내심으로 이 정념을 확고히 지키며 가상에 미혹되지 않고 사(私)의 틀에서 뛰쳐나와 자아의 변이요소를 포기하고 진정으로 제고해 올라오는 이것만이 근본이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133